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2월 10일은 세계인권선언 기념일이다. 유엔이 'Humanrights Day, 인권의 날'로 지정한 날이다. 대한민국에서는 국가인권위원회가 정부 차원의 공식 기념식을 주관한다. 하지만 기분 좋게 축하한 적이 그리 많지 않다. 인권 현실이 늘 위태롭고 고단했기 때문이다. 1년 전 기념식은 12.3 비상계엄 직후여서 더 엄혹했다. 위헌적 내란 사태에 침묵한 인권위에 인권활동가들은 분노했다. 인권위원장의 행사장 진입을 몸으로 막아서며 항의했다.
헌법재판소가 위헌으로 결정한 사건에 대해 헌법재판관 출신 인권위원장의 말은 불명확하다. 이른바 '내란수괴 윤석열 방어권' 안건을 밀어붙일 때와 다른 모습이다. 그는 세계인권선언 기념사의 주요 문구를 직접 삭제하며 위헌과 인권침해란 말을 쓰지 말라고 했다. 인권위 직원들이 실명을 걸고 '안창호 사퇴'를 요구하는 상황임에도 "일부의 견해"라며 모르쇠로 버틴다. 비상계엄 1주년이 되도록 사과 한마디 없다.
안창호의 몽니로 인권위는 벼랑에 섰다. 과거 인권위가 탄압받던 시절엔 인권활동가들이 함께 싸웠으나 지금은 다르다. 이참에 '무늬만 독립기구'로 전락한 인권위를 전면 쇄신하자는 목소리가 크다. 국회엔 이미 현직 인권위원들의 임기 종료를 전제로 한 인권위법 개정안까지 발의돼 있다. 사면초가 국면에서 안창호 위원장은 일부 보수성향 종교인들과 극우 세력의 지원을 기다리는 듯하다.
놀랍게도 '내란공범' 인권위원장은 5.18에 강한 의지를 보였다. 과거 전두환 정권에서 가장 처절하게 희생되었던 광주를 향해 그는 "내가 5월 어머니들을 잘 알고 기념식도 여러 번 갔다"고 말했다. 아마도 광주에서 검사장을 지내며 영감 소리 듣던 시절을 회상하는 모양이다. 그 순간 영화 에 등장하는 주인공 최익현(최민식 분)의 경찰서 소란 장면이 떠올랐다. 인권위원장에 취임하지 않았더라면 과거의 인연으로 좋은 관계를 유지했을지도 모른다.
2025년 5월 광주는 안창호가 범접할 곳이 아니었다. 광주시민들은 한덕수 전 총리를 비롯한 일체의 내란공범을 단호히 거부했다. 그보다 앞서 제15회 광주세계인권도시포럼의 공동주최 기관에서 인권위는 불명예스럽게 빠졌다. 다수의 포럼 기획위원들은 공식회의에서 안창호의 방문과 축사를 거부한다고 밝혔다. 인권위 설립 멤버였던 포럼 기획위원장은 "인권위 행태에 모욕을 느낀다. 안창호가 오면 내가 불참하겠다."고 선언했다.
그럼에도 안창호는 광주로 내려왔다. 그는 전직 위원장들처럼 17일 밤 금남로 전야제를 지켜볼 수 없었다. 시민단체와 5.18단체가 연이어 물리적 저지를 언급하자, 경찰에 신변보호까지 요청하고 망월동 묘지로 향했다. 5.18 기념식에 경찰을 대동하고 참석한 최초의 정무직 기관장이 탄생한 순간이었다. 민주의 문 앞에 드러누운 인권활동가들, 검색대 앞에서 "당장 돌아가라"고 소리친 시민들, 그리고 기념식장 의자에 붙은 '안창호' 이름표를 떼낸 5월 어머니들! 그런 역대급 참사를 겪고도 그는 얼굴에 미소를 띄우며 행사장을 빠져나갔다.
이쯤에서 안창호의 역사관에 의문이 생긴다. 그는 5.18보다 한달 앞서 열린 제주4.3추념식에 불참했다. 4.3추념식은 직전 인권위원장이 꼬박꼬박 참석하던 정부의 공식 행사였다. 제주 4.3은 보수정권에서 재단과 평화공원을 만들었던 화해와 상생의 본보기이기도 하다. 내란수괴 윤석열조차 2022년 당선인 신분으로 제주를 찾았다. 그럼에도 안창호는 "역사관이 다르다"는 등의 이유로 주변의 권유를 물리쳤다. 국가폭력에 대한 편향된 인식이자 인권위원장에게 어울리지 않는 태도다.
안창호는 지독한 차별주의자다. 성소수자에 대해 차마 입에 담기 힘든 혐오 발언을 쏟아냈다. 인권위는 코로나 팬데믹 이후 퀴어문화축제에 꾸준히 참가했으나 2025년엔 안창호의 반대로 공식 부스를 차리지 못했다. 우여곡절 끝에 인권위 직원들이 자체적으로 축제에 참여했으나, 행사장을 직접 찾아 성소수자 부모의 의견을 듣던 전직 위원장의 행보와 대비된다.
11월 마지막 주말 금남로에서 제4회 광주퀴어문화축제가 열렸다. 그날 광주인권사무소 부스엔 많은 시민들이 찾아와 무등산이 그려진 대형 판넬을 무지개 빛깔로 물들였다. 광주인권사무소가 진행한 혐오 차별 캠페인에 동참한 시민들은 인권위가 처한 현실을 염려하며 '정상화'를 당부했다. 시민들의 눈에 비친 정상화의 요체는 '안창호 사퇴'임이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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