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등칼럼] '파리대왕'의 소년들은 그 후 어찌 됐을까

@조덕진 입력 2023.05.10. 17:22

어느 미래 핵전쟁을 피해 피난가던 영국 소년들이 탄 비행기가 무인도에 추락한다. 철저하게 외부와 고립된 환경에서 6세에서 12세에 이르는 일단의 어린 소년들은 그들만의 생존 환경을 만들어간다. 처음에는 '문명국' 소년들답게 질서를 구축해가지만 이내 물리적 힘과 공포의 지배로 전락해간다.

'멀쩡한' 범죄자를 위한 변명

어린 소년들이 극단의 야만 상태로 변해가는 모습은 너무 사실적이어서 충격적이다. 소년 무리들이 결국 물리력에 의한 힘의 균형의 마침표를 찍을, 최후의 '인간사냥'에 나선 상황에서 극적으로 영국해군에 구조되는 것으로 소설은 끝이 난다.

'파리대왕'의 저자 윌리엄 골딩은 해군으로 2차 세계대전에 참전, 전쟁의 참상을 목도했다. 이후 교사 경험을 바탕으로 1954년 첫 소설 '파리대왕'을 발표해 수많은 논쟁과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1983년 골딩에게 노벨문학상을 안겨준 '파리대왕'은 탈제국주의와 탈식민주의, 인간본성을 어떻게 볼 것인가 등으로 학자와 연구자, 예술인들의 관심을 불태웠다. 지금의 절박한 관심사는 이 소년들은 어찌할까라는 가상의 질문이다.

아이들의 트라우마와 심리치료가 최우선일 것이지만, 일부 도덕주의자들의 애타는 아우성이 들리는 듯하다. 현대 언어로 번역 하자면 '아무리 극한 상황이라고 그런 짓을 할 수가 있느냐, 환경이 그렇다고 모두가 그러지는 않는다'라며 어린 청소년들의 극악함에 공분을 금치 못하고, 이들에 대한 사회적 법적 제재를 논할 것 같다는 과장에 내몰린다.

어린 청소년, 촉법 소년들의 범죄가 사회적 논란이다. 소년들의 광포함과 뻔뻔함에 경악을 금치 못하는 분위기다. 당장 촉법소년 연령을 낮춰 엄벌에 처하자고 법 개정이 논의중이고, 일반 성인 범죄자처럼 엄격히 다뤄야한다는 주장이 드세다. 이 사회적 공분은 윤리적인가. 아이들을 키워보거나 그들이 자라는 것을 곁눈질이라도 해본 이라면 세상의 모든 아이가 '천사'이고, '천재'라는데 이의를 제기하기 힘들 것이다. 그 천사, 천재들은 어쩌다 어느날 갑자기 악마가 된 것일까.

그들을 강하게 제압(엄벌)하고, 사회에서 배제시켜 버리면, 소위 문제 아이들을 재빠르게 제도권 밖으로 격리시켜버리면 내 아이와 나의 안전은 보장될까.

최근 경찰서에 질문을 넣었다. 범행을 저지른 아이들의 성장 배경이 궁금했다. "멀쩡하답니다". 다시 광주경찰청 아동청소년 관련 부서에 물었다. 일선 경찰의 '멀쩡'하다는 뜻을 짐작케 했다. '서민'가정 아이들이 대부분이고 중산층도 더러 있다는 설명이었다. 소위 '극빈계층'이 아니라는 표현으로 유추됐다. 그렇게 '멀쩡한'아이들이 범죄의 언저리를 맴돌고 있었다.

그런데 '멀쩡하다'는 시선은 온당할까. 우리 사회의 부조리, 부모의 사회적 지위나 경제적 수준이 아이들의 계급이 되는 약육강식과 각자도생의 부조리를 전제로 한 또다른 폭력은 아닐까.

제 아들 학폭 비위를 덮기 위해 온갖 법기술을 총동원해 결국 피해자는 대학진학에 실패하지만 가해자인 제 아들은 멀쩡하게 소위 일류대에 보낸 정순신 사태가 말해주듯이 학교마져, 아니 학교야말로 약육강식과 각자도생의 전형이다.

세상의 전부인 학교가 이 지경인 상황에서 질풍노도의 아동 청소년들이 받게될 박탈감은 칼이 돼어 아이들 심장을 찌를수도 있다. 설상가상 이 상처받은 아이들이 달려가 안길 곳이라곤 세상 천지 어디에도 없다. '네 주제'를 주홍글씨로 강제할 뿐 .

이 극단의 야만 상태가 언제든 어린 '천사'들은 범죄로 튕겨 내보내고야 마는건 아닐까. 결핍과 욕망의 뒤틀린 소용돌이까지 가세해 어린 범죄자를 끝없이 확대 재생산하는 것은 아닌가, 이 비극적 상황을 상수로 또아리를 틀게하고는 굳이 아이들을 악마화하고 있는것은 아닌가.

아이들 범죄의 고리를 끊으려는 움직임이 시린 가슴을 달랜다. 습관적이다시피 범죄를 저지르는 아이들 양상에 광주경찰청이 작은 숨구멍을 마련했다. 아이들 심리상담을 시작했다. 놀랍게도 짧은 시간에도 변화가 나타나고 있다고 한다. 웬수놈의 '돈'이 문제다. 사회복지 기금으로 시작하다보니 내년을 기약할 수 없고, 그나마도 넉넉지 못해 대상도 한정적이다.

'그늘'을 사랑하기 위하여

화사하고 찬란한 5월, 가정의 달이 아리다.

노동절을 지나 5일 어린이날로 본격화되는 온갖 날들, 화사하고 찬란해서 아프다. 그 화사함을 누리지 못하고 음지에 내몰린 아이들이 밟힌다. 보호자가 없어 사회의 보호에 내몰린 이땅의 수 많은 어린이와 어린 청소년들의 결핍이 시리다.

최소한의 숨구멍, 수많은 활동가들과 광주경찰청의 노력이 국가정책으로 확장되는 불가능을 꿈꿔본다. 모든 혁명은 불가능에서 시작했다.

슬퍼요
1
후속기사 원해요
0

독자 여러분의 제보를 기다립니다. 광주・전남지역에서 일어나는 사건사고, 교통정보, 미담 등 소소한 이야기들까지 다양한 사연과 영상·사진 등을 제보받습니다.
메일 mdilbo@mdilbo.com전화 062-606-7700카카오톡 플러스친구 ''무등일보' '

댓글0
0/3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