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단칼럼] 방과후 운동장 공 차기

@김동혁 용두중 교사 입력 2024.01.02. 17:03

학교를 나서는데 운동장이 시끌시끌하다. 방과후 삼삼오오 남은 학생들이 공을 차고 있었다. 골대 두 개, 공터 하나로 신나게 땀 흘리고 고함 지르고 열심히 내달리며 에너지를 온 몸으로 발산한다. 방과후 프로그램도 아니고 축구 교실도 아니고 그저 학교 아이들이 하교하다 서로에게 "한 게임 할래?" 하는 식으로 눈을맞춰 시작한 놀이로 보인다. 중학교부터 고등학교 내신 경쟁을 위한 학원으로 아이들이 모이기 쉽지 않은데 그래서 방과 후 휑하기 일수인 운동장이 이 낭만가득 놀줄아는 장난꾸러기들로 시끌벅적하다.

낯설면서도 반갑다. '그래 이게 정상이지'라는 생각이 절로 나온다. 그러면서도 동시에 학원 숙제도 밀리고 내일 수업 예습도 못하고, 수행 보고서 준비도 쌓일텐데, 게임 레벨도 못올리고 저리 축구하고 나면 남는 것은 부족한 시간, 쌓인 것은 산더미같은 과제, 부모님 또는 과외 선생님 채근 아닐까하는 걱정도 든다. 공놀이 하는 아이들이 삶을 제대로 즐길 줄 아는 용기를 발휘하는 것 같아 대견하면서도 그 용기에 따라 부담해야할 큰 학습노동의 피곤함과 부채가 안쓰럽기도 하다.

함께 공놀이를 하는 아이들이 열심히 뛰고 난 뒤 성적도, 칭찬도, 돈도 아무 것도 손에 쥘 수 있는 것이 없다. 그저 온 몸 가득 에너지를 쏟고 신나게 놀이에만 온전히 집중하며 즐긴 추억만 몸에 새겼을 뿐이다. 몸에 새긴 즐거움으로 한껏 충만하다. 그렇게 무엇인가를 바라지 않고 순수하게 놀이 그 자체에 집중하는 경험이 쌓인다. 수단이 아닌 목적 그 자체로 사건을, 사람을 대하는 법을 배우고 이를 체화시키는 경험을 쌓는다. 인맥을 쌓기 위해서, 돈을 벌기 위해서 사건을, 상대를 도구적으로 대하라. 이용하고 버려라 그래야 호구를 면할 수 있다. 지혜로운 것이다는 마키아벨리즘적 유혹에 덜 중독된다.

우리의 두뇌는 끊임없이 미래에 대한 두려움을 자극하여 오늘에 집중하지 못하게 만들고 자본주의 이데올로기는 그런 두뇌의 작용기제를 활용해 개미와 베짱이 동화를 퍼뜨린다. 나 또한 학창시절을 그 동화에 눌려 살아왔다. 가장 또렷하게 기억하는 고등학교시절 기억이 오랫동안 자리에 앉아 공부한다고 교장실로 불려가서 칭찬받은 것과 야자 끝나고 밤10시 드라마 보려고 학교 담 넘다가 걸려 넘어져 팔 긁힌 것이다. 아 얼마나 슬픈가. 학창시절 추억이 공부한 것밖에 없다니. 끝없이 요구조건이 확대되는 안정성 욕구란 욕심쟁이를 만족시키고자 나의 지금을 수단화, 도구화하는 삶을 살았다. 그렇게 미래에 대한 두려움에 쫓기며 오늘을 즐기지 못하고 지금을 저당잡히며 살았음에도 불안은 여전히 엄습하고 있다. 40이 넘어서야 걷기를 통해 오늘, 지금, 여기, 나에 집중하며 미래로부터 해방되는 법을 익히기는 했지만 말이다. 나는 참 오래 걸렸는데, 운동장의 아이들은 나의 시행착오를 보다 빠르게 극복할 기회를 만들고 있는 것 같다.

물론 미래에대한 불안에 쫓긴 덕에 나름 안정적 직장을 빨리 얻긴 했지만 돌아보면 그 값이 너무 비싸고 폭력적이다. 미래 불안 중독에 빠져 나오기가 만만치 않기에 말이다. 운동장 아이들이 나에게 외친다. "선생님, 공 좀 차주세요." 내 발 밑으로 온 공을 힘껏 찬다. 보기 좋게 헛발질이다. 아이들도 웃고, 나도 웃는다. 이아이들이 나보다는 더 빨리 미래에 대한 불안에서 벗어나 자신의 오늘을 수단화 하거나 상대를 도구화하는 슬픔을 반복하지 않길 바래본다. 김동혁 광주 용두중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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