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느덧 해방 81주년을 맞이했다. 우리는 지난 81년 동안 끊임없이 일제가 저지른 만행에 대해 진심 어린 사죄를 요구해 왔으나, 돌아온 대답은 99.99% ‘조롱과 비하’였다. 언제까지 가해자의 선의에 기대어 구걸하듯 사과를 기다릴 것인가. 이제는 우리가 우리의 기준으로 일제의 과거사를 과감하게 단죄해야 할 때다.
필자가 펴낸 우리나라 최초의 ‘왜구인명사전’은 기원전 50년부터 시작된 한반도에 대한 일본의 침략사를 단순한 수탈이 아닌 ‘제노사이드(Genocide, 민족말살)’의 역사로 규정한다. 고려시대 100만 명, 임진왜란 200만 명, 동학농민혁명 30만 명, 태평양전쟁 100만 명 등 적어도 500만 명 이상의 우리 민족이 무참히 학살당했다. 그러나 친일 사학자들은 이 침략사를 시대별로 파편화하여 제노사이드의 본질을 교묘히 숨겼다. 1894년 동학농민혁명군에 대한 대규모 학살조차 독립운동사와 의도적으로 단절시켰으며, 침략 당사자들의 실명조차 감춘 채 ‘왜구’나 ‘일본군’으로 뭉뚱그려 대물림되는 학살자 가문의 실체를 덮어주었다. 다행히 일본의 이노우에 가쓰오 전 홋카이도 대학 교수 같은 양심적 학자가 동학농민혁명 당시 일본군의 만행을 ‘제노사이드 작전’으로 규명해 냈지만, 여전히 우리 역사학계는 식민사관의 잔재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우리의 뼈아픈 굴종은 해방 후에도 이어졌다. 1965년 박정희 정권의 ‘한일협정’과 두 차례의 어업협정이 그 대표적인 족쇄다. 일제는 200여 톤의 금, 한우 1천만 두, 조선은행 청산 잔금, 그리고 징용자들의 임금을 갈취한 1,100억 엔(현재 가치 약 330조 원) 등 엄청난 부를 수탈했다. 배상 근거가 차고 넘쳤음에도, 일본군 장교 출신 박정희는 일본 관료들 앞에서 입도 뻥긋하지 못한 채 경제지원금 명목의 단돈 3억 달러를 받고 민족의 피값을 헐값에 넘겼다. 심지어 독도를 ‘평화선’에서 제외하는 굴욕마저 감수했다. 이 통한의 3억 달러는 61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일본이 “한국에 대한 보상은 모두 끝났다”며 우리 피해자들을 조롱하는 족쇄가 되었다. 또한 1965년 제1차 어업협정과, IMF 환란 속에서 30억 달러 차관을 핑계로 밀어붙인 1998년 제2차 어업협정(김대중-오부치 선언의 이면)으로 인해 우리는 동해와 남해의 배타적경제수역(EEZ)을 내어주고 대화퇴 어장마저 빼앗기는 참담한 결과를 맞았다.
작금의 일본 정치권을 보라. 무라야마 담화나 고노 담화 같은 일말의 반성조차 아베 신조를 비롯한 극우 정치인들의 조롱거리로 전락했다. A급 전범의 후예들인 자민당 극우 정치인들은 국회를 장악하고, ‘신도정치연맹’, ‘일본회의’ 등 수십 개의 극우 의원 연맹을 조직해 역사 왜곡을 진두지휘하고 있다. 공문서와 교과서에서 강제성을 뜻하는 ‘종군 위안부’의 ‘종군’이라는 단어를 삭제했고, 난징대학살 당시의 참혹한 참수 경쟁을 젊은 군인들의 장난으로 둔갑시켰다. 나아가 ‘한일의원연맹’조차 한국을 비하하고 조롱하는 선전장으로 악용하며 철옹성 같은 극우 유권자들을 양성하고 있다. 일본에게 자발적인 과거사 반성을 기대하는 것은 우물에서 숭늉을 찾는 격이다. 자칫하다간 피해자인 우리 민족이 파렴치한 가해자로 조작되어 그들의 교과서와 문화 콘텐츠로 전 세계에 유포될 판국이다.
결국 해답은 자구적 결단에 있다. 우리는 제2차 세계대전 전승국들처럼 일제를 단죄한 공식 기록조차 없다. 더 늦기 전에 광복 85주년인 2030년 8월 15일까지 ‘(가칭) 일제청산 민족법정’을 열자. 국회가 특별법을 제정해 특별 검찰청과 재판소를 설치하고, ‘민족 검사’와 ‘민족 판사’를 선발해야 한다. 제노사이드를 상징하는 500만 명을 ‘제노사이드 원고단’으로 모집해 광화문광장에서 민족 재판의 서막을 올리자. 1875년 운요마루 침략부터 1945년 조선은행 불법 엔화 유통 사건까지, 모든 침략 사건에 대해 일본인과 일본 정부를 피고로 세워 낱낱이 재판하고 그 결정문을 정사(正史)로 남겨야 한다.
나아가 당사자가 배제된 1965년 한일협정 체제를 종결하고, 불법적인 제1·2차 어업협정을 파기하자. 양국 ‘공동 진실위원회’를 구성해 밀실 거래를 만천하에 공개하고, 부당한 협정의 실상을 방탄소년단(BTS)의 노랫말 등을 통해 전 세계에 알려 시대에 맞는 ‘신·한일협정’으로 나아가야 한다. 빼앗긴 바다 영토를 되찾고, 기록관을 세워 대를 이어 망언을 일삼는 ‘신왜구’들의 족보를 영구히 박제하자.
다가오는 2030년 8월 15일, 기원전 50년부터 시작된 2천 년의 참혹한 민족적 가슴앓이를 끝내고 진정 새로운 한일관계의 정초를 놓는 한민족의 시대를 열어가자.
김강열 전 광주환경공단이사장·‘왜구인명사전’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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