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인종차별의 덕을 본 경험

@신경구 광주국제교류센터 소장 입력 2024.01.14. 14:31


■신경구의 포용도시

1994년 내가 전남대학의 어학연구소(현재의 언어교육원) 일을 맡고 있을 때였다. 모든 외국인 강사가 백인이었기 때문에 흑인 강사를 채용하고 싶었다.

학생들의 시각과 청각을 다양하게 해서 문화 감수성의 폭을 넓혀야 제대로 영어를 배울 수 있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마침 펜실베이니아 대학원에서 영어교육을 전공한 흑인 여성이 지원자가 있었고, 강사 채용 책임자는 이 지원자가 서류 심사와 면접에서 매우 좋은 결과를 받았다고 평가했다. 채용하자고 했더니, 이 지원자가 소장과 직접 인터뷰를 원한다고 했다.

국제전화로 그녀에게, "왜 직접 나와 인터뷰 하기를 원하는가"라고 물어 보니, 그 대답이 놀라웠다. "서울과 대구에 있는 대학에서, 나를 초청하기로 했었다. 그러나 비자 절차를 밟고 있는 동안에 채용 취소 통보를 받았다. 이런 경험을 두 번 당했기 때문에 전남대에서도 내가 흑인이라는 사실을 나중에 알고 초청이 취소될 것이 걱정되었다. 그래서 책임자의 다짐을 받기를 원했다."

이 흑인 강사가 부임하고 나서 첫 학기 수강 신청을 받는데, 이 강사의 강의를 신청한 학생이 거의 없었다.

어떻게 알았는지, 담당 강사가 흑인이라는 사실을 알고, 학생들이 수강을 기피했기 때문이었다.

둘째 날 다른 반이 모두 차고 나서야 이 강사의 반도 가까스로 수강생을 채울 수 있었다.

그러나 억지로 강의를 수강한 학생들의 강의 만족도가 매우 높아서, 다음 학기부터는 이 흑인 강사의 반은 빠르게 수강 신청 마감이 되었다.

이 강사는 강의만 잘하는 것이 아니라, 재치가 넘쳐서 많은 사람들을 즐겁게 해 줬다.

하루는 내가 동료 교수와 함께 지나가다가 이 강사를 만나서 먼저 인사를 건넸다. 그리고는 곧, "내가 신사이기 때문에 내 동료보다 먼저 당신에게 인사를 했다"고 하니, 이 강사의 짧은 대답이 재미있어서 지금도 잊지 않고 있다. "당신의 말이 그리 신사답게 들리지 않는다."

2008년 9월부터 2012년 말까지 전남대학의 국제협력 일을 맡고 있을 때의 경험이다.

해마다 5월 말에는 미국에서 고등교육 박람회(NAFSA)가 열린다. 이 박람회는 전 세계에서 참가자가 1만명 가까이 모이는 대규모 행사이다.

2012년 휴스턴에서 열린 행사에서는 한국의 대학들이 회의실을 빌려서 한국 교류 행사를 진행했다.

행사장에 들어가 보니 이미 많은 한국 대학 참가자들이 외국인 참가자들과 함께 둘러 앉아서 대화를 하고 있었다.

하지만, 양복에 넥타이까지 말쑥하게 차려입은 흑인 참가자는 아무 말 상대가 없이 혼자 앉아 있었다.

평소에 흑인이 많은 대학과의 교류에 관심이 많았기 때문에, 일부러 내가 먼저 인사를 하면서, 대화를 시작했다.

아무도 끼어드는 한국인 참가자가 없었던 덕분에 우리 둘은 방해 없이 편하게 서로를 소개하고 연락처를 주고받았다.

귀국한 지 일주일도 지나지 않아서 아팔라치안주립대학(ASU) 제시 루터빙와(Jesse Lutabingwa) 교수에게서 메일이 와 있었다. 자기 대학을 자세히 소개하면서, 전남대와 학생 및 연구 교류를 추진하고 싶다는 의사를 표시한 메일이었다.

대학 웹사이트를 검색해서 살펴보니 대학의 평가는 전남대학교와 비슷했고, 국제교류책임자는 흑인이었지만, 학생과 교수가 90% 이상인 백인 대학이었다.

흑인 대학과의 교류를 원했던 내 기대에는 어긋났지만, 대학의 소재지가 2만명 정도의 매우 안전한 대학도시로 학생들을 파견하기에는 매우 적합한 대학이었다.

몇 차례 더 메일 교환이 있었고, 협정문 조율이 끝나고, 반년이 지난 뒤에 루터빙와 교수가 오로지 전남대과의 교류협정을 맺기 위해 한국을 방문했다.

그 뒤로 두 대학은 교환학생을 주고받기 시작했고, ASU 교수와 학생들이 전남대의 국제여름학교에 강사로 또 학생으로 참여하는 등 활발한 교류가 이뤄지고 있다.

몇 년 전에는 ASU에 교환학생으로 간 전남대 학생과 프랑스 대학에서 온 교환학생이 가까운 친구가 되었고, 그 여학생이 자기 남자 친구를 만나러 광주에 와서 광주국제교류센터의 인턴으로 일 년 동안 근무한 일도 있었다.

루터빙와 교수는 내가 2013년에 퇴직한다는 사실을 알고, "ASU에 와서 강의해 줄 것"을 요청했지만, 광주국제교류센터의 일에 묶여서 그 요청을 들어주지 못한 것을 지금도 아쉽게 생각하고 있다. 신경구 광주국제교류센터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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