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칼럼] 거짓말하는 피노키오, 사라진 코의 비극

@김용근 학림학당 학장 입력 2025.11.16. 13:44
■김용근의 잡학카페

사실에 대한 진실의 공방은 올해 내내 이어지고 있다. 특히 여러 국정농단에 관련된 조사와 수사는 수많은 거짓과 가짜의 거짓을 사실로 밝혀내는 일이다. 왜 인간은 이처럼 사실과 관계없이, 잃는 것보다 얻는 것이 많은 쪽으로 거짓 진술을 할까? 거짓말을 하면 커지는 피노키오의 코가 사라진 비극적 사회가 되었기 때문이다.

거짓말은 순간의 위기를 모면하거나 타인을 속여 이익을 얻는 수단이 된다. 때때로 위기를 넘기고 단기적인 이익을 가져다주지만, 이는 신뢰를 담보로 한 위험한 거래이다. 정직은 때로 불리해 보이지만, 결국 더 깊은 신뢰와 지속적인 성공을 이끌고 시간이 지나 빛을 발한다. 그래서 숙련된 속임의 거짓말은 짧은 이익을 주지만, 깊은 손해를 남긴다.

거짓은 긴 진화적 기만의 행동 양식이다. 인류 이전부터 동물은 포식자를 속이거나 짝짓기에서 생존과 번식을 위해 위장하는 행동을 해왔다. 인간은 언어를 획득하면서 의도적 속임수가 가능해졌고, 이는 뇌의 전전두엽 발달과 관련이 있다. 이로 인해 우리는 상대방의 마음 상태를 추론하는 능력을 갖게 되었다. 속임수의 거짓이 진화를 거듭하면서, 오늘날 스마트폰 속 클릭베이트와 알고리즘 조작은 이 오래된 속임수의 신호 게임을 디지털로 가속화한 최신 버전일 뿐이다.

신화는 문화적 차원에서 최초의 거짓 속임수이다. 신화는 거짓이라기보다 검증 불가능한 의미의 서사에 가깝지만, 그 기능은 유사하다. 복잡한 세계를 단순한 이야기로 묶어 예측 가능성과 소속감을 제공한다. 또한, 상징과 의례의 문화는 불안과 불확실성의 틈새에 거짓이 스며들 수 있게 만든다. 단순하고 감동적인 속임의 이야기는 복잡하고 차가운 사실의 실화보다 늘 더 빨리 확산되며 감동을 준다.

오랜 역사 동안 왕권, 종교, 전쟁의 명분에서 '신성'이란 이름으로 권력은 보호를 받아 왔다. 특히 전쟁은 선택적 기억으로 역사를 편집하며, '정의의 전쟁'이라는 프레임으로 살상을 도덕화로 위장했다. 이렇게 진화한 거짓은 개인의 양심을 넘어 '정의의 명령'으로 대체되어 책임을 멀리 분산시켰다.

역사는 거짓의 실험실이다. 한국사의 거짓말은 늘 권력의 그림자였다. 조선의 사화는 '역모'의 프레임으로 학문을 죄로 만들었고, 일제는 '근대화'라는 허구로 수탈을 미화했다. 해방 이후엔 '안보'가 반대자의 입과 귀를 막았다. 오늘날 법과 제도의 틈을 파고드는 속임의 거짓은 더욱 교묘하다. 공동체의 가치를 담은 규범의 정신은 법적 문자로 축소되어 '합법이니 정당하다'고 주장된다. 그러나 기록과 증언은 매번 그 껍질을 벗겨 왔다. 거짓은 공익을 말하지만, 실상은 이익을 좇는다. 거짓은 권력, 권위, 편견과 결탁할 때 가장 치명적이다. 검증과 투명성만이 그 사슬을 끊을 수 있다.

현대 사회에서 거짓말의 언어적 진화가 가장 치열하게 벌어지는 곳은 정치, 선전, 광고 등이다. 정치 언어는 모호한 말과 수동태의 문장 뒤에 책임의 주어를 숨긴다. 선전은 감정과 집단의 정체성을 건드려 사실의 본질보다 이야기의 리듬을 앞세운다. 그리고 광고는 개인의 결핍을 상상의 효용으로 채운다. 이곳에서의 거짓은 노골적 허위보다는 맥락을 절단한 통계, 비교 대상을 교묘히 바꾸는 프레이밍, 가능성을 확실성처럼 포장하는 방식으로 나타난다. 이러한 과잉추정의 모든 거짓은 사실의 가면을 쓴 해석으로 진화한 것이다.

이처럼 인류의 거짓말은 단순히 개인이 순간적으로 하는 속임수가 아니라, 사회와 문화, 인지 발달과 맞물려 인간이 집단을 이루며 살아온 역사 속에서 점차 복잡하고 정교하게 진화했다. 속임의 거짓은 진화적 맥락을 통해 사회적 기능을 수행하며 문명 속에 제도화되고 확장되고 있다. 그러나 공동체를 위협하는 속임수의 거짓은 역사적으로 시간이 걸릴지언정 늘 그 대가를 받아 왔다. 역사는 거짓에 대한 사실의 추구와 탐구로 수없이 반복되어 왔다.

거짓은 빠르고 달콤하지만 신뢰의 기둥을 좀먹는다. 거짓의 반복은 허위를 체제와 규정으로 만들고, 침묵은 거짓의 공모로 바뀐다. 사실인 진실의 방패는 간명하다. 사실인 진실 편에 서는 것은 문자의 주장보다 근거를, 한 구석의 확신보다 맥락을, 말보다 검증을 중시하는 일이다. 이런 방패는 공동체를 위한 최소한의 윤리이다.

김용근 학림학당 학장, 창의융합공간 SUM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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