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근의 잡학카페
최근 헌법재판소에서"계엄은 계몽이다", "나는 계엄에 계몽됐다"라는 말을 두고 말이 많다. 잘 알고 있다는'계몽'의 의미가 19C에 머물러 지체되어 있는지, 아니면, 시대의 흐름 속에서 올바르게 알고 있는지 사유하는 격을 가늠할 수 있다. 계몽(啓蒙)의 한자 뜻은"어리석음을 깨우쳐 열어 준다"라는 말로서, 지식과 문화라는 등불이 사람들의 길을 밝히고 새로움을 깨닫게 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고대 그리스어에서 '빛'을 뜻하는'phos(빛)'에서 온 'photismos(조명, 깨달음)'이라는 말이 후대에 신학적, 철학적 개념으로 계몽을 의미하게 되었다. 계몽은 우리에게 전통 유학의 뿌리를 내린 거대한 나무였고, 19세기 말 서구의 바람이 불어오면서 새로운 가지를 뻗어 더욱 무성해졌다.
계몽이란 봉건의 전통적 권위, 비합리적 믿음에서 벗어나 이성과 합리적 사고를 통해 신이 아닌 인간이 스스로 자유와 진보를 추구하는 과정을 의미한다. 그래서 신을 대신하여 '인간에게 주어진 이성'이라는 새로운 빛이 곧 계몽이다. 이는 신의 섭리에 의존에서 벗어나 인간 스스로 합리적 이성으로 근대 민주주의, 과학적 사고, 인권 사상의 기초를 마련한 중요한 지적 운동이었다. 그래서 계몽주의는 인간 이성이 역사의 발전을 이끄는 핵심 요소라고 보았다. 역사의 흐름은 거대한 강물처럼 합리적 이성과 절대정신이 이끄는 방향으로 흘렀고, 결코 뒤로 돌아가지 않는 진보의 길을 걸었다. 사람들은 신과 전통적 권위의 굴레를 벗고, 이성이라는 나침반을 따라 더 나은 사회로 나아갈 수 있다고 믿었다.
칸트는 계몽을 '인간이 스스로 미성숙에서 벗어나는 과정'으로 정의했지만, 이는 오히려 이성의 기준에 따르지 않는 문명과 사람을 미성숙한 존재로 간주하는 다양성을 무시하는 배타성을 내포하고 있다. 또한, 계몽주의가 강조한 과학적 합리성과 진보의 논리는 산업혁명 이후 자본주의 체제와 결합하며, 인간에 의한 인간소외, 환경파괴, 핵무기 같은 부작용을 낳았다. 그리고 절대적 계몽은 수많은 전쟁과 파시즘의 전체주의를 만들었다. 이는 인간 중심의 자유로운 삶이 꽃피우지 못하고, 역사의 시계바늘이 역행하며 새로운 굴레와 감시의 그물망이 사회를 뒤덮었다. 따라서 인간을 해방시키는 인지적, 표현적, 규범적, 윤리적 이성은 '자기보존'만을 위한 '도구적 이성'에 의해 스스로 마비당했다.
이에 대해 니체는 '이성적 사고는 결국 새로운 도덕적 권위를 만들 뿐이며, 인간의 본능과 창조성을 억압한다'고 말하며 탈 이성 중심주의를 외쳤다. 계몽주의는 인간을 자유롭게 하기보다는, 도덕적 노예로 만드는 또 다른 시스템이 된다는 계몽의 비극을 경고하였다. 이런 맥락에서 푸코는 계몽의 이성이 권력 구조를 정당화하는 규율 수단으로 사용됨을 지적한다. 데리다 역시, 계몽에 의해 만들어진 보편적 이성중심주의를 해체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계몽주의는 서구 중심적 기준에 의해 만들어진 사상으로, 문명이란 깃발 아래, 문명과 야만이라는 경계를 그어 갈라치기하고, 다양한 문화와 가치의 꽃들이 활짝 피지 못하도록 서구적 이분법으로 가로막았다.
20세기 이후, 계몽의 이성이 파시즘, 전체주의, 자본주의적 억압, 환경파괴를 낳을 수도 있다는 비판적 성찰이 필요하게 되었다. 그래서 오늘날 우리는 비극적 계몽의 어두운 그늘을 걷어내기 위해 비판의 불빛을 밝히고, 맹목적 권위와 체제의 벽에 맞서야 한다. 따라서 계몽은 단순히 과거의 사건이 아니라 계몽을 계몽해야 할 불씨이다.
'도구적 이성'의 계몽은 지금도 은폐되고 어두운 곳에서, 인간을 억압하는 칼이 되었다. 그래서 비극적 계몽에 저항하는 것은 인간이 끊임없이 스스로'계몽을 계몽' 하는 것이며, 어둠 속에서 계몽의 불꽃을 다시 밝혀가는 과정이다.
'나는 계엄에 계몽됐다'에서 계몽은 '당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빛을 밝혀 어둠을 걷어내고, 비극적 계몽의 굴레를 끊어내기 위해 계몽을 계몽하는 것이다.
김용근 학림학당 학장, 창의융합공간 SUM 대표
독자 여러분의 제보를 기다립니다.
광주・전남지역에서 일어나는 사건사고, 교통정보, 미담 등 소소한 이야기들까지 다양한 사연과 영상·사진 등을 제보받습니다.
메일 mdilbo@mdilbo.com전화 062-606-7700카카오톡 플러스친구 ''무등일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