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칼럼] 50년 외길, 한 도예가의 구도자적 예술세계

@육성철 광주인권사무소장 입력 2026.05.14. 11:27
육성철 국가인권위원회 광주인권사무소장

도예가 송팔영(71)의 작업실은 화순 능주 언덕배기다. 2013년 가을, 한옥 50동이 들어선 햇살마을에 송 작가의 물레와 가마가 있다. 50년간 한눈 팔지 않고 도자기와 함께 살아온 그가 이 동네 이장이다. 억지로 떠맡았고 이젠 할 사람이 없어서 장기집권 중이다. 윗동네 아랫동네 갈등 조정하는 일이 도자기 만드는 것보다도 어렵단다. 청년 시절부터 수많은 동생들을 건사했던 경험으로 모나지 않게 잘 꾸려가는 모양이다.

송 작가의 공방은 광주, 순천, 낙안, 광주를 돌아 능주에 정착했다. 예술적으로나 상업적으로나 한곳에 터를 잡아도 될 무렵 그는 새로운 작업 공간을 찾아 떠났다. 편한 자리에 눌러앉기보다 도전을 택했다. 내면의 감정을 조금 더 진취적이고 창의적으로 구현할 때 자부심을 느끼는 그다. 어떤 일이든 기본에 충실해야 오래 버틸 수 있다고 그는 믿고 있다. 아무리 술을 많이 마신 날도 새벽이면 어김없이 작업장 구석에 놓인 작은 물레 앞에 앉는 이유다.

송 작가의 고향은 고흥이다. 33년간 교장으로 재직한 아버지는 고흥의 명산 ‘팔영(八影)’에서 한자만 바꿔 아들의 이름을 ‘팔영(八英)’이라 지었다. 아버지는 당시 풍금의 귀재로 불렸으며 여러 학교의 교가를 작곡했다고 한다. 아버지의 음악적 재능이 아들에겐 그림으로 이어졌는데, 정작 아들은 미술대학을 중퇴하고 도자기를 배웠다. 1976년 가을의 일이었다. 도예는 대학 때 딱 한 과목 배운 게 전부였지만, 그게 송 작가에겐 일생을 짊어진 예술적 결단이었다.

송 작가의 작품 세계는 전통적인 도예와 구별된다. 흔히 현대자기로 분류되는 도자기 조각의 영역이다. 그가 연습생으로 여러 공방을 떠돌던 시절, 일본 사쓰마 도기의 14대 심수관이 찾아와 그의 작업을 유심히 살펴보고 의미심장한 말을 남겼다. “뛰어난 그릇이다. 미적 감각이 돋보인다. 당신은 현대도예가 더 어울린다.” 돌이켜 보면 그 한마디가 송 작가의 향후 50년을 좌우했는지도 모른다.

송 작가의 작품은 비슷한 유형을 찾기 힘들 만큼 독특하다. 길을 걷다가 떠오른 착상, 낚시로 잡은 물고기, 들판을 오가는 동물의 형상을 마음에 담아두었다가 욕구가 치밀어오를 때 물레를 차기 시작한다. 순간의 느낌을 가장 명징하게 담아내는 송 작가의 작업 방식이다. 낙안의 전시장부터 능주의 작업장까지 그의 작품들이 일관성을 띠면서도 다른 표정으로 읽히는 까닭이다. 어쩌면 흙으로 매순간 진동하는 내면을 끊임없이 변주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최근 제 작품들이 하늘이나 허공을 바라보는 게 많아요. 사람도 그렇고 소도 그렇고. 세상 일이 자기 뜻대로 풀리지 않을 때가 많잖아요. 힘들었던 일을 생각하다 보면 그렇게 공중을 쳐다보는 작품이 나오는 것 같아요.”

5월 2일 보성군 문덕면 갤러리 re에서 송팔영 도예전 개막식이 열렸다. 햇수로 치면 12년 만의 개인전이다. 고희를 넘긴 노작가가 이젠 제 이름 걸고 작품을 보여줄 때가 되었다고 생각해서 마음먹고 만든 자리다. 송 작가와 반세기 가까이 예술적 동지로 살아온 쪽물 염색 장인 한광석 선생이 오랜 시간 부추겨서 성사된 특별전이기도 하다. 날이 갈수록 쪼그라드는 지역의 젊은 예술가들에게 뭔가 용기를 불어넣기 위해 두 사람이 의기투합한 회심의 무대였다. 한광석 선생의 표현을 빌리면 “50년 넘게 흙으로 처자식 먹여 살린 노하우에 관한 이야기”다.

주말 오후임에도 작은 전시관에 수십 명이 모였다. 송 작가는 “당장 대중들의 관심을 받지 못하더라도 꾸준히 작업에 몰두하면 어느 순간 ‘내 작품이 진실되었구나’ 하고 느끼는 순간이 반드시 온다. 그때까지 자기 색깔을 잃지 말고 작품 속에 간절함을 녹여야 한다. 팔리고 안 팔리는 건 다음 문제”라고 말했다. 송 작가의 말에 한 선생이 추임새를 넣었다. “평생 한 가지 일을 하는 것이 부끄럽지 않은 세상이 돌아오고 있습니다. 송팔영 작가가 그걸 보여주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5월 말까지 열리는 이번 전시의 제목은 ‘도대체 사람은 무슨 재미로 살까?’다. 도자기에 혼을 묻고 살아온 송 작가에게 부치는 한 선생의 우정 어린 헌사다. 특별전이 끝나면 6월 6일부터 송 작가가 고문으로 있는 남도공예협회 후배 작가들의 기획전, ‘놔둘 건 그냥 놔두고 살자!’가 이어진다. 남도의 궁촌에서 전통예술을 붙들고 씨름하는 후배들을 추켜세우는 외길 인생 선배들의 응원이자 두드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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