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민주주의를, 광주정신을 지켜주시어 감사합니다

@황광우 작가 인문연구원 동고송 상임이사 입력 2025.04.07. 13:30
황광우(작가·인문연구원 동고송 상임이사)



"반국가세력들이 곳곳에서 암약하고 있다." 어쩌다 텔레비전을 켰는데 '용산'이 이렇게 발언하고 있었다. 그의 모습이 섬찟했다. 박정희와 전두환은 걸핏하면 우리를 '반국가세력'이라 하여 감옥에 집어넣지 않았던가?

심상치 않았다. 1980년 5월 18일의 기습이 눈에 아른거렸다. 계엄령을 발동하여 군대를 풀어놓는 것은 간단하다. 북한을 향해 총 한 방 쏘면 끝이 난다. "국민 여러분, 오늘 휴전선에서 북한이 우리를 향해 발포하였습니다." 이 한 마디만 보도하면, 계엄령은 정당화된다.

한가위를 앞둔 며칠 전, 그러니까 2024년 9월 13일, 나는 오마이뉴스에 계엄령을 예고하는 글을 썼다. "모든 계엄은 반란이다. 1980년 5월 광주시민들에게 총질을 가한 이들은 국군이었다. 역사는 반복된다."

아니나 다를까 12월 3일 밤 윤석렬은 계엄을 포고하였다. "국회와 정당의 활동을 금한다"면서 독재로 돌아가겠음을 뻔뻔하게 선포하였다. 자유민주주의를 부정한 자가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부정하는 일체의 행위를 금한다"는 해괴한 궤변을 늘어놓았다. "언론과 출판은 계엄사의 통제를 받는다." 따따부따, 왈가왈부하지 말라는 것이다. 이후 대한민국의 시계는 정지하였다.

내가 정말 놀랐던 것은 감옥에 갇힌 자가 성큼성큼 제 발로 걸어 나오는 것이었다. 3월 8일 구치소를 나오는 '그 자'를 보면서 나는 심장이 덜컹했다. 그것은 영웅적인 쇼생크 탈출이 아니었다. 검찰 수뇌부와 공모한 비열한 '탈옥'이었다.

생사람의 흠을 잡아 감옥에 쳐집어넣는 것을 업으로 삼아온 '그 자'가 지금 벼랑으로 내몰리고 있다. 무슨 짓을 못하겠는가? 온갖 간계를 동원하여 남편을 대통령의 자리에 앉힌 '그 녀'가 이제 남편과 함께 공모할 수 있게 되었으니 못할 일이 뭐가 있겠는가?

한덕수는 끝까지 마은혁 판사를 헌법재판관으로 임명하지 않았다. "누구도 성별, 종교, 또는 사회적 신분에 따라 차별받지 않는다."는 헌법의 기본도 한덕수는 모르는 자였다. 최상목도 마찬가지였다. 마은혁 판사를 임명하라는 결정을 거부하였다. "왜 저러지. 혹시 5 대3으로 갈린 것은 아닌가?"

답답하여 서울에 갔다. 3월 18일, 나는 헌법재판소 앞 천막에서 권영길 대표를 만났다. 천막에서 밤을 지새우는 바람에 큰 고생을 했다고 한다. 그 나이에 말이다. 30년 전 우리가 악수할 때는 젊었으나, 지금은 머리털이 새하얀 백발의 노년이 되었다. 오랜만에 만나 점심을 먹으려고 했는데, 느닷없이 비상 소집령이 떨어졌다.

어떤 상황에서도 여유가 있던 분이었다. 늘 미소를 지으며 낙관적이었던 선배였다. 그런데 이날처럼 얼굴에 검은빛이 역력하던 때는 처음 보았다. "황 동지, 이거 어쩌지? 사태가 심상치 않네." 그렇게 우리는 헤어졌다. 나는 이날의 일을 아무에게도 발설하지 않았다. 비관은 전염되기 때문이다. 이후 세간에 떠도는 유명 인사들의 낙관적 발언들에 대해 나는 고개를 절래절래 흔들었다. 무슨 짓을 못할까? 나는 '그 자'가 되어, 상황을 타개하는 비법을 연구해 보았다. 헌재의 벽을 무너뜨리는 탈법 행위는 도처에 깔려 있었다.

"절망적인 상황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문구를 나는 좋아한다. 젊은 시절 그 굳건한 독재의 철옹성에 머리를 박으며 싸우면서도 "우리 승리하리라"는 노래를 즐거이 불렀다. 전두환의 총칼 앞에 우리 광주시민은 무릎을 꿇지 않았다. 어떤 폭압의 상황에서도 우리는 굽힘 없이 살아왔다. 늘 가슴엔 희망이 있었다.

이번은 달랐다. 소추를 기각할 경우, 상상조차 하지 싫은 그 역겨운 상황이 현실이 되었을 경우, 나는 무엇을 할 것인가? 헌재의 결정을 부정할 수는 없다. 그렇다고 수용할 수도 없다. 거부할 수도 없고, 묵종할 수도 없는 블랙홀이 우리 앞에 기다리고 있었다.

그날, 오전 11시 22분을 기억할 것이다. 문형배 재판관의 선고 과정에서 연신 고개를 끄덕이는 김이수 변호사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문형배 재판관이 김이수 변호사의 글을 대폭 수용하고 있었음을 시사하는 장면이었다. 판결문을 들으면서 많이 울었다.

8인의 헌법재판님들께 감사를 드리자. 변호인으로 고생한 김이수, 이광범 변호사께 감사를 드리자. 민주주의와 광주정신을 지켜준 데 대하여 우리 모두 이분들께 감사의 뜻을 전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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