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느 시인이 말했다. "한 송이 수선화를 피우기 위해 온 우주가 협력했으니 지구는 수선화 화분이다." 오래전 공지영의 산문집에서 만난 문장이다. 지구를 '화분'이라 부르다니. 길가에 핀 꽃 한 송이를 바라보며 저런 비유를 떠올릴 수 있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사소한 문장으로 치부할 수도 있겠지만, 이과적 사고에 익숙했던 필자에게는 신선함을 넘어 발상의 전환이었다.
비슷한 경험이 방송에서 한 번 더 있었다. "소복소복 내리는 눈, 그 눈이 녹으면 어떻게 될까요?"라는 질문에 나는 망설임 없이 답했다. "액체인 물이 됩니다." 사실에 충실한, 이과다운 대답이었다. 그런데 문과 학생은 달랐다. "봄이 와요." 그 한 문장을 듣는 순간, 낮은 탄성이 절로 나왔다.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이 이렇게 다를 수 있구나.' 우리는 때때로 정답을 말하면서도, 의미를 놓치고 살아간다.
2026년 새해, 다채로운 학생들을 가르치고 길러야 하는 광주 교육계에 필요한 자세는 무엇일까. 광주교육의 슬로건은 '단 한 명의 아이도 포기하지 않는 광주교육'이다. 학생의 역량과 진로, 학업 여건이 어떠하든 꿈을 지지하는 사다리이자 키다리 아저씨가 되겠다는 다짐이다. 이 문구를 보자마자 떠오르는 아프리카 속담이 있다. "한 명의 아이를 키우려면 온 마을이 필요하다." 우리에게 '온 마을'은 교육청만도, 학교만도, 가정만도 아니다. 교육청·교사·학부모가 각자의 자리에서 역할을 다할 때 비로소 온전한 울타리가 된다.
교육청은 학생·학부모·교사에게 필요한 정책과 지원을 적시적소에 제공해야 한다. 교사는 수업의 주체로서 학생의 성장을 촉진하고, 학생은 학습자 행위주체성을 바탕으로 자신의 학습을 설계해야 한다. 학부모는 자녀 교육의 첫 번째 교사로서 조력자이자 지지자가 되어야 한다. 결국 교육청·교사·학부모가 협력자로 손을 잡고, 아이가 흔들릴 때 붙잡아 주는 '온 마을'이 될 때, 학생은 배움의 즐거움을 경험하며 자기 삶을 개척하는 자기주도적 학습자로 성장할 수 있다.
고교학점제가 전면 적용되고 2022 개정 교육과정이 도입되었던 2025년을 전후로 고등학교 현장의 변화는 무척 빨랐다. AI로 대변되는 시대 변화만큼 교육 정책과 운영 방식도 시시때때로 바뀌었고, 학교는 따라가기에 바빴다. 고입과 대입을 준비하는 학생과 학부모의 걱정이 커진 것도 자연스러운 일이다. 4세·7세 고시, 초등 의대반이라는 말이 회자될 정도로 경쟁교육이 과열된 현실에서, 불안은 '개인의 예민함'이 아니라 '사회적 결과'에 가깝다.
그렇다면 이러한 시기에 '온 마을'은 어떻게 작동해 왔을까. 광주는 2018년부터 고교학점제 연구·선도학교를 적극 지정해 학생 맞춤형 선택 교육과정을 준비해 왔다. 교사들은 고교학점제 연구회와 현장지원단을 꾸려 중학교로 찾아가는 설명회, 공동교육과정, 학교 밖 교육을 제공하며 변화의 충격을 완화해 왔다. 현장에서 마주한 교사와 학부모, 학생들의 눈빛—궁금증과 불안이 교차하던 그 표정을 나는 잊지 못한다. 2025년에도 광주광역시교육청교육연수원 대강당이 가득 찰 정도로 많은 학부모가 설명회에 참여했고, 교육청과 교사들은 지속적으로 정보를 제공하며 궁금증을 해소하기 위해 애써 왔다. 불안을 줄이는 힘은 '설명'과 '신뢰'에서 시작된다는 사실을 현장은 확인하고 있다.
코로나 시기 원격수업을 겪으며 절감했지만, 2022 개정 교육과정에 따른 변화 속에서도 '교사 집단지성'은 여전히 작동한다. 교사들이 자율적으로 소통하며 공공의 문제를 해결하고 더 나은 교육 환경을 만들기 위해 협력하는 방식 그 자체가 교사들 사이의 '온 마을'이다. 교육과정 연구회는 현장에 필요한 주제를 선정해 공개 연수를 열고, 질의응답을 통해 함께 고민하며 해법을 찾아간다. 학교는 정책 방향과 특색에 맞춰 교육과정을 편성하고, 학생들이 진로와 적성에 따라 과목을 선택하는 학생 선택형 교육과정을 운영한다. 이 과정이 복잡할수록 '진로·학업 설계 지도'는 더 중요해진다. 무엇보다 과목 선택은 학생과 학부모의 불안을 직접 건드리는 지점이기 때문이다.
다행히 이미 학교는 2015 개정 교육과정을 거치며 진로·학업 설계 지도 역량을 축적해 왔다. 온라인 기반 상담도 활용할 수 있다. 광주광역시교육청이 운영하는 24시간 온라인 진로·진학 상담 플랫폼인 '빛고을 꿈트리', 교육부 함께학교의 '진로·학업 설계 컨설팅', 대교협 대입정보포털의 '온라인대입상담' 등이 대표적이다. 셋 모두 활동하는 필자로서, 학생과 학부모가 품은 간절함과 불안의 무게를 누구보다 가까이에서 체감한다.
교육의 본질을 '배움의 즐거움'이라 말한다. 그 즐거움을 가능하게 하는 시스템을 나는 '온 마을'로 표현하고 싶다. 그 마을에서 수많은 수선화가 피어나길 바란다. 날이 유난히 좋았던 어느 늦은 오후, 학교 계단에 앉아 있던 학생들이 내게 말을 걸었다. "선생님, 운동장에서 달 보셨어요? 달이 너무 예뻐요!" 계단에서는 건물에 가려 달이 보이지 않았지만, 동쪽 하늘의 늦은 오후였으니 아마도 둥글어 보이던 달이었으리라. 하루 종일 책에 파묻혀 버텨낸 학생들이 잠깐이라도 달빛을 보며 웃는 모습이 괜히 안쓰럽고 고마웠다.
문득 대학 시절, 밤늦게 윤동주 시비 옆 벤치에 누워 나뭇잎 사이로 하늘을 올려다보던 기억이 떠올랐다.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 새해의 교실은 늘 시작선에 서 있다. 다시 하늘을 바라보고, 바람을 견디고, 별을 찾아보고, 시처럼 의미를 묻는 일. 한 아이를 키우는 일은 한 사람의 일이 아니다. 교육청의 정책과 지원, 학교의 수업, 가정의 지지가 맞물릴 때 아이들은 "내 편이 있구나"를 배운다. 그 확신이 결국 배움의 용기가 된다.
오늘도 한 송이 수선화를 피우기 위해 마을 전체가 마음을 모아 따뜻한 '온(溫) 마을'이 되는 우리 광주교육이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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