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우리 영호남은 만나야 한다

@황현호 문화발전소 소장 입력 2026.01.13. 18:01
황현호(문화발전소 소장)

신원 파악과 관리가 중학교 3학년짜리 '동호'의 중요한 역할이다. 그 어린 것이 죽음을 무릎쓰고 계엄군의 발포로 죽임을 당한 사람들의 관을 상무관에서 관리한다. 그는 "좋은 말로 할 때 들어. 당장 집에 들어와"라는 작은 형의 엄포와 엄마의 간청을 한 귀로 흘린다.

이돈삼 해설사는 분수대 광장에서 상무관으로 이동하며 한강의 '소년이 온다' 초반에 나오는 장면을 언급했다. 그날의 그림이 그려진다. 상무관은 전남도청과 함께 수리 중이고 은행나무는 사라졌다. 현장은 공사판이다. 접근할 수 없다. 도청은 내년 5월이면 역사의 현장을 해치지 않은 선에서 개보수를 마치면 새로운 모습으로 시민들에게 다가선다고 한다.

첫날 서울, 안동, 대구, 일산, 제주 등에서 삼십여 명이 참가했다. 망월동 5.18 국립묘지에서 참배를 시작으로 일정을 이어갔다. 일련의 의식은 방송과 유튜브로 봐서 낯이 익었다. 하지만 보는 것과 의식을 갖춰 엄숙하게 참배하는 것은 그 위상이 다르다는 것을 느꼈다. '님을 위한 행진곡'에 맞춰 우리는 각자 국화 한 송이를 들고 제단까지 천천히 걸었다.

'기억은 가짓수를 늘리는 게 아니라 그 두께를 두껍게 하는 것이다.'고 한다. 나는 소설의 주인공 동호와 중학교를 같이 다니는 정대에 대한 기억의 두께가 두껍다. 그만큼 두 인물에 꽂힌 건가. 동호의 묘지에 섰다. 문재학 열사이다. 소설과 구체적인 인물이 연결되는 현장은 숙연한 아우라를 연출한다. 그와 함께 시위에 참가한 정대의 양창근 열사는 또 어떻고. 혼령이 된 그는 피눈물로 말한다.

"썩어가는 내 옆구리를 생각해./거길 관통한 총알을 생각해./처음엔 몽둥이 같았던 그것,/순식간에 뱃속을 휘젓는 불덩이가 된 그것,/그게 반대편 옆구리에 만들어놓은, 내 모든 따뜻한 피를 흘러나가게 한 구멍을 생각해./그걸 쏘아보낸 총구를 생각해./차디찬 방아쇠를 생각해./그걸 당긴 따뜻한 손가락을 생각해./나를 조준한 눈을 생각해./쏘라고 명령한 사람의 눈을 생각해."

일행은 두 열사의 히스토리에 귀를 귀울이면서 80년 5월 항쟁을 각자의 방식대로 호출한다. 이돈삼 해설사가 계엄군의 무자비한 폭행과 총격으로 수많은 시민이 다치거나 죽어나가는 과정을 다양하고 여러 층위로 설명할 때, 그가 구체적인 인물들을 말할 때, 어두운 표정으로 "세상에" "인간이 어쩌면 그럴 수 있나"라고 탄식이 터져나왔다. 첫 사망자 김경철, '꼬마 상주'의 아버지 조사천, 전남대 부근에서 퇴근하는 교사 남편을 골목으로 마중 나갔다가 사망한 임산부 최미애 등의 사연들이 무등산만큼 크고 많다.

구도심 양림동에 꽂혔다. 재개발로 헐려나가는 것을 마을 주민들이 막았다. 그 뒤로 골목 골목을 문화와 예술이라는 무늬를 입히고 가꿨다. 예쁜 카페와 공방 등 다양한 업종의 가게들이 오종종 모여 있다. 오래되고 퇴락한 동네를 어떻게 개발·유지하는 게 합리적인지 전국적인 으뜸 샘플이다.

10년전부터 소문이 나 관광객이 몰려 인기 여행지가 됐다고 한다. 하지만 양림동이 핫플이 된 이 세속을 씁쓸하게 보는 이도 있다. 문화는 잉여에서 출몰하는 '파생상품'이다. 상징자본과 화폐, 에너지를 탕진할 각오만 돼 있으면 아낌없이 문화는 생성된다. 광산에서 태어나 지금까지 광주에 살고 있는 김형중 문학평론가 말이다. 염세적이고 삐뚜름한 태도가 마음에 든다.

"양림동은 낙후되었다는 바로 그 이유로 몇 년 전부터는 사람들이 많이 찾아오는 광주의 명소가 된다. 왜냐하면 우리 시대에는 향수와 가난도 상품이 되기 때문이다." (김형중 '평론가 K는 광주에서만 살았다' 중)

만약 제주에서 광주로 이사한다면 나는 양림동으로 오지 싶다. 대구 경북, 부산 영남은 오랫동안 보수 지역이다. 선거 때마다 보수와 진보, 보수와 중도로 이념이 극명하게 갈라진다. 거의 치유할 수 없을 정도로 심각하게 양극화이다. 이걸 방치하면 안된다. 그렇지 않으면 지난해 12.3 쿠데타처럼 제2의 윤석열이 나오지 말란 보장이 없다. 그 토양은 극우다. 해당 온실은 영남, 특히 대구, 경북이다. 윤석열 같은 괴물이 다시 나오지 않게 하려면 민주시민 교육이 절실하다. 또한 영남 사람들과 꾸준히 대화하고 교류하는 길 밖에 없다. '시간은 진리의 딸'인 것처럼 긴 시간을 두고 천천히 밀도 있게 추진하는 게 순리다.

경상도 사람은 호남 지방 가는 걸 그다지 선호하지 않는 경향이 있다. 세속이 예전보다 덜하지만 영호남 갈등이 아직도 질기게 진행형이어서 난감하다. 하여, 영호남인 들이 서로 왕래를 자주 하면 좋겠다. 특히 경상도 사람들이 의식적으로라도 광주, 전라도로 여행 가서 다크투어를 경험했으면 한다. 하다못해 미식의 도시 광주의 맛집만 다니는 것도 괜찮다. 이번 투어를 통해 이걸 절감했다.

사람은 만나고 방문하면 자연스럽게 오해가 풀리고 이해하려는 마음이 생긴다. 정치인과 행정가, 교육기관과 시민단체가 문제 의식을 가지고 분발할 필요가 있다. 가급적이면 청소년들부터 소규모 단위로 광주로 여행 보내 5.18 현대사 현장을 다녀보고 음식과 풍경 등 남도 문화의 정수를 경험할 수 있게 프로그램이 진행되길 바란다. 그게 5.18 민주열사에 대한 예의고 한강의 '소년이 온다'의 정신 아니겠는가.

우리 영호남은 만나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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