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어머니 저는 벌써 비파나무 그늘에 와있는 걸요"

@조정 시인 입력 2025.12.14. 18:57
조정.시인 뮤지컬 '그라시재라' 원작자

"어머니 저는 벌써 비파나무 그늘에 와있는 걸요."

- '소년이 온다'와 동행하며 광주를 만나다

5.18이 한국문학의 선두에 서서 세계인과 만나던 날, 놀랍고 감격스러웠다.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로 한강이 호명되었고, 광주가 세계문학의 배후림에 편입되었다. 우리는 인류사의 서고에 '소년이 온다'가 소장되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그리고 박수를 보냈다. 한강에게, 동호와 정대에게, 5월 어머니들에게, 수없이 되새겼던 '용서하지 말자'는 다짐에게, 죽은 사람은 참혹했고 살아남은 사람은 모욕스러웠던 날들에게.

벌써 1년이 지나, 노벨문학상 수상 1주년 기념 '소년이 온다' 문학기행에 참여할 기회가 주어졌다. 주인공 동호의 궤적을 좇아 '광주를 만나는' 행사였다. 5.18 유적지, 광주의 문화적 특성을 보여줄 장소들, 박구용 교수(전남대 철학과) 특강까지 꾹꾹 눌러 담은 시간표에서 주최 측인 광주시의 정성과 고심이 느껴졌다.

"여기가 동호의 실존인물인 문재학의 묘입니다."

이돈삼 해설사의 안내로 묘역 참배는 시작되었다. 한강 작가는 소년이 온다를 쓰기 전에 눈 덮인 묘를 찾아와 옷 젖는 줄 모르고 앉아있었다고 한다. 소설 속 동호의 친구이자 유령 화자인 정대(실존인물 양창근)의 묘도 가까이에 있었다.

길에 앉아있던 중학생, 집 앞에서 남편을 기다리던 아내, 총을 맞고 젖가슴을 잘린 여성, 헤엄치다가 조준 사격을 당한 중학생, 세 명이 사망한 가족, 보상금으로 장학금을 조성한 분 들이 우리에게 침묵의 인사를 건넸다.

2묘역에서는 송기숙 선생의 묘비를 발견하고 잠시 걸음을 멈추었다. "기억하고 후회하는 것이 인간을 인간답게 하는 조건"이라고 베트남 시인 탄타오는 말했다. 5.18 이후 광주. 전남 작가들은 빚진 자들이 되었다. 광주의 진실을 기억하라며, 일수 갚듯 시를 쓰고 소설을 쓰며 한강에 이르렀다. 그 작가들의 큰형님이 송기숙 선생이었다.

때죽나무 심긴 오솔길을 걸어 접어든 구묘역에서는 박관현, 이한열 열사, 백남기, 정광훈 선생, 김남주 시인 등이 우리를 맞아주었다.

잘 사셨는가?/묏등 속 그대가 외려 안부 물으시니/답은 못 합니다/듣기만 해도 인사라고 꽃종소리 명랑합니다

오월 바람은/피 바랜/투명

총 맞은 옆구리 찡그리며/꿈에 보인 날은/애통이 발끝까지 흥건합니다

(졸시 '때죽꽃' 일부)

묘역을 나와 찾아간 환벽당은 가을의 깊이가 은은했다. 송강 정철의 장인 김윤제가 세운 정자다. 계엄군의 위력으로 호남 사족 1천여명을 죽였던 정철을 왕명에 충실한 관리였을 뿐이라고 두둔할 수 있을까? 과문하여 그가 인명 피해를 줄이려 노력했다는 자취를 듣지 못 했다. 가사문학의 정점을 이룬 송강의 씁쓸한 이면과 별개로 풍광은 죄 없이 아름다웠다.

저녁시간 특강 후에는 문재학(동호)의 어머니 김길자여사를 만났다.

"해 지기 전에 와라이. 다 같이 저녁밥 묵게." 라던 어머니의 마지막 통화를 독자들은 기억한다. 노벨문학상 발표 직후 그분은 말했다.

"저는 광주상고 1학년 문재학이, 도청에서 27일 새벽에 사망한 문재학이 엄마 김길자입니다. 우리가 그렇게 발로 뛰었지마는 5.18을 국내에도 다 못 알렸는데 책 한 권으로 세계에 알려주시니 너무나 감사합니다."

둘째 날은 종일 걸었다. 동호가 시신 수습을 돕던 상무관을 비롯해 적십자병원, 금남로, 양림동 오월 어머니집, 도청, 전일빌딩, 아시아문화의전당, 오월밥집, 5.18기록관, 광주 YWCA, 광주 MBC 터, 비움박물관을 세심한 해설을 따라 살펴보았다. 진압과 항쟁을 보여주는 모든 기록이 아침 일찍 찾아갔던 『오월 어머니집』과 겹쳤다.

5.18기념사업회가 발간한 오월총서 1권에는 '소만'이라는 시가 실려 있다. 오월의 비파 열매를 보며 행방불명된 아들을 그리워하는 어머니의 독백이다.

아아, 길에는 혀 붉은 개가 나올 시간이다/달리는 차에 새끼를 잃은 개는 달리는 차를 붙들지 못 하고/날마다 길을 핥아/제 신음을 적시러 온단다

(중략)

어디로 가야 너를 찾으끄나

소만은 5월 21일, 계엄군이 집단 발포했던 날, 시민들이 자위권을 발동해 무장 항쟁을 결의한 날이다. 시의 첫 줄에서 아들은 말한다.

'어머니, 저는 벌써 비파나무 그늘에 와있는 걸요.'

그렇다. 소년들은 와 있다. 스스로 자위권을 발동한 순간부터 와있었다. 도청을 사수하겠다고 죽음 안으로 걸어 들어간 순간에 이미 와있었다. 민주주의의 빛으로. 시민의 이름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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