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들여진 꽃은 인간이 만든 미와 야만의 두 얼굴

@김용근 학림학당 학장 입력 2026.03.08. 14:54
■김용근의 잡학카페

겨울을 지나면 제일 먼저 수선화와 튤립의 꽃이 핀다. 튤립은 16세기 중반 인간의 욕망이 컸던 오스만 제국 이스탄불에서 단순한 꽃이 아니었다. 튤립은 권력과 부를 드러내는 욕망의 상징이었다. 중앙아시아에서 가져온 튤립은 더 희귀하고 더 화려한 품종을 원하는 욕망에 의해 재배와 개량이 이루어져 그 욕망을 채웠다. 인간에 의해 튤립 뿌리에 이물질을 넣거나 바이러스에 감염시키면, 스스로 약한 저항력을 극복하기 위해 꽃잎 색을 현란하게 만들어 인간에게 미의 욕망을 불러일으켜 보호를 받게 한다.

튤립이 네덜란드에 들어오면서 미를 넘어 경제적 욕망이 가득 찼다. 15세기 해상 무역으로 세계 최고의 경제 대국으로 부를 확장하던 네덜란드는 욕망을 대변하는 세계 최초의 주식거래소를 열었다. 부와 지위를 과시하는 튤립에 대한 실물과 그림의 소유가 유행하면서 튤립 주식이 상장되었다. 튤립 뿌리(구근)의 값도 치솟았다. 이런 열풍 속에서 아직 나오지도 않은 튤립 구근을 미리 지불하는, 최초의 주식 선물시장이 등장하였다. 튤립 구근 하나가 최고의 장인의 1년 연봉부터 집 한 채 값, 1만 5천 평의 땅과 맞먹었다. 그러나 인간이 튤립의 미에서 부로 향한 욕망은 결국 튤립 주가의 폭락으로 비극을 만들어 냈다. 튤립의 역사는 인간 욕망의 팽창과 그 그림자를 보여 주었다.

꽃은 인간의 가장 오래된 예술의 스승이자, 인간을 길들여 온 은밀한 전략가다. 우리는 꽃을 보며 아름다움을 말하지만, 꽃은 인간이라는 도구를 통해 자신의 아름다움으로 생존을 보존해 왔다. 그리고 인간의 욕망은 꽃을 자연에서 문화로 옮겼다. 꽃은 인간의 감정 세계를 섬세하게 조율하여 인간을 수단으로 도구화해 생존을 지속하였다. 원래 꽃의 색과 향은 수분을 도와줄 곤충과 새를 유혹해 집사로 끌어들이기 위한 전략이었다. 그런데 인간이라는 새로운 수단이 등장하면서 상황은 달라졌다. 인간은 아름답다고 판단한 꽃을 선택적으로 재배하고 번식시키는 집사 역할을 맡았다. 인간은 더 크고, 더 선명하고, 더 오래 피어 있는 개체가 살아남도록 돌보고 경작하였다.꽃은 자신의 집사인 인간의 욕망을 통과하며 형태를 바꾸었다. 그리고 인간은 그 변형된 아름다움을 다시 사랑하고 반복의 노동을 자처했다. 이런 서로의 선택은 서로를 빚어 내는 공진화의 동반자가 된 셈이다.

이 과정은 단지 생물학적 변화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꽃은 인간의 상징 체계 속에서도 진화했다. 사랑과 추모, 축하와 위로의 순간마다 꽃은 언어를 대신한다. 붉은 장미는 열정을, 흰 국화는 애도를, 벚꽃은 덧없음을 꽃말로 상징한다. 우리는 꽃에 의미를 부여하고, 그 의미를 통해 감정을 조직한다. 그래서 꽃은 생물학적 기관인 동시에 문화적 기호가 되었다.

꽃을 바라본다는 것은 단순한 감상이 아니라 인간 내면의 욕망을 응시하는 일이다. 우리는 꽃의 색과 향기 속에서 아름다움을 발견한다. 그 아름다움은 실은 우리 안의 갈망이 투영된 유전자의 결과이다. 반면 꽃은 인간의 시선을 통해 의미를 얻고, 인간은 꽃을 통해 욕망의 형상을 확인한다. 이 상호 교환 속에서 아름다운 꽃은 더 널리 재배되어 생존하고, 인간을 더 섬세한 감수성으로 길러 왔다. 자연과 인간은 지배와 이용의 관계를 넘어 서로의 진화를 자극하는 공생자가 되었다.

권력과 부의 과시용으로 출발한 튤립처럼 많은 꽃들이 인간의 애완 노리개가 되었다. 인간의 미적 기준에 맞지 않는 꽃은 멀어지고 사라진다. 인간의 미적 기준을 통과한 품종만이 선택되고 점점 더 인간의 취향에 의존하며 생존한다. 인간의 아름다움이 선택의 기준이 되는 순간, 자연의 유전자 다양성은 줄어들고 단순화된다. 우리는 꽃을 사랑한다고 말하면서도 그 사랑이 꽃의 야생성을 지워 버린다.

인간에 의해 상대적으로 아름답지 않다고 여겨지는 많은 야생의 꽃은 잡초가 아니라 같은 자연의 동반자다. 그러나 상업적 꽃의 경작지를 넓히기 위해 인간은 야생 잡초를 약으로 없애는 야만의 행동을 한다. 봄날 꽃구경과 화병 속 가득한 꽃에는 인간의 욕망과, 인간이라는 도구가 없으면 생존하지 못하게 되는 꽃의 그림자가 숨어있다. 그래서 길들여진 꽃들은 인간이 빚은 미의 문명과 야생을 거세하는 야만의 두 얼굴을 우리에게 웃어 보인다. 또한 꽃과 더불어 스스로 길들린 인간도 마찬가지다.

김용근 학림학당 학장, 창의융합공간 SUM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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