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스포츠 위에 세운 기억-5·18 민주광장과 양궁의 만남

@이연 세계양궁대회조직위 사무처장 입력 2025.05.27. 17:39
이연 세계양궁대회조직위 사무처장

올해 9월, 세계인의 시선이 광주로 향한다. 세계양궁선수권대회와 세계장애인양궁선수권대회의 결승전이 5·18 민주광장에서 열리기 때문이다. 국제 스포츠 대회의 결승을 도시의 심장부, 그것도 한국 현대사의 가장 아픈 기억이 깃든 장소에서 개최하는 일은 극히 이례적이다. 그리고 그 이례성은 광주라는 도시의 정체성에서 비롯된다.

1980년 5월, 이곳은 자유를 외치던 시민들이 계엄군의 총칼 앞에 목숨을 잃은 비극의 공간이었다. 민주주의의 뿌리는 피로 자라났고, 광주는 '잊지 않음'의 상징이 되었다. 이후 이 도시는 단지 과거를 기념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이를 현재와 세계로 확장하는 도시가 되기 위해 힘써왔다. UN과 공동으로 매년 '세계인권도시포럼'을 개최하고, '광주인권헌장'을 제정하며, 인권도시로서의 위상을 국제적으로 다져온 것이 그 노력의 일환이다.

하지만 스포츠를 통한 도시 마케팅 측면에서는 아쉬움도 컸다. 2015년 하계유니버시아드, 2019년 세계수영선수권대회 등 대형 국제 스포츠 이벤트를 개최했지만, 막대한 예산과 에너지에도 불구하고 대회 이후 광주는 금세 대중의 기억에서 멀어졌다. 대회는 있었지만, 도시는 남지 않았다. 서사 없는 이벤트는 오래 기억되지 않는다.

이번 양궁대회는 다르다. 단순히 '경기'를 여는 것이 아니라, '기억' 위에 쌓는 이벤트다. 양궁의 고요하고 정적인 집중력은, 침묵 속에서 진실을 지켜온 광주의 역사성과 닮았다. 그 화살은 과녁을 향해 날아가지만, 동시에 진실과 존엄, 인권이라는 보이지 않는 가치들을 향해 날아간다.

특히 이번 대회의 결승전 장소는 **노벨문학상 수상작가 한강의 소설 『소년이 온다』**와 연결된다. 이 작품은 5·18 당시 시민군이 시신을 안치하고, 살아남은 이들이 애도하며 저항하던 공간으로 구 전남도청을 묘사한다. 이 책을 읽은 세계의 수많은 독자가 그 현장을 직접 보고 싶어 할 것이다. 이번 양궁대회는 그 문학적 공간을 현실 속 무대로 확장시키는 순간이기도 하다.

광주는 이번 대회를 통해 과거를 현재로 이어주고, 진실을 문화로 승화시키는 도시로 거듭날 것이다. 이제는 단기적 이벤트에 의존하기보다는, 도시의 정체성과 메시지를 전하는 지속 가능한 마케팅이 필요하다. 스포츠와 역사, 문화와 문학이 결합 된 이번 대회는 그 좋은 본보기가 될 것이다.

기억은 가만히 남아 있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이어져야 살아 있다. 광주는 이번 양궁대회를 통해 그 기억을 화살 위에 얹어 세계를 향해 날리려 한다. 그리고 우리는 묻는다.

"기억하지 않는 미래에 진정한 발전은 있는가?"

민주광장의 하늘 아래, 고요한 화살 하나가 오늘도 '평화의 울림'이 되어 진실을 향해 날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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