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전 5·18 기념사업 기본법 제정을 위한 토론회에서 매우 중요한 문제가 제기됐다. 국가를 ‘위한’ 희생과 국가에 ‘의한’ 희생이 구분돼야 한다는 것이었다. 우리나라의 보훈체계는 독립, 한국전쟁, 민주화 과정에서의 희생과 공헌으로 구분할 수 있다.
독립과 한국전쟁이 국가를 위한 헌신과 희생이라면 민주화 과정은 국가에 의한 희생이다. 그런 점에서 구분하는 것은 당연하다. 과거청산의 원칙 중에 국제적 보편성을 갖고 있는 원칙이 ‘반 보벤의 원칙’이다. 국가는 가해자이면서 동시에 정의실현자라는 이중적 지위에 있다는 것이 핵심이다.
국가폭력이 자행한 인권유린에 대해 국가는 그 진실을 확인하고, 피해자들에 대한 구제와 명예회복을 해야 하고, 이런 일이 재발하지 않도록 필요한 조치를 취해야 한다는 것이다. 한국의 과거사에서 제주4·3항쟁, 부마민주항쟁, 그리고 5·18민주화운동이 저마다 성격은 조금씩 다르지만 국가폭력에 의한 국민의 희생이 발생한 대표적 사건이다. 이 중에서도 5·18은 사건 발생 이후 지금까지도 진상규명과 명예회복에 대한 사회적, 제도적 노력이 지속되고 있는 대표적인 사건이다.
5·18 기념사업 기본법 제정은 국가폭력에 의한 국민인권유린의 재발을 막기 위한 국가의 의무 중에서 기억과 기념의 장치와 제도를 규율하는데 그 목적이 있어야 한다. 따라서 권고가 아닌 의무규정이어야 하고, 과거청산과 이행기 정의 실현이라는 뚜렷한 입법취지와 목적이 전제되어야 한다. 동시에 이념과 진영 대립을 강화하는 수단으로 악용되고 있는 진실의 왜곡과 폄훼를 근본적으로 차단할 수 있는 장치와 제도가 포함될 수 있어야 한다. 아울러 사회적 합의와 국민통합이라는 상투적인 과정을 넘어 사회적 공감과 이행을 이끌어내는 과정으로 추진돼야 한다.
5·18 관련 법률의 제정은 한국사회의 불행했던 과거사의 진실 확인과 그 피해자들의 명예회복 및 보상 등에 관한 국가의 의무 이행을 이끌어내는 선도적 역할을 해 왔다. 선도적으로 법률을 제정하다 보니 한계와 문제점이 항상 뒤따랐고, 법률의 개정이 불가피했다.
5·18 관련 법률은 크게 3가지로 구분된다. 피해자들의 보상과 피해자 단체의 지원에 관한 이른바 ‘보상법’이고, 피해자들의 명예회복을 위한 ‘유공자법’, 그리고 진상규명 관련 특별법이다. 이 법률들마다 제정 당시 정치적 조건과 사회적 환경 때문에 법 제정의 취지와 목적을 제대로 살릴 수 없는 한계가 있었다. 1988년 보상법은 당시 민자당에 의한 날치기 통과로 야당의 입장과 광주의 요구가 반영될 수 없었다. 2002년 유공자법 제정 당시에는 기존의 국가유공자 단체들의 극단적 반발로 정치권의 협상 과정에서 ‘피해자들의 요구’는 제한적일 수밖에 없었다. 우선 제정해놓고 나중에 개정하면서 내용을 보완해가자는 전략적 선택이 불가피한 상황이었다. 1994년과 2018년 진상규명 특별법 또한 여야 협상과 진상규명의 범위를 놓고 대립하는 과정에서 정략적 이해 때문에 역시 적잖은 한계를 가질 수밖에 없었다. 그럼에도 이 법률들은 불행했던 과거사 청산에 대한 국가의 의무와 이행을 이끌어내는 제도와 장치를 선도해 왔다는 점에서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따라서 이번 5·18 진상규명조사위원회가 국가에 권고한 ‘5·18 기념사업 기본법’ 제정 또한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특히 앞에서 언급한 정의실현자로서의 국가가 이행해야 할 지위와 역할을 규율한다는 점에서 여전히 불안한 한국사회의 이행기 정의 실현과도 연결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와 함께 토론회에서 제기된 5·18 정신을 어떻게 규정할 것인가에 대한 문제에 대해 필자는 ‘인권과 정의’여야 한다고 생각한다. 현재의 민주, 인권, 평화의 주제는 2000년 밀레니엄을 앞두고 5·18 20주년 기념행사 슬로건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충분한 토론 없이 정해졌고, 이후 여러 학술대회 등에서 다뤄지기는 했지만 결론에 이르지 못하였다. 5·18 정신을 어떻게 표현할 것인지는 5·18 정신의 헌법전문 수록이라는 문제와도 직결되기 때문에 충분한 논의와 토론이 필요하다. 필자는 국가폭력에 의한 국민의 기본권 유린이었다는 점에서 ‘인권’이어야 하고, 국가폭력의 실상과 그 책임자들을 단죄하기 위한 노력은 한국사회의 민주화운동 여정과 이행기 정의 실현의 과정과 궤를 같이 한다는 점에서 ‘정의’여야 한다고 생각한다.
마지막으로 법률의 제정도 중요하지만 광주시의 의지와 자세 또한 제정된 법률의 실행을 이끌어내기 위해 중요하다는 점을 강조하지 않을 수 없다. 광주시가 조례에 의해 5년마다 기본계획을 수립하고 있지만 수립된 기본계획을 얼마나 실행했는지 되돌아보면 한심하기 이를 데 없다. 광주시는 더이상 5·18 기념사업을 치적과 보여주기식 이벤트에서 벗어나 국가의 의무 이행을 이끌어내기 위해 보다 더 적극적으로 노력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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