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전남광주 통합, 서생의 철학과 상인의 계산

@박홍근 나무심는건축인대표·(주)포유건축사사무소대표 입력 2026.03.26. 14:43
박홍근(건축사, 공간복지생각 대표)

대한민국 정치사에서 오래 회자되는 김대중 대통령의 말이 있다. “서생적 문제의식과 상인적 현실감각의 조화.”

서생(書生)은 원칙과 정의를 고민하는 사람이고, 상인(商人)은 현실 속에서 손익을 계산하는 사람이다. 김대중 대통령은 정치가 이 두 감각을 함께 갖추지 못하면 실패한다고 보았다. 철학만 있고 현실감각이 없으면 공리공론에 빠지고, 현실감각만 있고 철학이 없으면 지조 없는 기회주의가 된다는 것이다. 머리는 차가운 원칙으로 생각하고, 손발은 뜨거운 현실 속에서 움직여야 한다는 이 가르침은 오늘 광주와 전남이 마주한 ‘행정 통합’의 과제를 바라보는 중요한 기준이 된다.

지금 광주와 전남은 행정 통합이라는 역사적 선택의 문턱에 서 있다. 민주당 경선이 사실상 본선처럼 인식되는 이 시점에서 우리가 먼저 던져야 할 질문은 단 하나다.“왜 통합인가?” 이 질문에 답하는 것이 바로 서생적 문제의식이다. 단순히 인구 규모를 키워 중앙정부 예산을 더 확보하겠다는 계산만으로는 통합의 의미를 설명할 수 없다. 진짜 질문은 이것이다. 소멸해 가는 지역 공동체를 어떻게 지속 가능하게 만들 것인가. 수도권 일극 체제 속에서 남도는 어떤 방식으로 생존하고 성장할 것인가.

광주의 문화·예술 자산과 전남의 바다·섬·농촌이라는 자연 자산을 하나의 생태·문화권으로 연결하는 것은 단순한 행정 통합이 아니라 지역의 미래 전략이다. 소지역주의라는 작은 이해관계를 넘어 광주전남권 메가시티라는 큰 틀을 설계하는 힘은 바로 이런 철학적 문제의식에서 나온다.

그러나 숭고한 당위만으로 도시는 작동하지 않는다. 통합 특별시의 설계는 철저한 상인적 현실감각 위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가장 먼저 필요한 것은 연결의 효율성이다. 광주 도심 교통과 전남 주요 거점을 30~40분 생활권으로 묶는 광역교통망, 간선급행버스(BRT) 같은 실질적 교통 전략이 필요하다. 통합 이후 시민의 이동 시간이 줄어들고 물류비가 낮아지며 상권이 살아난다면, 그 자체가 통합의 가장 강력한 증거가 된다.

공간 전략에서도 현실적 접근이 필요하다. 흔히 말하는 ‘허브–스포크’ 모델처럼 하나의 중심 도시가 주변을 이끄는 구조는 전남광주 통합의 현실과 맞지 않는다. 이미 광주, 무안, 동부권은 각기 다른 기능과 역할을 가진 거점들이다. 오히려 필요한 것은 여러 도시가 기능을 나누고 강하게 연결되는 ‘다핵 네트워크형 도시 구조’이다.

광주는 첨단 산업과 고부가가치 서비스의 중심이 되고, 전남의 시·군은 에너지·제조·농수산·관광 산업의 거점으로 역할을 나누는 구조가 필요하다. 전남의 신재생 에너지가 광주의 첨단 산업과 연결되고, 해양과 농수산 자원이 도시의 소비시장과 결합될 때 통합은 단순한 행정구역 확대가 아니라 경제 생태계의 재편이 된다.

결국 전남광주특별시의 성패는 지도자의 역량에 달려 있다. 초대 특별시장은 광주와 전남 사이의 행정 거점 배치, 시·군 간 재정 배분, 지역 간 이해관계 충돌을 동시에 조율해야 하는 어려운 시험대에 서게 된다. 이때 지도자는 서생의 저울로 형평성을 재고, 상인의 계산기로 상생의 이익을 만들어야 한다. 원칙에서는 흔들리지 않되, 성장의 기회를 만드는 데에서는 과감해야 한다.

지금 필요한 지도자는 단순히 당선되는 사람이 아니라 통합을 경영할 사람이다. 서생의 눈으로 백년의 도시를 설계하고, 상인의 발로 현장을 누비며 시민의 삶을 바꾸는 지도자. 그가 있을 때 전남광주특별시는 단순한 행정 실험이 아니라 대한민국 남부의 새로운 중심으로 도약할 수 있을 것이다.

경선에 나선 후보들은 스스로에게 물어야 한다. 나의 공약에는 서생의 철학이 있는가? 그리고 나의 전략에는 상인의 현실감각이 살아 있는가?

시민들 또한 분명한 기준을 세워야 한다. 우리는 단순히 정치인을 뽑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삶의 공간을 새롭게 설계할 지도자를 선택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서생처럼 생각하고 상인처럼 행동하라’는 김대중 대통령의 이 오래된 가르침이 전남광주특별시라는 새로운 도시의 출발점이 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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