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단칼럼] 서·논술형 평가, 신뢰받는 정책이 되려면

@김은지 광주고등학교 교사 입력 2026.08.31. 21:28
김은지 광주고등학교 교사

최근 서·논술형 평가를 둘러싼 교육계의 논의가 뜨겁다. 전남광주통합특별시교육청은 내년부터 초·중학교 일부 학년을 시작으로 서·논술형 평가를 단계적으로 도입해 2032년까지 초·중·고 전반으로 확대하고, 인공지능(AI)을 활용해 출제와 채점을 지원하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국가교육위원회에서도 현장 토론회 등을 통해 미래 사회를 대비하는 학생 평가와 대입 제도의 방향에 대해 국민 의견을 수렴하고 있다.

평가를 바꿔야 한다는 문제의식에는 동의한다. AI의 발달은 우리가 정보를 얻고 활용하는 방식 자체를 바꾸고 있다. 필요한 정보를 찾는 일은 쉬워졌지만, 무엇을 믿고 어떻게 판단할지는 더 어려워졌다. 그럼에도 우리 교육은 여전히 하나의 정답을 얼마나 정확하게 찾아내는가에 평가의 상당 부분을 의존하고 있다. 학교는 학생이 ‘무엇을 알고 있는가’를 넘어, 주어진 정보를 어떻게 해석하고 자신의 생각으로 발전시켜 가는지를 평가해야 한다.

지난해 광주광역시교육청이 주관한 AI미래교육박람회에서 학생들과 ‘논증하는 글쓰기’ 수업을 실연하며 평가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됐다. 교사가 예시로 제시한 논증 구조를 학생들은 각자의 논리에 따라 자유롭게 변형했고, 같은 뉴스 기사도 자신의 입장에 따라 다르게 해석해 근거로 활용했다. 교사가 무엇을 묻고 어떤 수업과 평가를 설계하느냐에 따라 학생의 사고가 얼마나 확장될 수 있는지를 확인한 순간이었다. 이러한 경험은 서·논술형 평가가 왜 필요한지를 보여 주었다. 학생에게 ‘정답이 무엇인가’가 아닌 ‘왜 그렇게 생각하는가’, ‘무엇을 근거로 판단했는가’를 묻는 평가는 정답만을 확인하는 데서 벗어나, 학생의 사고 과정을 더 깊이 들여다볼 수 있다.

그러나 좋은 방향이 반드시 좋은 정책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학생과 학부모는 이미 여러 교육 제도의 변화를 마주하고 있다. 고교학점제가 시행되고 내신은 5등급 체제로 바뀌었으며, 2028학년도 대입제도 개편에도 적응해야 한다. 여기에 서·논술형 평가 확대와 향후 수능의 변화 가능성까지 더해지고 있다. 학생과 학부모, 학교 현장에는 잇따른 변화 자체가 혼란과 부담으로 다가올 수 있다.

평가는 학생의 사고와 성장을 이끄는 교육의 과정이지만, 학생과 학부모에게는 성적과 대입에 직결되는 현실이기도 하다. 새로운 평가가 대입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무엇을 어떻게 준비해야 할지, 또 다른 사교육 부담으로 이어지지는 않을지 걱정하는 것은 당연하다. 학교 현장 역시 새로운 평가를 설계하고 공정하게 채점할 준비가 되어 있는지 묻고 있다.

이러한 우려에 대한 대안으로 AI 채점이 제시되고 있다. AI가 답안을 분석해 채점을 지원하고 교사가 이를 검토해 최종 판단한다는 구상이다. 제대로 작동한다면 교사의 채점 부담을 줄이고 평가의 정확성과 효율성을 높이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

AI 채점 기술의 가능성은 이미 상당 부분 확인되고 있다. 서울특별시교육청이 지난해 개발한 AI 서·논술형 평가지원시스템(채움AI)은 실제 학생 답안 채점에서 인간 채점자와 높은 수준의 일치도를 보였고, 현재 다른 시·도교육청과 공동 운영하며 시스템을 더욱 정교화하고 있다.

하지만 평가는 결국 신뢰의 문제다. 학생이 자신의 점수에 의문을 제기했을 때 “AI가 그렇게 평가했다”고 답할 수는 없다. 어떤 기준으로 답안을 평가했는지 설명할 수 있어야 하며, 같은 수준의 답안에는 일관된 평가가 이루어져야 한다. AI와 교사의 판단이 다르거나 이의가 제기됐을 때 이를 재검토할 수 있는 체계도 실제 현장에서 제대로 작동해야 한다.

따라서 기술의 발전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서·논술형 평가는 다양한 사고 과정을 평가하는 만큼 좋은 문항과 명확한 채점 기준이 중요하다. 교육청 차원에서는 교과별 문항과 채점 기준 등 평가 기반을 갖추는 한편, 교사가 이를 일관되게 적용하고 평가 결과를 근거 있게 설명할 수 있도록 충분한 지원이 필요하다. 기술의 발전과 함께 평가의 전문성과 책임성을 높이는 준비도 이루어져야 하는 것이다.

신뢰받는 평가 제도를 만들기 위해서는 정책을 만들어 가는 과정도 중요하다. 의견수렴이 이미 제시된 정책을 설명하고 이해를 구하는 데 그쳐서는 안 된다. 교사와 학생, 학부모가 실제로 무엇을 우려하고 필요로 하는지 충분히 듣고, 그 목소리가 정책에 반영되어야 한다. 현장에서 제기된 문제는 시범 운영을 통해 검증하고, 그 결과에 따라 적용 범위와 속도를 조정할 수 있어야 한다. 현장 수용성을 살피는 것은 변화에 제동을 거는 일이 아니라, 서·논술형 평가의 취지를 교실에 제대로 뿌리내리게 하는 과정이다.

학생들에게 충분히 생각하고 근거를 살핀 뒤 판단하라고 가르치려 한다면, 그 교육을 만드는 정책의 과정도 그래야 하지 않을까. AI가 채점 부담을 덜어 줄 수는 있어도 신뢰까지 대신 만들어 줄 수는 없다. 교육적으로 의미 있는 변화가 신뢰받는 정책으로 자리 잡으려면 충분한 검증과 소통, 설득의 시간이 필요하다. 무엇보다 평가를 바꾸는 이유는 학생에게 더 많은 가능성을 열어 주기 위해서다. 학생은 성장할 기회가 주어질수록 우리가 미처 발견하지 못했던 역량을 드러낸다. 그 역량을 충분히 발휘할 수 있도록 하는 것, 그것이 평가 변화의 출발점이자 목적이어야 한다.

슬퍼요
0
후속기사 원해요
0

독자 여러분의 제보를 기다립니다. 전남광주지역에서 일어나는 사건사고, 교통정보, 미담 등 소소한 이야기들까지 다양한 사연과 영상·사진 등을 제보받습니다.
메일 mdilbo@mdilbo.com전화 062-606-7700카카오톡 플러스친구 ''무등일보' '

댓글0
0/3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