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칼럼] '검은 비', 기억의 방식 또한 민주적이어야 한다.

@남궁윤 예술감독 입력 2026.05.18. 13:49
남궁윤 예술감독

오월의 공간을 어떻게 기억해야 하는가. 우리는 오랫동안 그 질문 앞에 서 있었다. 어떤 이는 역사를 있는 그대로 보존해야 한다고 말하고, 어떤 이는 고통을 반복 재현하는 방식만으로는 현재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다가갈 수 없다고 이야기한다. 나는 그 두 마음이 모두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예술은 언제나 그 사이에서 새로운 숨결과 감각을 만들어내는 일이라고 믿는다.

정영창 작가의 ‘검은 비’를 처음 마주했을 때 내가 느낀 것은 ‘죽음’이 아니었다. 오히려 오래 닫혀 있던 공간 안으로 천천히 스며드는 빛의 감각에 가까웠다. 검은 표면 위에 놓인 시간들, 그리고 침묵처럼 이어지는 검은 쌀의 질감은 단순한 설치가 아니라 슬픔을 함부로 소비하지 않으려는 태도처럼 느껴졌다.

상무관은 원래부터 아픈 공간이다. 누군가의 마지막 숨과 울음이 머물렀던 장소다. 그러나 그 공간이 영원히 공포와 어둠 속에만 존재해야 하는가에 대해 우리는 이제 다시 질문해야 한다. 추모는 두려움만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빛과 침묵, 비움과 호흡, 그리고 살아있는 사람들이 서로를 바라볼 수 있는 열린 감각 속에서 비로소 기억은 현재가 된다.

예술은 과거를 지우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과거가 현재와 미래 속에서도 살아 움직일 수 있도록 언어를 바꾸는 일이다. ‘검은 비’가 중요했던 이유는 오월을 하나의 박제된 이미지로 가두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 작품은 상무관 안에서 죽음의 공간을 생명의 사유 공간으로 전환하려 했다. 우리는 이제 기억의 방식 또한 민주적이어야 한다는 사실을 고민해야 한다.

하나의 해석만 존재하는 공간은 결국 또 다른 침묵을 만들 수 있다. 광주는 원래 다양한 목소리와 연대, 자유로운 시민의 힘으로 만들어진 도시였다. 그렇기에 예술 역시 열려 있어야 한다. 누군가는 침묵으로 기억하고, 누군가는 음악으로, 누군가는 그림과 설치와 몸짓으로 기억할 수 있어야 한다.

나는 ‘검은 비’를 통해 오월이 더 많은 세대와 연결될 가능성을 본다. 그것은 단지 과거를 애도하는 작업이 아니라 지금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어떤 방식으로 인간의 존엄을 바라볼 것인가에 대한 질문이다.

상무관은 닫힌 어둠의 상징이 아니라 빛과 숨, 그리고 사유가 드나드는 공간이어야 한다. 예술은 기억을 지키기 위해 존재하지만, 동시에 기억이 살아 움직이게 만들기 위해 존재한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누군가를 배제하는 언어가 아니라 더 많은 시선과 감각이 공존할 수 있는 열린 태도일 것이다. 그리고 나는, 그 열린 가능성 안에서 ‘검은 비’가 다시 빛을 만나기를 바란다. 무엇보다 우리는 예술가를 단지 ‘외부인’이나 ‘이방인’의 시선으로 바라보지 않아야 한다. 오랜 시간 독일에서 살아오며 작업해온 한 예술가가 광주의 상무관을 바라보며 건네는 감각과 질문 또한 우리에게 도착한 하나의 예술적 선물이자 기적일 수 있기 때문이다.

외부의 시선은 때로 우리가 익숙함 속에서 놓치고 있던 본질을 다시 바라보게 만든다. 예술은 특정한 분류와 권한 속에 점유되는 것이 아니라 자유롭게 피어나야 한다.

광주의 정신은 이제 지역의 경계를 넘어 세계의 정신이자 우리의 정신이 되었다. 그 정신은 결국 인간의 존엄과 자유, 연대에 대한 이야기다. 예술은 포용과 이해의 언어이며, 사람 사이의 경계와 권력의 단단한 층위를 조용히 녹여내는 힘을 가지고 있다.

정영창 작가는 이미 오래전부터 자신의 작품과 ‘검은 비’가 지나온 시간들을 깊이 알고 있었다. 그리고 2025년, 나는 그의 작품에 대한 생각을 이야기할 기회를 갖게 되었다. 그때 나는 이미 작품 스스로가 말을 하고 있으며, 스스로 선택을 끝낸 상태라고 느꼈다.

‘검은 비’는 시대의 이슈와 수많은 논쟁을 지나오며 다양한 경험과 시간을 견뎌왔다. 그리고 그 과정 자체를 통해 이미 하나의 독립적인 작품이자 예술로 완성되어가고 있었다. 예술은 단지 결과로 완성되는 것이 아니라 시간과 충돌, 질문과 침묵까지 모두 통과하며 비로소 자기 자신의 형태를 갖게 된다.

우리는 과연 평생을 예술로 살아온 한 작가의 인권과 존엄을 충분히 지켜주고 있었는가.

이곳은 인권의 도시라 불리는 광주다. 그렇다면 우리는 충분한 예술적 존경을 받아야 할 작가에게 도리어 상처를 주고 있었던 것은 아닌가. 자신의 작품을 헌정하겠다는 작가에게 우리는 과연 예의를 지닌 태도로 응답했는가.

예술가는 쉽게 만들어지지 않는다. 오랜 시간 자신의 삶과 세계를 통과하며 겨우 한 사람의 진실한 예술가가 탄생한다. 그렇기에 우리는 진실한 예술가와 작품에 대한 존중을 배워야 한다. 우리 주변에는 이익과 권력의 언어가 너무도 많다. 그러나 광주는 그것과는 다른 방향을 지향해야 하는 도시라고 믿는다.

한 예술가가 오랜 시간을 지나 지금도 여전히 상무관을 바라보고 서 있다. 그러나 작품은 빛 속에서 존재해야 할 자리를 떠나 어둠 속에 머물러 있었다.

검은 비》가 지나온 이 일련의 과정은 결국 이 시대를 홀로 견디며 살아가는 예술가들에 대한 보호와 존중, 그리고 스스로 자신의 자리를 결정할 수 있는 안정이얼마나 중요한가를 보여준다. 나는 ‘검은 비’가 단순히 하나의 작품을 둘러싼 사회적·문화적·역사적 논쟁의 선 위에 머무는 작업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것은 이 시대가 반드시 통과해야 할 하나의 예술적 운동에 가깝다고 본다. ‘검은 비’를 통해 우리가 마주하고 있는 것은 결국 작품의 존치 여부가 아니다.

예술을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 예술가를 어떻게 존중할 것인가. 그리고 인간의 표현과 감각을 어떤 방식으로 지켜낼 것인가에 대한 질문이다. 예술은 언제나 시대의 가장 연약한 곳에서 시작된다. 권력과 제도, 여론과 이해관계 사이에서 예술은 쉽게 흔들리고 밀려난다. 하지만 그럼에도 끝까지 자기 자리를 지켜내려는 움직임 속에서 비로소 새로운 시대의 감각이 만들어진다.

나는 이번 ‘검은 비’의 과정이 단순한 논쟁이나 사건이 아니라 예술을 지켜내기 위한 하나의 움직임, 하나의 운동으로 기억되기를 바란다. 그 운동은 거대한 구호가 아니다. 한 사람의 감각을 지켜주는 일, 한 예술가의 시간을 함부로 훼손하지 않는 일, 그리고 작품이 스스로 존재할 수 있는 자리를 인정하는 일에서부터 시작된다. 우리들은 결국 ‘나’를 지켜야 한다. 타인의 시선 속에서 지워지지 않는 나, 침묵 속에서도 끝내 자기 언어를 잃지 않는 나, 상처받더라도 다시 자신의 감각을 붙들고 살아가려는 나.‘검은 비’는 어쩌면 바로 그런 우리의 모습이다. 침묵 속에 놓여 있지만 끝내 사라지지 않는 존재, 어둠 속에서도 스스로 빛을 기억하려는 존재. 그래서 나는 ‘검은 비’를 단지 하나의 작품이 아니라 지금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 자신의 초상처럼 바라보게 된다.

그리고 나는 믿는다.

‘검은 비’는 다시 빛 속으로 돌아갈 자격이 있다. 그것은 단지 작품 하나를 위한 일이 아니라, 예술과 인간의 존엄을 끝까지 지켜내려는 우리 모두의 태도에 대한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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