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절이 하 수상하다. 지금은 그 어느 때보다 건강한 역사 인식이 간절한 시기. 역사는 미래를 비추는 거울이다. 비뚤어지고 잘못된 신념은 균형감 갖춘 세계관을 방해한다. 민주주의와 인권, 평화에 대한 의지를 다지는 일은 언감생심이 된다.
무시로 '오늘 대한민국에 산다는 것'을 생각한다. 진영의 논리가 확산되고 편가르기와 이기주의가 판을 치고 있다. SNS를 유령처럼 떠도는 익명성은 면죄부부터 주고 그들의 손과 입을 통해 퍼지는 바이러스는 애먼 사람에게 치명상을 주는 불똥이 되기도 한다. 독도문제에서부터 위안부, 사도광산 등에 이르기까지 논쟁거리조차 될 수 없을 것만 같은 주제도 어찌된 일인지 중심을 못잡고 갈팡질팡 춤을 춘다. 다양성 차원에서 존중하고 포용해주기에는 언급하기조차 저열한 내용도 많다.
문제는 깜냥조차 안되는 지식인들에 있다. '너무 많이 안다'고 자부하는 이들이 팔을 걷어붙이면서까지 혹세무민하는 형국이야말로 눈꼴신 모습의 극치다. 국민을 대변한다는 정치인이라고 다를까. 도무지 공감대를 얻기 어려운 억지 주장에도 단골처럼 '국민'을 끌어다 쓴다. 한 번도 물어본 적이 없으면서 '국민은 안다', '국민이 분노한다'며 아는 체를 하는 것도 거슬린다. 국민을 안심시키기보다 걱정거리로 전락한 모양새다.
무릇 '정치는 국민보다 반보 앞서야 한다'고 하지 않았던가.
"정치는 국민보다 반보 앞서야 한다"
처음엔 우연으로 생각했다. 이른 아침부터 무더위가 지지리 기승을 부린 날이었다. 몸은 여객선터미널을 향했지만 마음은 뒷걸음질을 치고 있었다. 배를 타고 오갈 때마다 적지 않은 객고로 어려움을 겪은 터였다. 꼭 한 번 가야 했으나 가지 못했던 곳을 가게 됐다는 위안이 그나마 등을 떠미는 힘이었다.
'평화의 섬'은 뜨거웠다. 뙤약볕 아래서 가장 먼저 반겨준 것은 '하의도'라는 글씨가 선명한 표지석이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의 생가를 가는 도중 먼저 눈에 띈 것은 도로변에 길게 늘어선 인동귤(하귤)이다. 인동귤이 하의도에 뿌리를 내린 이유는 무엇인가. 혹한의 추위를 이겨내고 열매를 맺는 모습이 인동초와 흡사하기 때문이란다.
김 전 대통령과 시선이 마주친 곳은 추모관이었다. 당신은 엷은 미소로 처음 찾은 방문객을 맞아주었다. 하 수상한 시절, 무슨 지혜의 말씀이라도 해주지 않으실까, 잠시 머뭇거렸지만 헛된 바람이었던 모양이다. 당신은 말이 없다. 김해 봉하마을의 기시감에서 비롯된 것인지 모른다. 당신은 아실까. 오늘 대한민국이 어디로 가야 할 것인지. 왼쪽으로 갈 것인가, 오른쪽으로 갈 것인가, 아니면 아예 되돌아갈 것인가.
생가를 돌아보고 자석처럼 끌려간 곳은 그의 유년 시절부터 정치 역정을 한눈에 살펴볼 수 있는 석조 벽이었다. 김 전 대통령의 약력과 추억, 투쟁, 평화를 주제로 한 각각의 글이 길을 따라 쭉 펼쳐진 곳이다. 어린 시절, 청년사업가 시절, 노벨평화상 수상 기념 주화 등이 사진과 함께 실려 있었다.
문제는 손차양이 무색할 정도로 뜨거운 볕이었다. 열기에 질린 만큼 거충 훑어보고 빨리 벗어나려는 마음에 발길을 재촉했다. 그때 문득 맞은편 바닥에 검게 웅크리고 앉아있는 무엇인가가 눈에 띄었다. '인생은 생각할수록 아름답고 역사는 앞으로 발전한다', '국민은 나의 유일한 영웅이며, 최후의 승자이며, 양심의 근원', '행동하지 않는 양심은 악의 편'…. 김 전 대통령의 어록들이 하얗게 새겨져 있었다. 대부분 귀에 익은 내용이었지만 생가에서 접한 글은 바로 곁에서 들려주는 말처럼 생생했다. 정돈된 길을 따라 하나하나 읽어가면서 온몸이 땀에 젖는 것도 몰랐다.
그때 문득 머릿속에 떠오르는 문구가 있었다. 행동하는 양심. 그 어떤 압력이나 회유에도 꺾이지 않을 강한 결기가 느껴지는 그 글은 생가 초입에서 맨 처음 만난 동상 아래에 새겨져 있었다. 갑자기 뒷덜미가 서늘한 한기를 느끼는가 싶더니 가볍게 몸이 떨렸다. 그러고 보니 당신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던 것이 아니었다. 그는 처음부터 줄곧 당신의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단지 어설픈 방문객이 너무 늦게 안 것일 뿐이었다. 물색없는 자신을 탓하고 있을 즈음 주어진 일정을 재촉하는 차가 앞에 섰다.
신안의 많은 섬 가운데 하필 그날 하의도를 찾은 것은 우연이었을까. 하의도를 다녀온 다음 날 김 전 대통령 생가가 전남도 문화유산으로 지정됐다.
역사는 불의에게 편들지 않는다
어쩌면 필연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광주 예술의전당에서 김 전 대통령을 다시 만났다. 탄생 100주년을 기념하는 공연무대였다. 이날은 김 전 대통령 서거 15주년(18일)을 하루 앞둔 날이기도 했다. 지난 2009년 옛 전남도청 앞에 마련된 분향소를 온 가족이 찾았던 기억이 어제 일처럼 선명했다.
공연은 신안 하의도에서 출생한 후 인동초처럼 수많은 시련을 거쳐 제15대 대통령에 당선되고 삶을 마감하기까지 파란만장한 일생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졌다.
공연장은 관객들의 열기로 뜨거웠다. 배우는 열연과 열창으로 관객들의 감정선을 자극했다. 변사의 목소리는 구슬프고 서러웠다가 어느 순간 결연에 찼다. 노래는 목포의 눈물에서 민중가요인 상록수와 아침이슬, 임을 위한 행진곡으로 넘어갔다. 목포의 눈물은 호남인들의 애환이 서린 대표적인 노래. '사랑도 명예도 이름도 남김없이…' 임을 위한 행진곡에서는 당장이라도 함께 일어나 힘차게 팔을 흔들며 노래를 따라부를 것처럼 엉덩이를 들썩거렸다. 관객들은 김 전 대통령의 발자취를 따라 삶과 죽음을 넘나들며 불끈 주먹을 쥐었다. 민주주의를 위해 목숨을 바치고 투쟁한 삶, 경제를 살리고 남북화해의 길을 여는데 혼신의 노력을 기울인 일생이었다. 공연은 끝났어도 울림은 길게 남았다. 당신의 생생한 육성이 오랫동안 귓가에 머물렀다.
신안 하의도와 광주 예술의전당에서 잇따라 김 전 대통령을 만난 것은 어쩌면 필연. '오늘 대한민국에 산다는 것'은 오늘 우리 역사를 직시해 내일의 역사를 만들어갈 책무를 깨닫는 일이다. 불의에 눈과 귀를 감지 않고 눈을 부릅떠 훗날 오늘이 부끄럽지 않은 역사로 남을 수 있도록 하는 일이다.
"저는 불의와 타협하는 것은 영원히 죽는 것이고, 죽더라도 타협을 거부하는 것이 영원히 사는 길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역사를 믿었기 때문에 그랬습니다. 역사는 결코 불의에게 편들지 않습니다."(김 전 대통령 '퇴임사' 중)
독자 여러분의 제보를 기다립니다.
광주・전남지역에서 일어나는 사건사고, 교통정보, 미담 등 소소한 이야기들까지 다양한 사연과 영상·사진 등을 제보받습니다.
메일 mdilbo@mdilbo.com전화 062-606-7700카카오톡 플러스친구 ''무등일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