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단칼럼] 말벌 시민으로 부터 우리가 배울점

@김지연 평동초등학교 교사 입력 2025.02.25. 18:17
김지연 평동초등학교 교사

지난 2월 15일, 극우 개신교 단체 세이브더코리아가 광주 금남로에서 탄핵 반대 집회를 열었다. 광주시민들의 거센 반대와 강기정 광주시장의 불허에도 불구하고 굳이 광주를 집회 장소로 택했다는 점에서, 한국 현대사에서 광주가 가진 상징성을 먹칠하고 모욕하겠다는 악의가 엿보이는 집회였다. 공기처럼 자연스러운 호남혐오와 5.18 왜곡에 슬프게도 어느 정도 익숙해진 광주시민들이지만, 금남로를 두 번 짓밟겠다는 계획마저 참아줄 수는 없었다. "시민 여러분, 도청으로 모여주십시오"라는 구호가 45년 만에 되풀이되었고, 그날 도청 앞에는 그 어느 때보다 많은 광주시민들이 모였다.

그런데 그날 금남로를 지키기 위해 모인 것은 광주시민들뿐이 아니었다. 전국 각지에서 대절버스를 타고 달려온 시민들이 있었다. 특정 단체 소속도 아니고, 광주에 연고가 있던 것도 아니다. 이들을 한데 모았던 깃발에는 다소 뜬금없는 이름이 적혀 있었다. "말벌 시민".

말벌 시민이라는 이름은 '말벌 아저씨'라는 인터넷 밈(meme, 인터넷을 통해 전파되는 문화요소)에서 유래했다. JTBC 프로그램 "나는 자연인이다" 57회에 출연한 허명구 씨가 인터뷰를 하다가 말벌을 보고 (자신이 키우는 꿀벌을 지키기 위해) 헐레벌떡 달려가는 모습이 인터넷을 타고 퍼져, 젊은 세대에서 '말벌 아저씨'라는 말이 고유명사처럼 자리잡은 것이다.

말벌 아저씨는 말벌이 있는 곳이라면 언제든지, 어디라도 단걸음에 달려간다. 그리고 말벌 시민은 연대가 필요한 곳에 달려간다. 학생들과의 소통 없이 공학 전환을 추진하는 학교에 맞서 싸우는 동덕여대, 하청노동자의 인권을 위해 싸우는 금속노조 거제통영고성 조선하청 지회, 장애인이동권을 위해 지하철역에서 투쟁하는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그리고 광주. 말벌 시민은 어디든지 간다.

말벌 시민은 언제, 어떻게 등장했는가? 탄핵 정국에 등장한 '응원봉 무리'를 보고 기존 정치세력은 마치 전에 없던 새로운 주체가 등장한 것처럼 호들갑을 떨었지만, 사실 응원봉 시민 또는 말벌 시민은 '전에는 정치에 아무런 관심도 없던 순진한 젊은이들'과는 거리가 멀다. 오히려, 이전부터 정치와 사회에 대한 관심과 투쟁의지를 갖추고 있었지만 시민사회에서 거의 주목받지 못하던 이들이 탄핵 정국을 계기로 구심점을 찾아 모인 것에 가깝다. 과연 이들은 전에 '시민의 얼굴'로 여겨지던 이미지와는 많은 점이 다르다. 이들의 대다수가 2030 여성이며, 많은 이들이 퀴어다. (이 둘 모두에 속하는 이들도 아주 많다.) 이들은 소속 단체 대신 자신의 성정체성을 소개하며 발언을 시작하고, 구호 대신 농담이 적힌 깃발을 들고 나오며, 선결제?푸드트럭 등 전에 본 적 없는 방법으로 연대를 표한다. 그러나 이들이 가장 특별한 점은 바로 이들이 "어디든지 간다"는 것이다.

이것이 어떻게 가능한가? 시간과 비용은 둘째치고 관심 또한 유한한 자원이다. 한 사람이 그 모든 의제에 전부 관심을 가질 수는 없다. 그것이 장애인 이동권 투쟁, 양곡법 투쟁 등 고유한 긴 역사와 맥락이 있어 따로 공부가 필요한 경우에는 더더욱 그렇다. 창체 시간에 민주시민교육을 해본 초등교사라면 모를 수가 없다. 가르칠 게 너무 많다. 장애인식교육(이 용어의 문제는 다음에 얘기하자) 2시간, 양성평등교육(이 용어도…) 2시간, 다문화교육(이 용어도…) 3시간, 노동인권교육 1시간, 생태교육은 10시간쯤. 성소수자 인권에 대한 교육은 아예 교육과정에 없다! 그런데 이렇게 열심히 가르쳐도 아이들이 민주시민이 되려면 아직 멀었다고 느껴진다. 그런데 말벌 시민들은 어디서 이렇게 폭넓은 교육을 받을 수 있었나?

대답은 간단하다. 그들은 일단 연대하러 찾아가고, 거기서 배운다. 남태령에서 전봉준농민회와 밤을 새우며 양곡법에 대해 배우고, 지하철역에서 경찰의 폭력 진압에 항의하며 장애인 이동권에 대해 배운다. 일단 광주에 찾아간 다음에 이들은 전일빌딩과 금남로 시계탑을 보고 '광주출정가'를 들었다. 이들은 말한다. "광장은 우리의 학교"라고.

그렇다면 이들이 잘 알지도 못하던 의제에 연대하러 나설 수 있던 원동력은 무엇이었을까. 전남대 김상봉 교수는 5.18 당시 광주 시민들이 압도적인 폭력 앞에 나설 수 있었던 힘은 '타인의 고통에 대한 응답'이었다고 말한다. 5.18의 시작은 전남대 학생들의 민주화운동이었지만, 대규모 투쟁을 이끌어낸 것은 전에는 민주주의가 뭔지도 잘 모르던 기층민들의 참여였다. 이들은 이념도 계급도 아닌 타인의 고통을 가만히 볼 수 없다는 이유로 거리에 나섰다.

이것이 말벌 시민이라는, 다소 장난스러워 보이는 이름이 의미를 갖는 지점이다. 양봉인이라면 말벌 날개짓 소리만 들어도 일단 달려가기 마련이다. 자세한 사정은 꿀벌을 지키고 나서 알아도 늦지 않다. 스스로 말벌 시민이라 부르는 이들도 그렇다. 이들을 부르는 것은 타인의 고통 그것뿐이다. 우리가 모두 평등하고 존엄한 시민이고, 과도한 고통을 받아서는 안 된다는 것, 사전 지식은 그것이면 충분하다. 연대를 거듭할수록 그들의 투쟁 범위는 더욱 넓어지고, 이들이 '동지'라고 부르는 공동체 역시 넓어진다.

광주에 찾아온 말벌 시민들을 보며, 학교가 얼마나 표백된 곳인지 느낄 수 있었다. '장애이해교육'은 장애인 이동권 투쟁과 탈시설 운동을 다루지 않는다. '양성평등' 교육은 여성혐오와 교제폭력에 대해서는 함구한다. '양성'이라는 말부터 젠더퀴어를 배제하고 있다. 다문화교육은 현재 심각한 수준으로 퍼져 있는 외국인, 특히 중국인 혐오를 못본척한다. 학교교육에는 타인의 고통이 없고, 그 고통에 응답해온 위대한 시민운동의 전통 또한 없다. 이러한 표백 작업의 절정은, 이러한 시민성을 가르쳐야 할 교사에게 정치적 행동의 자유조차 없다는 것이다. 교사에게 주어진 것은 그저 의무적으로 가르쳐야 할 범교과교육 시수뿐이다.

교육의 중요한 목표 중 하나가 민주시민 양성이라는 데 동의하지 않는 사람은 없다. 그렇다면 교육은 우선 타인을, 타인의 고통과 투쟁을 들여다보는 법부터 가르쳐야만 할 것이다. 마침 지금 우리에게는 딱 맞는 체험학습 현장이 있다.

슬퍼요
3
후속기사 원해요
5

독자 여러분의 제보를 기다립니다. 광주・전남지역에서 일어나는 사건사고, 교통정보, 미담 등 소소한 이야기들까지 다양한 사연과 영상·사진 등을 제보받습니다.
메일 mdilbo@mdilbo.com전화 062-606-7700카카오톡 플러스친구 ''무등일보' '

댓글2
0/3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