30주년 광주비엔날레가 꿈틀거린다.
현대 유럽 최고의 기획자 니콜라 부리오가 가장 한국적인, 가장 지역적인, 광주-남도를 화두로 들고나왔다. 이번 주제 '판소리-모두의 울림(Pansori-the Soundscape of the 21st Century)'은 30년 광주비엔날레의 독립선언에 가깝다.
판소리가 한국 전통 공연예술이거니와 그 발원지가 '남도'라는 점에서, 세계 어느 비엔날레도 흉내낼 수 없는, 독자성 그 자체다. 한국의 전통 공연예술을 서양의 첨단 시각언어로, 동시대 문제를 논하는 일은 그 자체로 이채롭다. 게다가 판소리의 본고장 남도 한복판서 전개되니 단연 독보적이다.
역대 비엔날레가 세계 어디에서 진행해도 별 다를 바 없는, 소위 보편적 전개로 찬사와 비판을 동시에 받아온 시간들과도 대비된다.
격변하는 환경, 전환점 돼야
1995년, 아시아 최초 비엔날레의 시작은 창대했으며, 불온했다. '1980년 광주의 비극을 예술로 덧칠하려는 것 아니냐'는 의심이 거셌다. 전국의 예술인들이 광주 망월묘역에 모여 안티비엔날레를 열었다, 그렇게 뜨겁게 시작됐다.
도도한 영욕의 시간이 이어졌다. 1997년 당대 최고의 기획자 헤럴드 제먼이 기획한 2회 비엔날레에 세계 언론이 주목하는 등 세계 유수의 전문지들이 광주를 눈여겨봤고 광주비엔날레 감독들이 베니스비엔날레 총감독을 맡는 등 미술계 주류로 부상하며 광주 위상은 높아갔다.
세계적 명성은 높다는데 지역민들은 알 수 없는 허기에 시달렸다. 세계 최고라지만 광주와 무관한 듯 아닌 듯했고 예술인들에게도 도움이 되는지 알기 어려웠다. 자라나는 세대와 예술인들에게야 엄청난 교육의 장이겠지만 그것만으론 허허로웠다. 시민들은 철저히 손님이었고 '우리' 비엔날레가 아니었다.
게다가 2000년대 들어 세계 미술이 비엔날레에서 아트페어로 급선회한데다 비엔날레가 홍수를 이루면서 비엔날레는 더 이상 자체발광하기 어렵다. 광주가 뒤늦게 생겨난 부산비엔날레에 자리를 내주는 것 아니냐는 등 자조적인 비판이 쏟아진 배경이다.
비엔날레가 매무새를 가다듬고 나섰다.
우선 바로 나, 자신을 정면으로 응시하고 나섰다. 변방이 아니라 비로소 중심이다. 본전시 장소도 과감하게 '동네'로 성큼 다가갔다. 이번 전시 본 무대는 광주비엔날레관과 양림동의 작은 공간들이다.
연계행사가 아니라 본전시가 마을 공간에서 전개된다. 동네사람들이 지난 비엔날레 때 '양림골목비엔날레'를 시작한 곳이다. 동네 축제가 국제 전시로 전환된 것이다. 우리나라 문화운동사나 미술사에 기록적인 사례가 될 전망이다.
또 다른 하나는 파빌리온이다. 광주는 베니스 외에 파빌리온을 운영하는 유일한 비엔날레다. 베니스 파빌리온이 자국 미술을 선보이는 일종의 경연장인데 비해 광주파빌리온은 교류의 장이다. 지난 2018년 단 3곳에서 31개국으로 폭발적으로 늘었다. 광주시내 전역, 크고 작은 동네 문화공간들에서 펼쳐진다. 한국에 파견나온 각국 대사관이나 문화원들이 함께하면서 광주파빌리온은 광주비엔날레의 시그니처로 자리잡을 전망이다.
또 하나 주목되는 것은 광주시의 적극적 참여다. 파빌리온에 이어 시가 마침내 비엔날레를 문화관광상품화 전략을 치켜들었다. 가을 축제를 한 데 묶어 'G-페스타'로 운영하고, 다양한 문화관광상품을 개발해 비엔날레 시즌을 최고의 문화관광여행으로 브랜딩하고 있다.
접근도가 높아지고 다양성이 더해지며 그간 구경꾼으로 전락했던 시민들이 저마다의 방식으로 비엔날레를 누려볼 만도 하다.
다만 대내외 환경이 녹록지 않다. 세계 미술이 아트페어로 급재편된데다 비엔날레 홍수로 다양한 문화예술축제의 하나로 전면 경쟁에 내몰린 상태다.
지금의 좌표를 살피고 나아갈 길을 점검해야하는 이유다.
문화관광상품으로서 경쟁력을 떠나 궁극적으로 문화예술 생태계 발원지로서의 역할을 요구받고 있다. 행사 기간만 반짝하는, 행사로 끝나서는 안된다는 이야기다.
부산영화제는 문화예술행사의 살아있는 교본에 가깝다. 광주비엔날레가 1995년 100억원이 넘는 예산으로 화려하고 거창하게 출발한 것과 달리 부산영화제는 이듬해 단 22억원으로 초라하게 문을 열었다. 광주비엔날레가 갈수록 쪼그라드는 것과 달리 부산영화제는 2010년대 이후 110∼150억원대를 오가는 대규모 국제행사로 자리를 잡았다. 무엇보다 부산에 영화사와 영화아카데미 등 영화 관련 산업이 구축돼 영화생태계를 구축한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여기에 지난 정부가 부산 영화밸리에 20년 동안 8천억원을 지원키로 해 향후 생태계는 더욱 확장될 전망이다.
미래로 가려면 국제적 전문가 필요
신포도 타령은 더이상 안된다.
부산의 여러 성공 요인중 문화부 차관 출신으로 부산영화제를 21년여간 진두지휘해온 김동호 전 부산영화제 조직위원장, 이사장을 거론치 않을 수 없다. 부산은 전문영역을 전문가에게 맡긴 것이다. 문화도시, 문화수도를 꿈꾸는 도시에 30년 비엔날레를 관통하는 국제적 전문가 하나 없는 현실은 치명적이다. 앞으로 30년, 100년을 준비하는 뜨거운 관심과 깊은 사랑이 절실하다.
조덕진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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