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특집] 전통 지키며 혁신···전국구로 '잎새'의 대반격

입력 2025.10.09. 19:06 도철원 기자
재도약 노리는 보해양조
동네소주 '잎새주'점유율
80%에서 20%로 급락위기
3달 연속 신제품 시장 탈환
새 돌파구 개척 행보 시금석
주류 다각화 新 풍미 제공
마시는 술에서 즐기는 술로
저당 등 건강 지향성 본격화
해외시장 진출 글로벌 확장
보해양조가 7월 출시한 잎새주 파티팩 .

주류 전문기업 보해양조가 급변하는 주류 시장 속에서 과감한 혁신을 선언하며 새로운 성장 동력 확보에 나섰다.

한때 광주·전남 주류시장에서 점유율 80%를 자랑하며 지역 대표 소주로 자리잡았던 '잎새주'는 최근 세대 교체와 소비 패턴 변화로 점유율이 20% 안팎까지 낮아졌다. 생존의 갈림길에 선 보해양조는 지난 7월부터 9월까지 석 달 연속 신제품을 내놓는 등 전례 없는 다각화 전략으로 돌파구를 모색하고 있다.

◆ 세대 교체와 소비 변화… 갈 곳 잃은 '동네 소주'

광주·전남을 대표하던 '잎새주'는 한 세대 전까지만 해도 술자리에서 빠지지 않는 이름이었다. 그러나 세대 교체와 소비 트렌드 다변화가 본격화되면서 점유율은 빠르게 하락했다.

보해양조가 직면한 위기는 국내 소주 시장 전반이 가진 구조적 한계에서 비롯됐다.

초록병 소주는 타피오카·옥수수·고구마·쌀·보리·밀 등 다양한 곡물과 전분 원료에서 얻은 주정을 정제수와 감미료에 섞어 만드는 희석식 방식이다. 업체별로 원료 조합이 다르지만 최종 제품에서는 그 차이를 구분하기 어려워 소비자들이 각 브랜드만의 고유한 특색을 느끼기 힘들다는 점이 한계로 지적된다.

여기에 도수도 16~17도 수준으로 비슷하게 맞춰지다 보니, 맛과 향에서 뚜렷한 차별화를 만들기 어려워졌다. 더욱 심각한 것은 도수는 지속적으로 낮아지는 반면 가격은 오히려 상승하는 모순적 상황이다. 소비자들 입장에서는 품질 대비 가격 경쟁력이 떨어진다고 느낄 수밖에 없다.

결국 소비자들은 전국적 인지도를 가진 대기업 브랜드를 선택하게 되고, 각 지역의 이른바 '동네 소주'들은 설 자리를 잃어간 것이다. 이는 곧 사람들이 기존 소주에 등을 돌리는 현실과 직결된다. 획일화된 맛, 애매한 정체성, 가격 대비 만족도 저하로 인해 소비자들은 더 이상 소주를 매력적인 선택지로 보지 않게 됐다.

주류 소비 패턴의 변화도 겹쳤다. 코로나19 이후 대규모 회식 문화가 축소되고 소규모 모임, 집에서 즐기는 '홈술'이 대세로 자리잡으면서 소비자들의 선택 기준은 크게 달라졌다. '취하기 위한 술' 보다 비싸더라도 '가치 있는 경험'을 주고 '나를 표현할 수 있는 브랜드'를 찾는 흐름이 뚜렷해진 것이다. 소주·맥주 중심의 시장이 와인·수입맥주·하이볼 등 다양한 주종으로 확장된 배경이기도 하다.

보해양조는 기존 '초록병 소주' 중심의 사업구조만으로는 소비자 이탈을 막을 수 없다고 판단하고 과감한 제품 다각화와 근본적인 사업 구조 혁신에 나섰다.

보해양조가 9월 출시한 고마그라제.

◆ 파티팩·은목서·고마그라제… 신제품으로 승부수

보해양조는 지난 7월부터 9월까지 매달 서로 다른 콘셉트의 신제품을 내놓으며 전례 없는 행보를 이어갔다.

첫 주자는 지난 7월 출시한 '잎새주 파티팩'이다. 5리터 대용량에 밸브식 구조를 적용한 이 제품은 소주업계 역사상 유례없는 파격적인 시도였다.

기존 소주업계에서는 360ml 녹색병 형태가 절대적 표준으로 여겨져왔다. 파티팩은 이런 고정관념을 과감히 깨고 새로운 소비 형태를 제안한 것이다. 소주병 13.9개 분량에 해당하는 용량을 하나의 용기에 담되 밸브 시스템을 통해 필요한 만큼만 따라 마실 수 있도록 설계했다.

집들이, 홈파티, 캠핑 등 변화하는 음주 문화에 최적화된 솔루션을 제공한다. 특히 개봉 후에도 신선도를 유지할 수 있어 '필요한 만큼만' 마시는 새로운 경험을 선사한다.

파티팩은 잎새주를 전국적으로 알리기 위한 전략적 제품이다. 형태와 화제성을 통해 지역 브랜드의 한계를 뛰어넘으려는 야심찬 시도라고 할 수 있다.

SNS에서도 큰 화제가 됐다. "소주를 정수기처럼 따라 마신다니 신기하다", "이런 아이디어는 왜 진작 나오지 않았을까", "캠핑 갈 때 이거 하나면 끝"이라는 반응이 쏟아졌다. 한 인플루언서가 올린 유튜브 숏츠 등에서는 파티팩 사용 영상이 누적 조회수 800만 회를 기록하고 있다.

8월에는 잎새주가 새 옷을 입었다. 라벨에는 장성 양조장 한가운데에서 오랫동안 자리를 지켜온 은목서 나무를 그려 넣었다.

보해양조가 8월 출시한 잎새주 은목서.

은목서는 보해양조 직원들에게 하나의 상징적 존재다. '은목서가 언제나 그 자리에 뿌리내리고 있듯 잎새주도 변함없이 지역민 곁을 지킨다'는 의미를 라벨 디자인에 담아냈다.

제조 과정에서의 차별화도 눈에 띈다. 다른 소주 업체들이 대나무 숯이나 미네랄 필터를 정제 과정에 활용하는 것과 달리, 보해양조는 전남 보성의 특산품인 녹차를 활용했다. 녹차 특유의 청정한 이미지와 깔끔한 맛을 통해 차별화를 꾀하는 동시에 전남의 지역 정체성을 강화한 것이다.

9월에는 완전히 새로운 주종에 도전한 '고마 그라제(GOMA GRAZE)'를 선보였다. 스페인 전통 증류주 오루호(Orujo)에서 영감을 받아 개발한 제품으로 알코올 도수가 40도 안팎인 오루호를 한국인의 반주문화에 맞게 17도로 낮춰 부담 없이 즐길 수 있도록 재해석했다.

주목할 점은 기존 희석식 소주가 아닌 일반 증류주라는 것이다. 보해양조가 소주를 벗어나 진정한 주류 다각화를 시도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제품명에는 지역 화합의 메시지가 담겼다. 영남 사투리 '고마'와 전라도 사투리 '그라제'를 결합해 서로 다른 지역이 하나로 어우러진다는 의미를 전한다.

맛의 특징은 포도 본연의 과실향에 은은한 꽃과 부드러운 바닐라향이 어우러져 기존 소주에서는 경험할 수 없는 새로운 풍미를 제공한다. 온더록은 물론 칵테일 베이스로도 활용할 수 있어 젊은 소비자와 주류 문화 트렌드에 폭넓게 대응할 수 있다.

각 제품의 타겟과 소비층과 시장이 달라 시너지 효과도 기대된다. 파티팩은 새로운 음주 문화를 주도하는 MZ세대, 잎새주 은목서는 품질과 지역성을 중시하는 소비층, 고마 그라제는 새로운 맛의 경험을 추구하는 마니아층을 각각 공략한다.

보해양조 장성공장 전경. 

보해양조 관계자는 "신제품들이 각각 명확한 전략적 포지셔닝을 갖고 있다"며 "기존의 '마시는 술'에서 '즐기는 술', '경험하는 술'로 브랜드 정체성을 확장해 나갈 것"이라고 설명했다.

보해양조는 이번 3개월 연속 신제품 출시가 일회성 이벤트가 아님을 분명히 했다. '잎새주'라는 뿌리와 전통을 지키면서도 새로운 주류 문화를 선도하는 투트랙 전략을 지속한다는 방침이다. 지역민과 함께해 온 향토 브랜드로서의 정체성은 유지하되, 혁신 제품을 통해 젊은 세대와 변화하는 소비 트렌드에 적극 대응한다는 전략이다.

내년에는 저도주·저당 등 건강 지향형 제품 등 새로운 카테고리로의 확장을 본격화할 예정이다. 해외 시장 진출도 추진해 K-주류의 글로벌 확산에도 기여한다는 목표를 세웠다.

보해양조 관계자는 "75년 역사의 보해양조가 지역 소주업체의 한계를 넘어 종합주류기업으로 도약하는 전환점을 만들어가고 있다"며 "전통적 가치와 혁신적 시도가 균형을 이루는 브랜드로 자리매김하겠다"고 말했다.

도철원기자 repo333@md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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