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광주·전남 통합이 현실화되고 있다. 통합의 필요성에 대해서는 이미 사회적 공감대가 상당 부분 형성되었다고 볼 수 있다. 이제 논쟁의 초점은 분명하다. 어떤 통합 지방정부를 만들것인가의 문제다.
그런데 최근 논의의 흐름은 안타깝다. 통합의 방향과 미래 비전보다 지역 간·분야별 이해관계에 매몰돼 득실을 따지는 논쟁이 앞서고 있기 때문이다. 통합 논의가 사회적 전환의 기회가 아니라, 이해 조정의 각축장으로 축소되는 느낌마저 든다. 이대로라면 통합은 시작과 동시에 내부 갈등에 발목 잡혀 추진 동력을 상실할 수도 있다.
지금 필요한 것은 명확하다. 통합을 전제로, 통합 이후 우리가 어떤 사회를 만들 것인가에 대한 분명한 선택이다. 미래에 대한 그랜드 플랜이 없는 통합은 과거의 연장일 뿐이다. 그동안 한국 사회의 통합과 광역화는 거의 예외 없이 같은 공식으로 추진돼 왔다. 더 큰 규모, 더 많은 기업, 더 높은 성장률. 수도권을 따라잡기 위한 경쟁 논리였다. 결과는 어떠한가. 수도권은 더 과밀해졌고, 지방은 오히려 더 취약해졌다. 성장은 있었지만 삶은 안정되지 않았고, 행정은 커졌지만 공동체는 약해졌다. 규모는 답이 아니었다. 이 단순한 사실을 우리는 수차례의 시행착오를 통해 확인했다. 이제 실패의 반복을 끝내야 한다. 지금의 광주·전남 통합은 과거의 연장이 아니라, 문명 대전환을 향한 마스터플랜이어야 한다.
수도권과 똑같은 도시를 하나 더 만드는 것이 아니라, 수도권과는 다른 방식으로 살 만한 삶 터를 설계해야 한다. 더 빠르고 더 비싼 도시가 아니라, 주거가 안정되고 돌봄이 일상이 되며 재난과 위기에 강한 도시. 사람들이 성공해서 떠나는 곳이 아니라, 살기 위해 머무는 곳. 이것이 통합이 지향해야 할 방향이다. 통합의 목표는 기업 유치나 산업시설 확대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 삶의 질과 형평이 함께 개선되는 구조, 이것이 통합의 핵심 지향점이 되어야 한다. 성장의 성과가 일부 지역과 계층에만 쌓이는 통합은 정의롭지 못하며, 민주화의 가치를 품은 지역의 모습과도 거리가 멀다. 통합의 과실이 기초자치단체와 생활권 단위까지 고르게 순환될 것이라는 믿음이 형성될 때, 시민은 비로소 통합을 자신의 삶과 연결된 변화로 받아들이게 된다.
통합의 성과는 숫자가 아니라 체감이다. 경제, 의료, 돌봄, 이동, 주거 생활에서 일상이 안정되고 행복해지는가. 이 질문에 답하지 못하는 통합은 성공이라 할 수 없다. 광주·전남 통합은 다른 지역과 경쟁하기 위한 전략일 필요도 없다. 이 통합의 가치는 누군가를 이기는 데 있지 않다. 우리만의 상생 모델을 만드는 데 있다.
AI와 기술의 시대에 더 빠른 효율을 추구하는 도시가 아니라, 기술을 인간의 삶을 지키는 도구로 사용하는 도시. 경쟁을 확대하는 도시가 아니라, 시민의 일상이 안정되고 공동체가 회복되는 도시. 광주·전남 통합은 이러한 새로운 사회 대개혁을 실현할 수 있는 드문 기회다.통합의 뜻이 모아졌다면, 이제는 어떤 삶의 방향을 선택할 것인가를 진지하게 고민해야 한다.
뜻을 함께하는 시민들이 모여 통합 이후의 삶터를 논의하고, 정치인을 설득해 이를 정책으로 구체화해 나가야 한다. 더 나아가 시급하게 추진되는 통합의 한계를 보완하기 위해, 통합법에 시민 숙의 과정을 명시하는 제도적 장치를 두는 것도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과제다. 이는 통합의 속도를 늦추는 장치가 아니라, 통합을 제대로 완성하기 위한 최소한의 안전장치다.
광주·전남 통합은 또 하나의 행정 개편으로 끝날 수도 있고, 한국 사회에 새로운 삶의 모델을 제시하는 사회 대개혁의 출발점이 될 수도 있다. 이제 선택해야 한다. 이 통합을 단편적인 이해관계로 소모할 것인가, 아니면 지금 세대가 책임지고 후손들이 자랑스러워할 남도의 빛나는 청사진을 완성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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