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개막식이 있던 날 시장은 인산인해였다. 얼마 만인가, 이렇게 사람들로 들끓던 때가. 시장 통에 퍼포먼스가 벌어지고 관람객, 시장 사람들 모두 난장을 구경하러 길에 나와 나래비서는 데 긴 광목천이 뱃길처럼 갈라지며 길을 트는 것이었다. 시장은 다시 태어난 듯했다. 나도 근처 주막에 앉았다가 긴 광목천을 붙들고 동참했던 기억이다.
대인시장 동문다리 복개된 아치형 통로는 열기가 빠져나가지 않고 후끈해서 홍어거리, 과일 가게, 생선가게 지릿한 냄새까지 올라와 동참하고 있었다. 내 점방도 그 언저리에 자리를 잡고 호객행위 할 준비를 마쳤다.
홍어가게 즐비한 곳에 ‘홍어 × 팝니다’ 하고 도발적인 간판을 내건 것이다.
“작품이여 뭐여?” 간간이 노랫가락이 새 나오고 설치물 모니터에 노랫소리를 따라가다 보면 작은 모니터 화면에는 한 사내(작가)가 술청에 앉아 천연덕스럽게 노래를 부른다.
탁주 잔 놓고 젓가락 장단에 목이 째져라 남진의 ‘가슴 아프게’를 부르고 있다. “당신과 나 사이에 저 바다가 없었다면~” 뭔가 맺힌 게 많은가보다.
영상은 먹그림 흑산도 바닷가 돛배가 떠 있고 갈매기는 끼룩끼룩 술을 맨입으로 먹는가. 앞자리에 주모 앉히고…. 마치 연극 무대 같다고나 할까?
설치물은 각목을 얼기설기 거치대로 세우고 FRP 소재로 제작된 속절없이 잘려나간 '만만한 홍어 생식기'가 무수히 걸렸는데 갯가의 덕장 같기도 하고 당집 같기도 하고, 무슨 해원 굿이라도 하는 것일까? 내 홍어 가게는 날마다 문전성시였다.
떡본 김에 제사 지낸다고 부스 앞에 평상을 내놨더니 오고 가는 이 걸터앉아 홍탁 한 사발 안 하고 가는 이가 없었다.
비엔날레가 개막하고 며칠 후 총 감독(오쿠이 엔위저)이 내 작품을 보러 대인시장을 찾게 되는데 피지컬이 남다른 사람이었다. 점방을 쑥 밀고 들어오는데 일면식이 없었던 터라 안내인의 설명을 듣고서야 수인사를 나눴다.
나이지리아 출신의 미국인이라는데 광주비엔날레가 발판이 되었던지 이후로도 베니스비엔날레 감독 등 활약이 대단했다고 한다. 귀한 분이 방문하셨는데 마땅히 대접할 게 없다며 “홍어 한 점 하시라” 했더니 극구 손사래를 치는 것이었다. 대신 막걸리는 한 잔 할 수 있다며 목 넘김 시원하게 원샷을 했다.
비엔날레의 징후는 좀 더 일찍 대인시장과 인접한 대안 공간 ‘매미’에서부터였다. 광주 근동의 한참 활동기 아티스트들이 꾸민 공간으로 폐창고를 전시장으로 꾸민 것이다. 전시회도 하고 아트마켓도 열고 해서 에너지가 충만한 공간이었는데 그 중심에는 광주 주요 작가들과 박성현(이후 대인시장 복덕방 프로젝트 감독을 역임하게 된다)씨가 주도하게 되면서 대인시장에서 비엔날레가 열린다는 소식을 전한다. 그리고 바로 참여작가가 선정된다(마문호, 박문종, 백기영, 신호윤). 작품 기획안을 제출하게 되고 서울에서 진행된 프레젠테이션에 참여하게 된다. ‘한참 PT 진행 중에 오쿠이 감독의 대인시장 기획안에 대한 거듭되는 질문에 일순 분위기가 바뀌며 갑자기 카메라 불빛 세례를 받게 돼 조짐이 좋았다’는 행사에 참여했던 박 감독의 전언이었다.
처음에는 감독 체제가 신정아, 오쿠이 엔위저 투톱체제였다가 신정아씨가 사퇴하는 우여곡절을 겪게 되는데 외국인 감독 단독 체제가 되다 보니 한국 사회의 단면을 여과 없이 바라본 결과가 아닐까? 추론이다. 실제로 참여작가, 기자 등이 참여하는 전야제가 대인시장에서 이루어지는데 이건 무게 중심의 이동을 의미한다. 그 전에도 후배들과 술 한 잔 할 때는 시장통을 찾곤 했는데 4시, 5시면 주부들이 한참 시장 볼 시간인데도 시장통은 노인 한두 사람 지나는 것이 고작이었는데 외국인뿐 아니라 사람들로 빼곡히 들어차니 경천동지할 일이었다.
무슨 일이든 간절해야 쉬 풀리듯 대인시장이 그런 상황이었는데 비엔날레 한 판에 파급 효과가 만점이었다. 시장 관계자의 말을 빌리자면 신문, 방송 각 매체에 백번도 더 넘게 나왔을 것이라며 당시 열기를 전하는데 삼박자가 똑 떨어진다. 상인은 상인대로 수지맞아 좋고 오갈 데 없는 예술가는 노닥거리다가 영감도 얻고 관청은 관청대로 시장 관리에 골머리를 앓는다는데 문화예술을 앞세우니 저비용 고효율이라는 것을 행사를 치르다 보니 알게 되었다고 본다. 지원금을 늘려 잡았다고 했으니 ‘예술시장’이라는 닉네임도 붙고 야시장 프로젝트는 지금도 지속된다고 한다. 도심 속 시장 바닥에 활짝 핀 2008 광주비엔날레 내 비엔날레 가는 길은 좀 멀었다. 무슨 절차나 단계를 밟듯 했으니 허름한 담양 국밥집에서 시작되어 말바우 장, 중흥동 프로젝트, 대안공간 ‘매미’, 그리고 비엔날레에 이르기까지 그 결말을 봤으니 말이다. 그 이후로도 한동안 대인시장을 드나들었다. 야시장(아트마켓)이 열리는 날이면 노점 할매처럼 텃밭에 무한 개, 배추 한 다발, 거기에 아기들 손바닥만한 그림 매달아 장바닥에 자리를 깐 것이다. 그림 한 점이 무값, 배춧값이라며 호객을 하는 것이다. 너스레를 떨면서 말이다.
2026. 8. 29. 담양 수북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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