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이면 노란색의 빛깔을 띠며 가로수 길을 물들이는 은행나무. 은행나무는 병충해, 공해에 강해서 가로수로 많이 심는다. 가로수 길 전등불이 비치는 노란 색의 나무 아래에서 코트 깃을 올리며, 도심을 산책하는 기억들은 누구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은행나무 열매를 잘못 밟아 코를 찌르는 역한 냄새에 놀란 경험도 있을 것이다.
은행나무 열매는 살구와 비슷하게 생겨서 살구 행(杏)과 겉껍질이 은색을 띠어 은빛 은(銀)이라는 자를 합하여 은행(銀杏)이라고 불린다. 은행나무에는 독성물질이 있기 때문에 벌레나 동물들이 먹지 않는다. 그래서 오직 사람만이 은행나무 잎이나 열매에 있는 효능을 과학적으로 분석하여 여러 질환과 치료약으로 개발하고 있다.
은행 열매는 천식, 기침 등 호흡기 질환, 면역력 강화, 피로 회복에 도움을 준다. 또한 항산화제인 베타카로틴 성분이 있어 피부 노화에 효과적이며, 뇌 기능 활성화에 도움이 돼 뇌건강에 좋다. 하지만 은행 열매에는 메틸피리독시(MPN)이라는 독성성분이 있기 때문에 익혀서 하루 섭취량이 10개 내외로 먹어야 하고 생으로 먹거나 지나치게 섭취할 경우 복통, 구토 등의 증상이 나타나고 심할 경우 사망에 이를 수도 있다.
특히 안과 영역에서 은행나무 추출물은 혈류를 개선하고 망막에 산소와 영양소 공급을 원활하게 하며, 항산화 작용으로 노화로 인해 발생하는 황반변성과 당뇨망막병증의 예방에 도움이 된다. 또한 백내장, 안구건조 개선에도 효과적이다. 안과의사인 나는 눈가떨림이나 이명증으로 고생하는 환자에게 은행나무 추출물인 징코빌로바 성분을 섭취하라고 권하기도 한다.
이렇게 가을이면 노란 은행나무 잎으로 우리를 사색에 잠기게 하고 열매는 우리 건강에 이로움을 주니 얼마나 감사한가. 그리고 내게는 은행나무 열매 얽힌 특별한 이야기가 있다. 예전에는 은행나무 열매를 깨끗하게 씻은 후 열매에 숫자나 기호를 써서 학교 선발이나 행운권 추첨 등에 사용했다. 손잡이가 달린 큰 통에 숫자나 기호를 쓴 은행나무 열매를 집어넣고 열매하나 정도가 나올만한 작은 구멍을 만들어 추첨하는 방식으로 진행했다.
7살 때, 추운 겨울 날씨임에도 불구하고 나는 어머니의 손을 잡고 초등학교 입학 배정을 위해 학교 강당을 향했다. 180명 정원인 학교에 1천명이 넘는 지원자가 몰려왔고 모두들 상자에서 자신의 번호가 적힌 은행나무 열매가 나오기를 기다렸다. 어머니와 나는 떨리는 마음으로 2시간을 넘게 기다렸다. 추첨이 거의 다 끝나가고 이제 학교 입학할 수 있는 정원이2~3명 정도 남은 상태였고 내 표정은 더욱 굳어졌다. 어머니는 내게 "종대야, 안될 것 같다.
이제가자."라며 하시며 나의 손을 잡고 강당을 나가려고 했다. 그런데 그때 드디어 나의 은행나무 열매의 번호가 불렸다. 내가 초등학교 입학 배정에 당첨된 것이다.
은행나무 열매 당첨으로 인해 매일 왕복 50분을 걸어 초등학교 생활을 보내게 됐다. 6년간 훌륭한 선생님의 지도하의 문학적 소양을 키우고 세상을 보는 지혜, 사람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마음 등 교육 이외에도 나를 성장할 수 있는 발판을 만들어줬다. 커다랗고 높은 나무들이 가득하고 녹음이 짙은 자연 속에서 우정과 경쟁을 통해 즐거운 학교생활을 하며, 내인생의 어린 시절을 보냈다.
그래서 은행나무 가로수 길을 걸을 때마다 가고 싶은 초등학교에 배정되어 기뻐하는 7살의 나와 그런 나를 해사하게 바라보는 어머니가 아른거린다. 은행나무 열매는 내게 첫 행운을 가져다줬을 뿐만 아니라 사랑하는 어머니와의 추억도 안겨주었다. 오늘 문득 은행나무가 올해도 잊지 못할 행복한 행운을 또 가져다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주종대 밝은안과21병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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