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5월이다. 5월 누군가에겐 끔찍한 악몽 속에 숨죽인 43년의 세월이었을 것이다. 5월만 되면 광주는, 아니 5월 어머니들은 가슴 한켠이 철렁 내려앉는다. 잊을만 하면 느닷없이 툭 툭 튀어나오는 막말과 역사왜곡이 그렇고, 이루지 못한 진실규명이 그렇고, 수많은 목숨을 앗아간 민주와 평화에 대한 사그라진 열망도 그렇다. '5·18의 진실은 보수와 진보로 나뉠 수 없다'는 대명제와 '광주는 아직도 서럽고 슬프다'는 변함없는 생각 속에 5월 관련 몇컷 단상을 통해 '그날의 정신'을 되새겨본다.
S# 1: 한국당 느닷없는 국회 공청회
"5·18 사태가 발생하고 나서 5·18 폭동이라고 했다.…첨단 과학화된 장비로 사실에 기초해 논리적으로 북한군이 개입한 폭동이라는 것을 밝혀내야 한다…" 2019년 2월 8일, 설 연휴가 끝나자마자 김진태 의원 등 자유한국당 의원들이 국회 의원회관에서 연 공청회에서 이종명 의원이 발언한 내용이다. 김순례 의원도 "…종북 좌파들이 판을 치면서 5·18 유공자라는 괴물 집단을 만들어내 우리 세금을 축내고 있다"고 했다. 북한 개입설을 퍼트려 유죄 판결까지 받은 지만원까지 초청한 자리였다.
이종명 의원은 당 윤리위 제명처분을 받았다. 그러나 축사 영상을 통해 "5·18 문제 있어서만큼은 우파가 물러서면 안 된다"고 말했던 김진태 의원과 김순례 의원에 대한 징계는 흐지부지됐다. 바로 2월 27일 예정된 한국당 전당대회 때문. 두 의원은 각각 당 대표 후보와 최고위원 후보로 나란히 출마했지만 김순례의원만 최고위원에 오른다. 이후 김진태 의원은 2년 뒤인 2022년 국민의힘 후보로 강원도지사 선거에 당선된다.
S# 2: 국민의힘 최고위원의 문답 영상
4년 뒤인 2023년 3월. 김재원 국민의힘 최고위원이 전광훈 목사와 주고받은 5·18 문답영상이 전파를 탔다. 전씨가 "헌법에 5·18정신 넣겠다고 하는데 그런다고 전라도 표 나올 줄 아느냐. 전라도는 영원히 10%"라고 했고, 이에 김 최고가 "그건 불가능하고 저도 반대"라고 답한다. 해당 영상에서 전씨가 "전라도한테 립서비스 할려고 한 것이지"라고 묻자 "표 얻으려 하면 조상묘도 파는게 정치인 아니냐"고 농담 섞인 담화를 주고받는다. 국민의힘 윤리위는 '5·18 민주화운동 정신을 헌법 전문에 넣겠다'는 윤석열 대통령의 대선공약까지 부정하는 3월12일자 사랑제일교회 발언을 문제삼아 김 최고에 '당원권 정지 1년'을 결정한다. 김 최고는 누구인가? 보수의 심장이라는 대구에서 중·고교를 나와 2007년 한나라당 대선후보 선출 전당대회서 박근혜 후보측 대변인으로 활동한 친박계 정치인이다. 이후 '정권교체를 위해서는 악마의 손이라도 잡아야 한다'는 취지의 발언과 함께 배를 갈아탄 뒤 올해초 전당대회를 통해 최고위원에 오른 인물이다.
S# 3: '보수 심장' 대구시장의 사과
"당 소속 일부 국회의원들이 저지른 상식 이하의 망언으로 인해 5·18정신을 훼손하고 광주시민들에게 깊은 충격과 상처를 드렸습니다. 자유한국당 소속 대구시장으로서 시장님과 광주시민들께 충심으로 사과드립니다." 2019년 2월 자유한국당 일부 의원들의 '5·18 망언'에 대해 당시 권영진 대구시장이 올린 사과의 글이다. 권 시장은 자신의 페이스북에 광주시장에게 보낸 문자도 공개했다. "달빛동맹이 위축되거나 약화돼서는 안된다고 생각한다.…역사왜곡과 분열의 정치가 우리사회에 발붙이지 못하도록 해야 합니다…."
박정희·김대중 이후 수십년간 정치적 대립각을 세웠던 대구와 광주가 아닌가. 그러나 두 지역이 맺은 달빛동맹 10년의 교훈은 크다. '광주 예산은 대구가, 대구 예산은 광주가 책임진다'는 예산동맹에서부터 이승만 독재에 저항한 2·28민주운동과 5·18민주화운동을 기념한 교차방문과 228번-518번 시내버스 운행의 역사동맹, 상공인들 교류·상생협력의 경제동맹, 문화동맹 등이 그것이다. 그러나 여전히 정치에 휘말리고 지자체 주도의 한계도 있지만 기업인과 민간교류 확대 등을 통해?달빛철도를 중심으로 한 1천800만 영호남 공동발전을 반드시 이뤄야할 숙명으로도 여겨진다.
'헌법 전문 수록'보수정권서 성사되면
'미래세대를 위해 하루빨리 5·18정신을 헌법전문에 담자' 강기정 광주시장은 "내년 총선과 동시에 5·18정신 헌법전문 수록을 위한 원포인트 개헌이 될 수 있도록 합의해 달라"고 국회와 정부에 제안했다. 윤석열 대통령은 대선을 전후해 민주묘지 참배 후에 "5·18정신은 자유민주주의 정신이고 헌법 가치를 지킨 정신이다. 개헌 때 헌법 전문에 반드시 올라가야 한다고 전부터 늘 주장해왔다"고 말했다. 참모진들에는 "5·18은 진보 진영의 전유물이 아니다. 특별한 사유가 없는 한 매년 광주로 갈 것이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대학생 시절 모의재판을 통해 전두환에 무기징역을 구형했던 내용은 잘 알려진 바다. 5·18은 그래서 여야가 따로 없고 광주가, 대구가, 부산이 따로 있을 수 없는 이유다.
'5·18 정신을 헌법 전문에 담자'는 논의는 노무현 정부 때도, 10년 후인 2017년 문재인 대통령의 대선 공약에도 반영됐지만 흐지부지됐다. 이제 진보 성향의 정권에서도 이뤄내진 못한 것을 보수정당 정권에서 처음으로 성사된다면? 넋나간 막말도 사라지고, 오월어머니들의 가슴부여잡는 애절함도 덜할 것이고, 용서와 화합으로 역사에, 미래에 길이길이 5월정신이 전해지지 않을까?
강동준 마케팅사업본부장 / 이사·前 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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