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엊그제가 봄인 줄 알았는데, 어느새 여름의 문턱을 넘었다. 농촌 현장은 본격적인 영농철로 부산하고, 이맘때면 중국에서 편서풍을 타고 날아드는 멸구류 등 병해충의 활동도 시작된다. 최근에는 이들 병해충의 출현 시기와 발생 밀도가 과거와는 달리 예측하기 어려울 정도로 변화하고 있다. 이는 기후변화로 인해 병해충 발생 양상이 급격히 달라졌기 때문이다. 이러한 변화는 농업 생산성과 식량 안보에 심각한 위협으로 작용하고 있다. 실제로 지난해 전남도와 전북도 벼 재배 농가에 큰 피해를 입힌 벼멸구, 그리고 경기지역에서 발생하여 남부지역으로 확산되고 있는 과수화상병이 그 대표적인 사례다.
병해충 발생은 기온, 습도, 강우 등 기상 요소와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 기온이 상승하면 곤충의 번식률과 생존율이 증가하고, 발육 속도와 세대수도 빨라진다. 세균성 병해는 30도 이상에서, 곰팡이병은 20~30도 이하에서 활발하게 나타나며, 높은 습도는 병원균 침입과 해충 알의 부화를 촉진한다.
또한, 비바람은 병해충의 전파에 중요한 매개 역할을 한다. 해충은 날개로 스스로 이동할 수 있는 거리는 제한적이지만 멸구류, 멸강나방 등은 바람의 도움으로 서해 바다를 건널 수 있을 정도로 장거리를 비행할 수 있다. 병원균도 스스로 이동 능력은 없지만 비바람을 통해 먼 곳까지 전파될 수 있다.
실제로 지난해 전남과 전북지역의 벼 재배 농가에 큰 피해를 입힌 벼멸구는 이러한 기후변화의 영향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다.
벼멸구는 여름철 고온이 9월 중순까지 이어지면서 3세대까지 번식해 벼를 무차별적으로 가해했고, 피해 면적은 전남·전북, 경남, 충남을 중심으로 무려 3만4천140㏊에 달했다. 이는 쌀 생산량 감소로 직결됐다. 다행히 전남도의 노력으로 정부가 농업재해로 인정해 피해 벼 전량을 매입하고 복구비를 지원하는 조치가 이루어졌다.
기후변화는 기존 병해충의 피해를 심화시킬 뿐만 아니라 새로운 병해충의 유입에도 영향을 미친다. 기온 상승으로 농작물의 재배 적지가 점차 북상하면서, 전남 지역에서도 감귤, 천혜향, 레몬 같은 만감류 재배가 가능해지고 있다. 또한 망고, 바나나, 커피 등 아열대 작물의 재배 면적이 늘어나면서, 이와 관련된 병해충 발생 가능성도 커지고 있다.
이러한 변화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기존의 대응체계를 넘어서는 선제적이고 과학적인 전략이 필요하다. 첫째, 인공지능과 빅데이터 기반 병해충 예찰 시스템 구축이 필요하다. 기상변동 상황, 인접 국가를 포함한 병해충 발생 상황, 작물과 병해충 기주식물의 분포 등의 데이터를 연계한 예측 모델을 개발하고, 시군과 연계한 실시간 현장 정보 수집 체계를 강화해야 한다.
둘째, 아열대 작물 확대에 대응한 신종 병해충 감시 및 방제 기술 개발이 시급하다. 새로운 작물과 병해충의 생태를 정밀 분석하고, 국내 유입 가능성이 높은 외래 병해충에 대한 사전 조사 및 격리 대응 체계를 마련해야 한다. 셋째, 산·학·관·연 공동 연구 및 대응 네트워크 구축이 중요하다. 단일 기관 차원을 넘어 대학, 연구기관, 민간기업, 지자체와의 협력을 통해 기술 개발과 현장 적용의 속도와 폭을 넓혀야 한다. 마지막으로, 농가 중심의 현장 적용성과 강화를 목표로, 맞춤형 방제기술 보급과 교육, 스마트 농업기술과의 융합 확대 등 실질적인 피해 예방 효과를 높이는 노력이 요구된다.
전남농업기술원은 이러한 과제를 기반으로 병해충 대응을 넘어 기후위기 속 지속 가능한 농업 실현에 핵심 역할을 해야 할 것이다.
기후변화는 단순히 날씨만 바꾸는 것이 아니라 병해충 발생 생태계 전반을 뒤흔들고 있으며, 이는 곧 식량 안보에도 심각한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병해충 대응은 더 이상 선택이 아닌 생존을 위한 필수 과제가 됐다. 과학적 연구와 기술개발, 정책적 뒷받침, 그리고 현장의 농가와 전문가의 긴밀한 협력이 함께 이루어져야만 이 새로운 위기를 극복할 수 있다. 기후위기 시대, 병해충 대응은 농업 생존의 열쇠다. 지금이야말로 과학적 대응과 사회적 연대가 절실한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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