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린아이들은 끊임없이 묻는다. “왜 하늘은 파래요?”, “왜 비가 와요?” 부모가 답을 해주면 또다시 “왜요?”가 꼬리를 문다. 세상 모든 것이 신기하고 궁금한 그 눈빛이 참으로 사랑스럽다. 그런데 그 아이가 학교에 들어가고 나면, 어느 순간 질문이 사라진다.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를 거치면서 아이들의 입은 점점 굳게 닫힌다. 대체 교실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걸까. AI가 거의 모든 답을 대신 내놓는 시대에 정작 질문조차 잃어버린 아이들이 더욱 걱정된다.
작년에 한국계 독일 학생 한 명이 필자가 근무하는 고등학교를 교류차 방문했다. 고국의 교육을 직접 경험해보고, 한국 학생들과 생각을 나눠 보고 싶다는 기대를 안고 온 학생이었다. 하지만 당초 계획했던 일정의 반도 채우지 못했다. 독일의 토론식 교육에 익숙한 그 아이는 질문과 대화가 오가는 수업을 기대했지만, 하루 종일 딱딱한 의자에 앉아 교사의 강의를 받아 적는 일이 반복되었다. 그 학생은 교실과 수업에 학생은 없고 교사만 있는 것 같다고 했다.
그 학생의 충격 어린 시선은, 우리가 너무 익숙해져 버려 더 이상 문제로 느끼지 못한 교실의 모습을 낯선 각도에서 보여주었다. 이 경험이 지금 이 글을 쓰게 만든 출발점이기도 하다.
수업 중 학생들에게 “왜 이런 이론이 정립되었을까?”라고 물은 적이 있다. 기대했던 것은 자유로운 생각의 교환이었다. 그러나 돌아온 답은 단호했다. “선생님, 그냥 답을 가르쳐 주세요.” 학생들은 “왜 갑자기 그런 걸 물어보세요?”라는 듯 웃으며 답했지만, 그 웃음 뒤에는 질문을 낯설어하는 교실의 분위기가 묻어 있었다. 고교-대학 연계 수업에서 한 교수님이 학생들에게 “왜?”라고 물었을 때 당황해하는 눈빛을 보며 이렇게 말씀하셨다. “대학은 왜라는 질문에 대한 답을 찾아가는 여정입니다.“ 그 말이 오히려 우리 교육 현실의 민낯을 고스란히 드러냈다.
문제의 원인은 복합적이지만, 그중에서도 평가 구조는 교실 문화를 결정짓는 핵심 요인이다. 우리 교육은 오랫동안 5지선다형 시험에 길들여져 있다. 많은 교사들이 서논술형 평가의 필요성을 공감하면서도, 채점의 주관성 논란과 민원을 우려해 여전히 선택형 평가를 택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다섯 개 보기 중 하나를 고르는 능력만으로는 아이의 사유 과정과 깊이를 온전히 포착하기 어렵다. 지식을 이해하고, 과정을 익히고, 가치를 내면화하는 일이 연결되어야 비로소 진짜 학습이 이루어진다. 고기를 잡아주는 교육에서 벗어나, 고기 잡는법을 스스로 터득하게 하려면 평가 방식부터 달라져야 한다. 학생들이 배운 내용을 자신만의 언어로 설명하고, 타당한 근거를 들어 주장할 수 있는 역량, 그것을 길러 주는 서논술형 평가로의 전환이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과제다.
무엇보다 질문은 혼자만의 사고에 머물지 않는다. 하나의 질문을 두고 친구들과 생각을 나누고, 서로 다른 관점을 듣고, 더 나은 답을 함께 찾아가는 과정에서 학생들은 자연스럽게 공동체성을 배운다. 질문하는 교실은 경쟁만 하는 교실이 아니라 함께 배우고 성장하는 교실이다. 우리 어른들은 알고 있다. 인생은 혼자 푸는 시험지도 아니고, 정답 하나만 고르는 5지선다형 문제도 아니라는 사실을. 그런데도 우리는 아이들에게 여전히 ‘정답 고르기’에 익숙해지라고 가르치고 있지는 않은지 되물어야 한다.
이미 변화는 시작되고 있다. 수년 전 방문한 대구의 IB(국제바칼로레아) 교육현장이 떠오른다. 질문, 토론, 발표, 서논술형 평가가 연결될 때 학생들은 배운 내용을 자기 언어로 표현하기 시작했다. 교사는 전문 연수를 통해 평가 역량을 키우고, 학교는 체계적인 기준과 절차 속에서 수업과 평가를 설계한다. 평가의신뢰성과 교사의 전문성은 함께 성장할 수 있음을 보여 주는 사례다. 광주교대부설초 역시 IB 월드스쿨로서 ‘10년 후 질문 잘하는 사람, 평가 잘하는 사람으로의 성장’을 목표로 학생 주도형 탐구 수업을 실천하고 있다. 먼 나라 이야기가 아니라, 이미 우리 곁에서 시작된 변화다.
에듀테크도 힘을 보태고 있다. 최근 한 다큐멘터리에서 AI 기반 채점 시스템으로 학생들에게 실시간 피드백을 제공하는 교사의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교사가 채점에 쏟던 시간을 줄이고, 학생 개별 맞춤 지도에 더 집중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국내 시도교육청들도 AI 기반 서논술형 평가 시스템 도입을 준비하고 있다. 루브릭 개발과 AI 기술이 결합된다면, 서논술형 평가가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우려는 점차 해소될 수 있을 것이다. 다만, AI는 교사의 평가를 대체하기보다 피드백과 평가 업무를 지원하는 보조적 역할로 활용되어야 한다.
철학자 한나 아렌트는 사유하지 않는 인간의 위험성을 경고했다. 지식이 없는 것보다 더 위험한 것은 스스로 생각하기를 멈추는 일이다. AI가 지식을 대신 검색하고 요약해주는 시대일수록, 스스로 질문하고 깊이 사유하는 힘이 아이들의 진짜 경쟁력이 된다. 책을 읽고 생각을 키우는 독서 교육, 그리고 그 생각을 글로 표현하게 하는 서논술형 평가. 이 두 가지가 맞닿는 교실에서 오래전 사라졌던 아이들의 “왜요?”가 다시 살아날 수 있다. 질문하는 아이가 생각하는 어른으로 자란다. 그 당연한 사실을 교실에서 되살리는 것, 그것이 교육의 대전환기와 통합을 앞둔 전남광주교육이 함께 감당해야 할 가장 시급한 과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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