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실용적 관점에서 국립현대미술관 분관 유치

@노희용 광주문화재단 대표이사 입력 2025.07.08. 14:12
광주문화재단 대표이사 노희용

바야흐로 실용의 시대가 왔다. 다시 한번 묻는다. 국립현대미술관(MMCA)의 분관은 어디에 들어서야 하는가? 단순히 예향이라 불렸던 과거의 이름값으로 결정할 일이 아니다. 정치적으로 배려할 일도 아니다. 냉정하게 따져서 실용성과 효과를 기준으로 물어보자. 오늘날 국가의 문화 분야 투자는 감동보다 성과, 상징보다 회수가 중요하다. 그렇다면, 광주는 유치할 자격이 있는가? 감당할 역량은 있는가? 그리고 정말로 살아서 움직일 수 있는가?

첫째, 광주 말고도 이미 유치 요건을 갖춘 도시는 많다. 모두들 단지 예술을 사랑하는 수준을 뛰어넘어, 문화예술을 중심으로 한 정책 구조를 구축해온 지역들이다. 그렇다면 광주만의 특색은 뭔가? 국립아시아문화전당(ACC), 광주비엔날레, 그리고 문화중심도시정책까지 모든 것이 어우러져 있다. 광주는 현대미술, 전시, 교육, 창작, 시민문화향유를 아우르는 전방위적 인프라를 보유하고 있다. 단일 전시관이 아닌, 다층적 문화 생태계가 작동하고 있는 것이다. 이 점에서 광주는 '빈 땅에 새로 짓는 분관'이 아니라, '이미 작동 중인 문화 틀 안에 새로운 기능을 추가하는 분관'이다.

둘째, 유치 이후 감당할 재정적 능력과 행정 의지가 충분하다. 광주의 문화예산은 2023 지역문화실태조사 기준 약 2,114억 원이다. 이는 총예산 대비 3%로 전국 지자체 중 1위다. 특히 국립아시아문화전당 관련 인력은 총 6백여명이나 된다. 광주비엔날레재단, 광주문화재단, 광주디자인진흥원 등에 2백여명과 광주시립미술관과 국립광주박물관의 학예인력이 있어서 이미 문화예술 조직과 전문 인력이 존재한다. 이들의 기능 분담과 연계를 통해 새로운 미술관을 부담 없이 흡수할 수 있다.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문화정책의 일관성이다. 광주는 20년 이상 문화중심도시 전략을 유지해왔고, 시민들도 이를 체화해왔다. 단지 시설을 짓는 것이 아니라, 운영할 철학과 시스템을 갖추고 있다는 점이 타 도시와의 차별점이다.

셋째, 활성화 가능성과 효과 측면에서 광주는 '그 어디에도 없는 결과'를 만들어낼 수 있다. 수장고 기능으로 특화한 청주관(2018년), 대전관(2027년 예정)과는 다르게 전시‧연구‧교육‧아카이브 등의 기능을 강화하면 국립현대미술관의 외연을 확장할 수 있다. 광주는 ACC, 비엔날레, 디자인비엔날레, 문화중심도시 정책과 유기적으로 작동하며 승수효과가 나타날 것이다. 2024년 방문객은 국립아시아문화전당 320만명, 광주시립미술관 13만명, 광주국제미술전람회 2만5천명, 광주비엔날레 70만명으로 대략 400만 명 이상이다. 이중 절반이 광주관을 방문한다면 서울관 방문객 수 200만 명에 버금간다. 여기에 지역 대표 문화시설들과 연계하여 창‧제작한 전시와 프로젝트가 가동된다면 문화관광객 방문으로 인한 파생 효과는 더욱 커질 것이다.

이러한 수치는 결코 과장이 아니다. 광주는 '아시아문화중심도시조성사업' 일환으로 2004년부터 작년까지 문화적 도시환경 조성 등 3개 과제에 4천억 원, ACC 건립 및 운영에 1조 7천억 원의 국비가 투입되며 조성사업을 추진 중이지만, 콘텐츠 생산과 활용 구조의 한계로 투자 회수가 정체돼 있다. 국립현대미술관 분관이 들어선다면 ACC와 기능을 분담하고, 콘텐츠와 기술을 공유하며, 국가 문화정책의 회수구조를 완성할 수 있다. 또한 광주비엔날레는 세계 5대 비엔날레로 평가받지만, 전시 기간 외에는 유휴 공간이나 다름없다. 국립현대미술관 분관은 비엔날레의 동시대 미술 전시를 상시화하고, 축제를 플랫폼으로 전환하는 기제가 된다. 마지막으로 문화중심도시 전략은 시민문화·생활문화·교육문화로 이어지는 구조를 이미 갖추고 있으며, 분관은 이 회로를 완성시키는 마지막 고리다.

물론 강점만 있는 것은 아니다. 광주는 오히려 지금이 분관 유치의 마지막 기회일 수 있다. ACC는 오랫동안 지역사회와의 관계 정립에 실패한 경험이 있다. 초기에 시민과의 소통 부족, 기관 간 역할 혼선, 예술가 생태계와의 거리감 등은 광주의 구조적 한계였다. 비엔날레 역시 세계적인 브랜드임에도 불구하고 지역작가들과의 연계, 상시 운영 전략 부족 등으로 인해 '외국 손님만을 위한 행사'라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 문화중심도시 정책 또한 시민 참여에 기반을 두었으나, 장기적 관점에서 유연한 정책 혁신이 더뎠다는 평가도 존재한다.

그러나 바로 그렇기에 MMCA 분관 유치는 전환점이 될 수 있다. 광주의 문화거버넌스는 지금 세대교체와 재설계 과정을 지나고 있으며, 문화재단 중심으로 정책 통합과 실행력이 높아지고 있다. ACC는 이제 시민 플랫폼으로 재기획 중이고, 비엔날레도 지역작가 참여 비중을 확대하고 있다. MMCA 분관이 이 가운데 들어온다면, 분관은 '또 하나의 건축물'에 불과한 게 아니라, '새로운 문화를 만드는 연결고리'가 될 것이다.

정리하자면 이렇다. 광주는 유치 요건을 갖췄고, 감당할 능력도 있으며, 무엇보다 지어놓기만 해도 '자동으로 작동하는' 도시다. 다른 도시에 분관을 세우면, 그냥 그럴싸한 미술관 하나가 생길 뿐이다. 하지만 광주에 분관이 생기면, 그 미술관은 스스로 살아 움직인다. 문화는 이제 투자다. 투자에는 회수가 필요하다. 회수에는 조건이 있다. 국립현대미술관 분관이 가장 실용적으로, 가장 전략적으로 작동할 수 있는 도시, 그 조건을 모두 갖춘 그곳으로 가야 한다. 그곳이 바로 광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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