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재섭 광주비엔날레 민간기록 수집 연구팀 연구원(광주독립영화관 관장)
오랜 역사 불구 민간기록 연구 ‘공백’
여러 층위 경험 모아 사료 폭 넓혀야
민영화·코로나 …굴곡진 시간 재조명
1·2회 명예위원 하정웅부터 시민까지
저마다 시선 통해 숨은 장면들 포착
“미래 위한 체계적 아카이브 구축 필요”

우리는 기억 속에서 무엇이건 다 찾아내게 마련이다. 기억은 일종의 약국, 화학 실험실 같다. 아무렇게나 내민 손에, 어떤 때는 진정제가, 어떤 때는 위험한 독약이 잡힌다.(프루스트,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기억 속의 모든 것들이 서류보관함처럼 차곡차곡 쟁여 있지는 않다. 구술 당사자의 기억과 인생이 일목요연하게 서사화되고 기승전결로 발화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우리가 살아가는 인생은 태어나서 성장하고 늙어가는 단선적인 시간의 흐름 속에 있는 듯하지만, 사람의 기억은 어떤 촉매제로 인해 먼 과거로 돌아가기도 하고, 과거의 기억이 현재로 소환되기도 한다. 구술사도 역시 그러하다. 하나의 질문은 시간의 층위가 다른 과거의 여러 사건들을 한꺼번에 떠오르게 만들기도 하고, 고통스러운 기억 때문에 스스로 봉인시킨 문 앞에서 말을 중단하기도 한다.

구술사는 불규칙적으로 저장되어 있는 ‘기억’을 ‘말’로 끄집어내고 그것을 ‘글’로 옮기는 작업이다. 물론 여기서 가장 중요한 것은 ‘말’이지만, 말만이 전부는 아니다. 구술 연행(oral performance)이라는 개념이 시사하는 것처럼, 그것은 말을 중심에 놓고 진행되는 하나의 연극적 행위이기도 하다. 구술 연행에는 질문과 답변만 있는 것이 아니라 답변을 하는 대상자의 표정, 몸짓, 목소리의 리듬 등 ‘비언어적 행위’들을 주의 깊게 관찰하고 연극의 지문처럼 기록해야 한다. 무슨 내용을 말했는가만이 아니라 어떻게 말을 했는지도 중요하다는 것이다.
기존 문헌사 중심의 미술사 쓰기 역시 텍스트화된 사료들 간의 경합의 결과물이다. 상대적으로 수도권에 비해 예나 지금이나 큐레이터, 비평가, 연구자, 아키비스트 등 예술 인프라가 빈약한 지역에서 지역미술사는 소외될 수밖에 없고 사료들 역시 불충분하다. 이와 같은 인프라 부족을 일거양득으로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이 구술사 연구인 셈이다.

그렇다고 구술사가 대부분 승자들의 기록인 문헌사를 보완하는 알리바이로 작용해선 안 된다. 특히 불균질적인 사람의 기억과 말을 중심에 놓는 구술사 방법론에 대한 충분한 이해가 없이 구술사를 활용하면 연구 성과만을 쫓는 약탈적 구술, 문헌사를 보조하는 수단으로 전락할 가능성이 크다. 특히, 이번 광주비엔날레처럼 역사의 기억에서 누락된 하위주체들이 아니라 자신의 통제력을 합리화할 줄 아는 엘리트 집단일 경우엔 자신들의 업적을 보증해 주는 장치로 구술사가 쓰일 수 있기에 더욱 그렇다.

그럼에도 30년이나 된 광주비엔날레 역사와 밀착한 민간 기록물이 제대로 연구 조사된 적은 없다. 광주비엔날레와 관련된 예술노동자들의 구술사는 말할 것도 없다. 2년에 한 번씩 감독, 큐레이터, 작가, 테크니션, 운송, 홍보, 교육, 예산, 행정, 도슨트 등 광주비엔날레를 움직이는 예술노동자들은 각자의 자리에서 ‘몸과 마음을 갈아 넣지 않고선’ 세계가 주목하는 광주비엔날레를 만들 수 없는 노동환경에 처해 있기 때문이다.
‘1995년 전국 최초로 지역에서 열린 국제 예술행사’라는 타이틀은 아직까지도, 앞으로도 광주비엔날레를 규정하는 성격이다. 이는 광주라는 공간적·역사적 배경의 지역성과 동시대(Contemporary) 예술 창작과 담론의 발신지라는 국제성의 충돌과 연대, 긴장과 화해의 연대기가 지난 30년 광주비엔날레 역사란 말이다. 그래서 광주비엔날레 예술노동자들은 지역성과 국제성에 대한 방대한 학습과 사업 정체성에 대한 숙제를 통과해야만 하는 시험을 끝없이 치르고 있는 셈이다. 이들의 ‘말’이 안착할 토양이 거대한 ‘아카이브’에 포함될 수 있을지는 아직 알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구술 채록 과정에서 만난 다양한 행위자들의 목소리는 귀하다. 1995년 비엔날레 창설부터 새로운 예술제도의 안착 과정에서 민영화 사태, 코로나라는 파국 상태에서 예술의 역할, 지역과 세계의 젊은 작가와 기획자들의 무중력지대를 만들어낸 대인시장 복덕방 프로젝트, 1980년대 목판화 운동을 총망라하며 예술 형식과 사회적 내용이 행복하게(?) 일치했던 아방가르드 시대를 재구성한 특별전, 정치적 검열에서 지원금이라는 경제적 검열로의 예술 검열 작동 기제의 미묘한 변화를 예고한 ‘세월오월’ 사태, 하정웅이라는 저 멀리 일본에서 한 푼의 대가도 없이 고향 일, 예술 일에 발 벗고 모든 것을 내어준 참 어른, 초기 비엔날레 희귀 기념우표를 모았던 중학생에서 지금은 학예사가 되었다는 수줍은 기획자, 작가로서 가장 치열하게 공부하고 싸우고 작품을 만들었던 시기라며 다시는 못 할 것이라는 당당한 작가까지 연구팀이 만난 대상자들은 하나같이 비엔날레를 애증(?)했다. 애증이라지만 모두 미움보다 사랑이, 냉소보단 우정의 마음들이었다.

앞으로도 구술 연구는 더 진행될 예정이다. 대부분 9월 개최되는 광주비엔날레 기간에 방문하는 외국 참여자들이다. 그들이 참여했을 때와 달라진 광주비엔날레를 묻기에 아주 효과적이기 때문이다. 그들도 처음엔 애증이라며 손사래를 치겠지만, ‘독약’보다는 ‘진정제’를 내놓을 것이라 기대한다. 아니, 또, ‘독약’은 독약대로 지금 광주비엔날레를 더 건강하게 만드는 약이 될 수 있을 테니까 말이다.
덧붙여, 아카이브는 과거의 영화(榮華)를 위한 것이 아니고 미래를 위한 프로토콜이다. 즉, 현재를 어떻게 정리하고 보존할 것인가에 대한 관심도 필요하다는 것이다. 나중에 땅을 치고 후회하지 말고 과거와 현재 아카이브를 미래 관점에서 개념 설계(conceptual design)해야 한다. 최소 5·18 100주년, 광주비엔날레 100주년이란 미래에서 말이다. 광주비엔날레 민간기록물과 구술 채록을 계기로 전남광주 문화 예술에 대한 종합적이고 체계적인 아카이브 사업이 시작되길 바란다. 전남광주가 그저 행정적 통합만이 아니라면, 문화예술의 기록이 시민들에게 향유되도록 하는 작업이 매우 요긴할 터이다. 그것은 문화민주주의의 확장만이 아니라 AI 주권(Sovereign AI) 체제에 전남광주가 문화로 먹고 살기 위해선 적어도 데이터는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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