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소설 '소년이 온다'에 '눈을 뜬 달이 침묵하며 옥상의 여자아이들을 내려다 본 봄밤이었다'라는 대목을 기억하시는지요. 문학기행 첫 날의 일정이 끝나고 숙소에 들었는데 방을 환히 비추는 겨울초입 보름달이 저 대목을 떠 올리게 하더군요.
마침 박구용교수의 5.18 특강을 들은 다음이라 망연히 앉아 달을 바라보았습니다.
'예술은 감춰지고 비틀어지고 숨겨진 틈과 흠, 그리고 사이와 구멍을 찾아 표현한다.'는 말씀을 곱씹으면서요.
문학기행에 앞서 한강작가의 책들을 다시 한 번 읽었고, 5.18 기념재단에서 보내주신 책 가운데 소설도 몇 편 읽었습니다. 문학기행을 위한 나름의 준비였지요. 하지만 점심 후 망월동 국립 5.18묘지를 찾아 참배를 하는 동안 저의 준비는 준비랄 것도 없구나 싶었습니다. 문학기행 참가자 일행 모두에게 국화꽃 한 송이씩 쥐어주며 헌화를 할 수 있게 해준 섬세한 준비에 가슴 먹먹했지만 특별한 시간을 가졌습니다.
'우리의 미음에 눈물을 주고 너의 가슴엔 한을 남긴 이승의 못다 이룬 서러운 인연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우리 다시 만나자.' '소년이 온다'의 주인공, 문재학님의 묘비에 적힌 글을 나직하게 소리 내어 읽었습니다.
한강작가의 노벨상 수상이후로 찾는 이가 많아졌다지요. 따로 표지판을 두어 첫 방문자라도 쉽게 참배가 가능할 수 있도록 배려해놓았더군요. 5·18기념 재단 오월 안내해설사 이돈삼님의 묘역안내는 탁월했습니다. 무덤의 주인공들이 갖고 있는 그 슬프고도 안타까운 사연을 곡진하게 전해주는 그이에게 물어봤습니다. 어쩌면 그리 많은 내용들을 다 알고 기억하느냐구요. 그의 대답은 간결했습니다. "애정이지요."
국립 5.18묘지를 오른편으로 두고 작은 오솔길을 걸어 구 묘역으로 이동했습니다. 그 길을 따라 수많은 혼령들이 이동했다는 장면을 떠올려보면서요. 우리 모두를 숙연하게 또는 탄식하게 한 망월동 다음 코스는 환벽당이었습니다.
담양의 누정을 답사하던 기억을 떠올리며 당도한 그곳은 푸르름이 고리를 두르듯 아름다운 자연경관을 이룬다는 뜻의 당호에 걸맞게 소나무가 환벽당을 둘러싸고 있었지요. 하여 가사문학의 산실에서 21세기 노벨상 수상작가 한강의 작품을 톺아보는 시간이기도 했습니다.
소설이 시작되면 배경이 되는 상무관과 전남도청을 돌아보며 한강작가가 했던 말이 생각났습니다. '소년이 온다'를 읽고 이 책이 2030세대를 비롯한 많은 젊은이들이 광주로 들어가는 관문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했지요. 작가의 바람대로 젊은이뿐만 아니라 중장년과 노년들까지 광주를 찾아들게 만드는 '소년이 온다'입니다.
소설'소년이 온다'가 서양언어권에서는 인간의 행위를 뜻하는 'Human Acts', 프랑스에서는 '다시 오는 사람' 아사아권에서는 '소년이 온다'로 번역되어 읽힌다지요. 5.18당시 헌혈자들이 줄을 섰다는 적십자병원이 지금은 폐원되어 빈집으로 남아 있었습니다. 병원 앞뜰에 계절도 모르고 무심하게 핀 겨울장미 서너 송이가 쓸쓸했구요.
오래전 인터뷰에서 찾아 본 작가의 '쓰고 싶다기보다 제가 가장 절실한 것, 쓰지 않으면 견딜 수 없는 그런 것들을 쓰고 싶습니다.'라고 밝힌 작가의 작품이 바로 '소년이 온다'가 아닐까 싶습니다.
문학기행을 기획해주신 무등일보와 5.18재단 덕분에 '소년이 온다'가 온전히 제 안으로 들어왔습니다.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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