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이건희 컬렉션, 송현동을 넘어 ‘남도의 미래’로 향해야 한다

@이광재 전 국회 사무총장 입력 2026.03.30. 08:58
이광재 (전 강원도지사·전 국회사무총장)

대한민국은 지금 ‘수도권 일극 체제’라는 거대한 벽에 부딪혀 있다. 인구, 자본, 심지어 국민의 문화 향유권마저 서울이라는 블랙홀로 빨려 들어가고 있다. 고(故) 이건희 회장의 유족이 기증한 인류적 자산, ‘이건희 컬렉션’ 역시 서울 송현동에 기증관 건립을 추진 중이다. 하지만 나는 묻고 싶다. 2만 3천여 점의 방대한 유산이 서울의 빌딩 숲에 갇히는 것이 과연 기증자의 숭고한 뜻을 온전히 받드는 길인가.

이제 우리는 ‘보존’을 넘어 ‘확장’을, ‘관람’을 넘어 ‘산업’을 이야기해야 한다. 그 해답의 열쇠는 대한민국 문화의 뿌리이자 혼(魂)이 살아있는 광주와 전남에 있다. 일각에서 제기하는 ‘중복 투자’나 ‘자산의 파편화’라는 우려는 국가 전략의 차원을 이해하지 못한 근시안적 시각이다.

첫째, 기증품에 ‘미래의 날개’를 달아주는 전략적 선택

서울 송현동이 컬렉션의 정수를 보여주는 ‘얼굴’이라면, 광주와 전남은 그 자산을 실질적인 부가가치로 전환하는 ‘심장’이 되어야 한다. 나주 혁신도시의 한국콘텐츠진흥원(KOCCA)은 기증품의 IP(지식재산권)를 디지털화할 세계적 역량을 갖췄고, 국립아시아문화전당(ACC)은 이를 미디어아트로 구현할 최적의 무대를 제공한다. 기증품이 서울에만 머물면 ‘과거의 유산’에 그치지만, 남도의 기술과 만나면 ‘미래의 산업’이 된다. 이것은 단순한 분산이 아니라 국가 자산의 입체적 배치이며, 저비용·고효율의 보완 투자다.

둘째, 거장들의 예술적 고향으로의 귀환

이건희 컬렉션에는 신안의 김환기, 고흥의 천경자 등 호남이 낳은 세계적 거장들의 숨결이 깃들어 있다. 예술은 그 작품을 탄생시킨 풍토와 조우할 때 비로소 가장 강력한 생명력을 뿜어낸다. 서울의 박제된 공간이 아니라, 남도의 산천과 예술적 향기가 흐르는 현장에서 이들의 작품을 마주하는 것은 국민에게는 차원이 다른 감동을, 지역에는 대체 불가능한 문화적 자부심을 선사할 것이다.

셋째, ‘문화 수도’ 광주·전남의 경제적 도약

내가 강원도지사 시절부터 강조해온 지역 살리기의 핵심은 ‘사람이 모이는 힘’이다. 이건희 미술관 분관이 남도에 들어서고, 나주의 콘텐츠 기술과 광주의 비엔날레 인프라가 결합한다면 연간 수백만 명의 관광객이 찾는 ‘글로벌 아트 로드’가 완성된다. 이는 일회성 예산 지원보다 훨씬 강력한 지역 소멸의 해법이자, 호남의 미래 먹거리를 책임질 ‘문화 경제’의 기틀이 될 것이다.

최근 지역 정치권에서 제기되는 ‘전남광주통합특별시’ 구상과 연계된 ‘디지털-아트 분관’ 유치 목소리는 매우 시의적절하고 날카롭다. 이는 단순히 건물을 유치하자는 호소가 아니라, 국가 문화 지도를 새로 그리겠다는 치밀한 설계도이기 때문이다. 기술과 예술, 그리고 뿌리가 하나로 뭉치는 이 전략은 광주를 넘어 대한민국의 미래를 바꾸는 결정적 한 수가 될 것이다.

정부는 이제 대답해야 한다. 대한민국 문화의 혼을 서울이라는 좁은 틀에 가두지 마라. 광주의 예술적 깊이와 나주의 디지털 기술이 만날 때, 대한민국은 비로소 세계를 압도하는 문화 강국으로 도약할 수 있다. 남도에서 시작될 이 장대한 ‘문화 르네상스’가 대한민국 균형 발전의 새로운 이정표가 되길 기대한다.

슬퍼요
0
후속기사 원해요
0

독자 여러분의 제보를 기다립니다. 광주・전남지역에서 일어나는 사건사고, 교통정보, 미담 등 소소한 이야기들까지 다양한 사연과 영상·사진 등을 제보받습니다.
메일 mdilbo@mdilbo.com전화 062-606-7700카카오톡 플러스친구 ''무등일보' '

댓글0
0/3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