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광주와 전남이 하나로 합쳐지는 거대한 행정 통합의 시대가 마침내 막을 올렸다.
하지만 물리적인 구역을 단순히 더하는 산술적 결합만으로 500만 메가시티의 굳건한 자생력이 완성될 리 만무하다. 그 무엇보다 우선돼야 할 과제는 생명과 직결된 첨단 보건 인프라의 획기적인 도약이다.
수도권으로 출장 가는 날, 이른 아침 첫 KTX 열차에 앉으면 종종 서늘하고 서글픈 감정에 휩싸인다.
무거운 가방을 든 채 서울의 낯선 대형 병원 진료실을 찾아 떠나는 환자와 보호자들의 지친 얼굴을 자주 마주하는 까닭이다. 피로와 불안이 역력한 그들의 표정 뒤로 광주와 전남이 직면한 지방 소멸의 차가운 민낯까지 겹쳐 보일 때면 나도 모르게 차창 밖으로 고개를 돌리게 된다.
그런 날이면 2시간 남짓한 여정 동안, 필자는 한 가지 불손하고 도발적인 상상을 조심스레 펼쳐 본다.
사유의 출발점은 지난 1968년 아시아자동차로 첫선을 보인 이래 반세기 넘게 도심 한복판을 지켜온 기아 오토랜드 광주공장으로 가닿는다.
무진대로를 곁에 둔 약 30만 평의 광활한 산업 심장부를 대한민국 모빌리티 혁신의 전초기지가 될 미래차 국가산단으로 전면 이전시키는 대담한 밑그림이다. 그리고 회색빛 굴뚝이 떠난 텅 빈 노른자위 부지 위에는 전국 최고 수준의 융복합 스마트 병원과 매머드급 헬스케어 타운을 세워 올리는 가슴 뛰는 구상으로 이어진다.
솔직하게 고백하건대, 겹겹이 둘러싸인 견고한 현실의 장벽 앞에서 이는 한낱 ‘망상’에 가까운 ‘다소 어려운 희망’일지도 모른다. 연간 60만 대의 자동차를 쏟아내는 거대 제조 시설을 통째로 뜯어 옮기는 일은 천문학적인 자본을 요구하는 국가적 난제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화성시에 25만 대 규모의 목적기반차량(PBV) 전용 신공장을 짓는 데 무려 4조 원을 투입한 민간 기업의 최근 선례를 되짚어보더라도, 전체 이전 비용은 수조 원의 뭉칫돈을 가볍게 뛰어넘을 공산이 크다. 새로운 터전의 매입비 산정과 막대한 보상금을 둘러싼 줄다리기 협상 역시 반드시 넘어야 할 험준한 산맥이다.
여기에 총사업비 1조 원에 육박하는 전남대병원 새 병원 건립 사례에서 보듯, 수도권의 쟁쟁한 종합병원들을 압도할 진료 거점을 짓기 위해서는 천문학적인 국비 확보와 민간 자본의 공격적인 투입이 톱니바퀴처럼 맞물려 돌아가야 하는 아득한 가시밭길의 연속이다.
그러나 눈앞에 도사린 수많은 난관에도 이 무모한 ‘꿈’을 결코 포기할 수 없는 당위성은 너무도 명확하다. 아픈 몸을 이끌고 상경의 고단함은 물론 막대한 체류비까지 기꺼이 감수하는 시·도민의 무거운 발걸음은 오직 압도적인 장비와 서비스의 격차에서 비롯된다.
따라서 지역 내에 서울을 훌쩍 뛰어넘는 독보적인 치유 공간을 선제적으로 구축한다면 환자들의 이동 물길은 완벽하게 정반대로 흐르게 마련이다. 외부 유출을 막아내는 수동적인 방어전을 딛고, 전국의 중증 질환자와 명망 있는 명의들이 자발적으로 짐을 꾸려 통합특별시를 찾아오게 만드는 강력한 중력장이 생겨난다.
뛰어난 두뇌들이 정주하고, 연계된 바이오 연구소와 혁신 제약 기업들이 자석처럼 몰려들며, 양질의 청년 일자리가 폭발적으로 파생되는 찬란한 선순환 구조가 완성되는 것이다. 이처럼 최고 수준의 생명 공학 생태계 조성이란 단순한 보건 복지의 확충을 넘어 도시의 명운을 근본적으로 뒤바꾸는 마스터키라 할 수 있다.
결과적으로 도심 한가운데 자리 잡은 세계적인 치유·연구 융합 공간은 메가시티의 품격을 최고조로 끌어올리고 막대한 경제적 파급효과를 뿜어내는 훌륭한 앵커 인프라로 작동할 것임이 자명하다. 전대미문의 행정 융합을 목전에 둔 지금, 절실히 요구되는 덕목은 미세하고 점진적인 개선이 아니다. 공간과 자본의 흐름을 통째로 재편하는 과감한 패러다임의 대전환이 필수적이다. 더욱이 그 거대한 변화의 싹이 사람을 살리는 분야라면 더할 나위 없이 완벽한 선택이 아니겠는가.
물론 이토록 무모해 보이는 기획을 기꺼이 실행에 옮길 결단력 있는 인물을 찾기란 사막에서 바늘 찾기만큼이나 험난하다는 것을 뼈저리게 알고 있다.
그럼에도 상상의 나래를 거듭 펼치는 이유는 단 하나다. 평생을 호남이라는 든든한 터전에 깊이 뿌리내리고 살아오며, 내 가족과 다정한 이웃들이 가장 위급하고 절박한 순간 낯선 객지에서 쓸쓸히 떠도는 아픔을 겪지 않기를 간절히 바라는 평범한 ‘시민 1’의 뜨거운 염원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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