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한 컷과 영상 속 이미지가 도시를 규정하기도 한다. 프랑스 파리는 에펠탑으로 당분간 기억될 듯 싶다. '에펠탑으로 시작해 에펠탑에서 피날레를 장식한 공연'이란 점에서다. 지난 주말 100년 만에 다시 열린 올림픽 개막식 이야기다. 파리는 부다페스트·프라하와 함께 야경이 아름다운 3대 도시다. 레이저 쇼 등 미디어 파사드의 발광체이자, 무대의 일부가 됐던 에펠탑은 도시의 랜드마크로서 전 세계인에 각인됐다. 도시 마케팅 측면에서 이번 공연을 들여다 봤다.
파리는 다 계획이 있었다. 미디어 영향력을 십분 활용했다. 개막 공연의 패러다임을 바꿔 놓으면서다. 128년 올림픽 역사에서 경기장 밖, '물 위의 개회식'은 처음이었다. 무대가 마련된 알렉상드르 3세 다리는 에펠탑 '뷰티샷'이 가능한 곳이다. 공연장은 도시로 확장했다. 노트르담 대성당·루브르 박물관·오르세 미술관·콩코르드 광장·그랑 팔레 등 관광명소는 TV 중계 화면을 통해 수 억 명 시청자들에게 실시간 노출됐다. 인기 드라마 속 PPL(관광상품)처럼.
"가상 이미지, 실재 압도하는 시대"
장소 마케팅의 극대화. 노림수는 극명했다. 물랑루즈 댄서들의 '프렌치 캉캉'과 뮤지컬, 발레, 패션쇼 등은 센강과 미술관 주변에서 펼쳐졌다. 마지막 하이라이트 무대는 달처럼 하늘로 두둥실 떠오른 성화대 뒤 에펠탑 2층 중앙. 깜깜한 밤, 빗방울 떨어지는 검은색 그랜드 피아노 옆에서 진주 자수로 빛나는 순백의 드레스를 입은 셀린 디온이 부른 '사랑의 찬가(샹송의 대명사 에디트 피아프의 대표곡)'는 색다른 이미지로 다가왔다. 장소성에 부합한 스토리텔링과 메시지는 전율이었다.
"가상 이미지가 실재를 대체하고 압도하는 시대다." 프랑스 사회학자이자 철학자인 장 보드리야르의 말이다. 포스트 모더니즘의 거장인 그는 이미지를 통해 현대 사회를 날카롭게 분석·해석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개막 공연은 그의 대표적 이론인 '시뮬라시옹'을 떠오르게 했다. 대중매체에서 디자인된 이미지(시뮬라시옹)를 실재보다 더 실재적인 것으로 인식하며 소비한다는 거다. 분절된 각각의 공연 현장 보다, TV를 통해 만들어진 파리 이미지를 더 진짜로 믿는다는 의미다.
부다페스트에서의 신선한 충격이 소환됐다. 2017년 세계수영선수권대회 당시 '하이다이빙 경기장'은 한 폭의 그림같았다. 랜드마크인 국회의사당을 주 무대로 이용하면서다. 카메라 앵글이 예술이었다. 의사당을 마주본 채 선수들이 27m 높이에서 다뉴브강 쪽으로 뛰어내릴 때마다 가장 뾰쪽한 검정색 첨탑과 돔양식의 자줏빛 반원, 하얀색 본관 건물의 정중앙을 차례로 통과했다. TV 시청 자체 만으로도 도시의 아름다움에 빠져들게 했다. '아! 도시 마케팅은 이렇게 하는 거구나….' 감탄이 절로났었다.
감동은 '현타'로 이어졌다. 광주의 현주소 탓이다. 도시 브랜드는 중요하다. 매력적인 첫 인상은 다시 찾고 싶은 이미지를 만들기 때문이다. 장밋빛 청사진만 보여줄 수 없다. 도시의 과거·현재의 정체성과 미래 방향성 등을 담아내야 해서다. 부단한 노력과 고민, 공력이 필요한 이유다. 앞선 파리와 부다페스트처럼 말이다. 도시 브랜드는 다양한 요소들이 연계된 복합적 개념이다. 모든 사람마다 다른 도시 이미지를 하나의 대표 브랜드로 만들어 마케팅하기는 쉽지 않다.
문제는 광주가 지향하는 대전제, 즉 브랜드 마케팅과 도시 관광의 궁극적 지향점이 뭔지 잘 모르겠다는 점이다. 예컨대, 광주의 랜드마크는 무엇인지, 외지인들에게 광주의 무엇을 어떻게 보여줄 지 하는 점 등이다. 관광객들이 주로 찾는 곳만 봐도 그렇다. ▶광주과학관 ▶무등산국립공원(증심사) ▶김대중컨벤션센터 ▶무등산 원효지구 ▶광주박물관 ▶패밀리랜드 ▶광주호 호수생태원 ▶영산강문화관(승천보) ▶우치동물원 ▶전일빌딩245. 한국문화관광연구원이 지난해 광주 주요관광지점 입장객 통계를 분석한 결과다. 이들간 연결점 찾기도 쉽지 않다.
"광주 랜드마크 무엇, 브랜드 전략 있나"
광주에서 야구는 스포츠 그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전라도 사람들에게 '검빨 유니폼'은 자부심이었다. 83년부터 97년까지 9차례나 한국시리즈에서 우승했다. 야구장은 해방구였다. 가슴 속 맺힌 한은 무등야구장에서 풀렸다. 분위기를 타서 승기를 잡을라 치면 어디선가 '목포의 눈물'이 흘러나왔다. "김응용"을 연호하다 "김대중"을 외쳤다. 처음 만난 이들도, 그렇게 하나가 됐다. 아픔도 함께했다. 90년대 초까지 해태는 5월 18일이면 광주에서 야구를 할 수 없었다. 일종의 분열책 탓이었다.
광주가 주목받고 있다. 국내에서 가장 많은 팬을 보유한 KIA타이거즈가 선두를 달리면서다. 광주-기아챔피언스필드엔 서울·경기, 대구·부산 등 전국에서 구름 관중이 몰린다. 지난 30일엔 평일임에도 2만500석이 매진됐다. 벌써 19번째다. 100만 명을 넘보고 있다. 트렌드를 읽는 눈이 필요하다. 야구장 분위기가 바뀌면서다. 여성과 20·30대 젊은 팬들이 급증하면서 챔필은 핫 플레이스가 됐다. 야구장을 음식점과 포토존, 쇼핑몰처럼 즐긴다. 소셜미디어(SNS)를 통한 실시간 소통에도 능하다.
광주가 인기 관광지는 아니다. 쇼핑·숙박·자연경관 등을 우선시하는 이들을 끌어들일 매력적 요소가 많지 않아서다. 전략적 접근이 중요한 이유다. 프로야구가 대표적이다. 미국 메이저리그에선 월드시리즈 우승팀이 연고 도시에서 퍼레이드 하는 전통이 있다. 100만명 가량 모인다고 한다. 광주가 벤치마킹 해보면 어떨까. 옛 전남도청과 5·18 광장, 분수대, 전일빌딩245 등을 뷰티샷으로 쓸 수 있는 금남로에서다. 광주 만의 장소성과 차별화된 스토리·메시지가 예상치 못한 시너지를 낼 수 있다. 광주와 KIA의 멋진 콜라보를 기대한다. 이미지는 브랜드 뿐만 아니라 도시 경쟁력을 키울 수 있는 힘과도 직결된다. 마케팅의 성패는 디테일에 있다.
유지호 디지털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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