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개표가 조작되었다면, 10만 명이 침묵했을까?

@오경진 전남선거관리위원회 공보계장 입력 2025.05.28. 17:41
오경진 전남선거관리위원회 공보계장
오경진 전남선거관리위원회 공보계장.

선거철마다 반복되는 개표조작 의혹 중 하나가 "투표지분류기에 해킹 프로그램을 심어 결과를 바꿀 수 있다"는 주장이다. 이는 선거 시스템과 장비에 대한 기술적 이해 부족에서 비롯된 오해이자, 사실에 기반하지 않은 음모론에 가깝다. 한국의 개표 시스템은 기술적·제도적으로 조작이 불가능한 구조를 갖고 있으며, 아래와 같은 이유로 그러한 주장은 성립할 수 없다.

투표지분류기는 통신이 불가능한 오프라인 장비이다. 가장 먼저 짚어야 할 점은 해킹이 일어나기 위한 조건이다. 해킹은 기본적으로 외부와의 통신 연결이 있어야 가능하며, 이를 위해서는 장비에 랜카드(네트워크 연결 장치)가 탑재되어 있어야 한다. 그러나 투표지분류기에는 랜카드가 아예 설치되어 있지 않으며, 와이파이, 블루투스 등 그 어떤 통신 기능도 갖추고 있지 않다. 이 장비는 인터넷은 물론 외부 장비와도 전혀 연결되지 않는 완전한 오프라인 장비다. 즉, 물리적으로 외부 해킹이 원천적으로 불가능한 구조인 것이다.

또한 분류기의 역할은 단순한 기계적 분류 보조일 뿐이다. 투표지분류기는 흔히 '전자개표기'로 오해되지만, 실제로는 개표기능이 아닌 분류기능만 수행하는 장비다. 유권자가 기표한 투표지를 자동으로 후보자별로 나눠주는 보조장치일 뿐이며, 투표 결과를 결정하거나 저장하는 기능은 전혀 없다. 더욱 중요한 점은, 기계가 분류한 뒤 최종 검표는 사람의 손으로 이뤄진다는 사실이다. 일차적으로 분류가 끝나면 심사집계부에서 개표사무원들이 해당 묶음을 다시 육안으로 확인하며 손으로 일일이 확인하는 수검표를 하고 있다.

아울러 우리나라의 개표 시스템은 선거관리위원회가 단독으로 운영하지 않는다. 개표소에는 10만명이 넘는 개표사무원이 투입되며, 이들은 대부분 지방자치단체 소속 공무원, 교사, 일반 시민으로 구성된다. 이들은 각자의 정치적 성향이 다르고, 개표 현장에서는 각 정당 및 후보자의 참관인도 함께 참여한다. 이처럼 정치적 배경과 소속이 다양한 수많은 사람들이 동시에 공모하여 결과를 조작한다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일이다. 한두 명이 아닌 수만 명의 시민이 모두 조작에 가담하거나 이를 묵인해야만 가능하다는 전제는 설득력을 가질 수 없다.

우리나라 선거의 강점은 모든 결과가 실물 투표지에 근거한다는 점이다. 투표지는 개표 종료 후에도 일정 기간 보관되며, 필요시 재검표가 가능하다. 실제로 지난 몇 차례 선거에서도 조작 의혹이 제기되어 일부 지역에서 법원의 결정으로 재검표가 실시된 바 있으나, 단 한 건의 조작 사례도 확인된 바 없다.

민주주의에 필요한 것은 감시이지, 음모론이 아니다. 건강한 민주주의는 선거에 대한 감시와 검증을 필요로 한다. 그러나 그 과정은 사실에 기반해야 하며, 기술과 제도의 구조를 무시한 주장은 결과적으로 선거 불복과 사회적 분열을 정당화하는 도구로 전락할 수 있다. 통신이 차단된 오프라인 장비, 정치적으로 다양한 수만 명의 개표 인력, 재검표를 통한 검증 가능성 등 모든 측면에서 볼 때, 한국의 개표 시스템은 조작이 불가능한 구조이다. 따라서 투표지분류기 해킹으로 선거를 조작할 수 있다는 주장은 사실이 아니며, 국민들은 이러한 음모론에 휘둘리기보다 선거 시스템의 신뢰성과 그 운영 방식에 대해 정확히 이해할 필요가 있다. 정확한 정보위에 서 있을 때, 우리는 더 건강한 민주주의를 지킬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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