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무성의한 옛 전남도청 전시콘텐츠, 원점에서 다시 논의해야

@김승원 광주전남민주화운동동지회 상임대표 입력 2025.01.16. 17:53
김승원 광주전남민주화운동동지회 상임대표

우리 사회는 지금 불행했던 과거의 역사를 제대로 청산하지 못한 대가를 혹독하게 치르고 있다. '윤석열의 내란과 외환의 범죄'는 과거 전두환 신군부 집단이 저질렀던 내란과 많이 닮았다. 5·18민주화운동의 반면교사는 시민들의 적극적인 계엄군 저지와 국회의 신속한 대응, 국회에 투입된 일부 계엄군 병사들의 소극적인 행동으로 윤석열의 내란범죄는 실패했다. 불행했던 과거의 청산과 이행기 정의 실현은 법과 제도, 그리고 유무형의 기념사업을 통한 교육으로 이루어질 수 있다. 법과 제도로 관련 책임자들을 엄단하는 사법적 정의를 실현하고, 역사적 사건의 교훈이 일상에서 실천될 수 있게 하는 교육으로 서사적 정의를 실현하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지금 진행되고 있는 '옛 전남도청 원형복원과 전시 기본계획'은 원점에서 다시 검토돼야 한다.

필자는 광주민주화운동동지회의 상임대표로서, 옛 전남도청 원형복원과 전시기본 계획의 자문위원으로서 주어진 책무와 사명감으로 여러 차례 자문회의 등을 통해 문제를 제기해 왔다. 해결방안도 함께 제시했지만 달라진 것이 없다. 옛 전남도청 원형복원과 전시를 담당하고 있는 문화체육관광부 소속 공무원들이 윤석열 정권의 눈치를 보는 것이 아닌가 의구심까지 들 정도였다.

며칠 전 원형복원 공사현장에서 화재가 발생했지만 이에 대해 그 어떤 설명도 없다. 화재가 발생한 현장은 한강 소설가의 작품 '소년이 온다' 주인공이었던 고등학생이 비무장 상태로 도청에 남아 있다가 계엄군의 총탄에 희생된 장소였다.

가장 핵심적인 문제는 전시 기본계획에 반영된 옛 전남도청 일원의 사적지에 대한 전시 스토리텔링이 사실과 다른 것이 적지 않다는 점이다. 예컨대 당시 장형태 도지사가 희생자 유족들을 만나 장례절차를 논의했다고 한다. 그리고 장형태 도지사의 사퇴 기자회견 장면 재현을 비중 있는 콘텐츠로 제시하고 있다. 당시 희생자의 신원조차 제대로 확인하지 못한 상태였는데 유족대표가 누구였고, 장례절차 협상이라니 어불성설이다. 어디 그뿐인가. 전시주제를 보면 더 심각한 수준이다. 전시 기본계획 설명을 위해 배포한 자료에는 상무관은 "지속가능한 추모", 옛 전남도청 본관은 "열흘간의 최후항쟁", 그리고 자료의 뒤표지에는 "민주주의를 위한 희생을 기념"하겠다고 돼 있다. 희생을 기념한다는 표현만으로도 이 기본계획이 얼마나 무성의하게 진행되고 있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필자가 상무관은 단순한 추모공간을 넘어서야 할 공간이라고 지적했는데 정작 답변은 예술적 승화라고 한다. '지속가능한'이라는 표현이 이 공간이 갖고 있는 역사적 사실과 추모를 수식하는데 적합한 용어인가. 바로잡아야 할 내용은 이 외에도 적지 않다. 그래서 원점에서 다시 시작하라는 것이고, 그것이 어렵다면 5·18의 사실관계를 정확하게 알고 있는 전문가들의 철저한 자문과 검증을 받을 것을 주문했지만 역시 반응이 없다. 내용은 바뀔 수 있고 앞으로도 수정할 수 있다고 한다. 언제까지 이런 답변만 되풀이할 것인가. 자문회의를 포함한 여러 차례의 설명회 역시 '우리는 이런 절차를 거쳤다'는 명분만 축적하기 위한 것은 아닌지 의심스럽다. 필자가 참여해 온 자문회의도 형식적인 절차였다는 생각에 자문위원에게 뒤따를 책임에 모골이 송연해진다. 전형적인 공무원들의 자세이며, 전시계획을 준비하고 있는 시공회사는 그동안 이 업체가 비난받아 온 전시사업 행태가 반복되고 있다. 시공업체를 선정한 과정도 과업의 제안서에 제시된 콘텐츠와 기술력 평가가 아니라 최저입찰제를 적용한 것부터가 잘못이다. 이미 엎질러진 물이라면 복원과 전시 기본계획만이라도 제대로 해야 하는데, 문제는 그것을 주관하고 있는 문체부 산하 '옛전남도청복원추진단'에 그런 전문가들이 없다는 사실이다.

옛 전남도청의 복원과 전시사업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다. 그렇다면 도대체 광주시는 무엇을 하고 있는가. 5·18기념재단과 5·18 단체는 또 무엇을 하고 있으며, 이 사업의 전반에 대해 관여하고 있는 '시도민대책위'는 잘못된 복원과 전시의 결과가 가져올 파장을 어떻게 감당할 것인가. 광주에 산재해 있는 5·18 관련 기념시설과 전시를 둘러보면 문제점이 한둘이 아니다. 대표적으로 국립5·18민주묘지에 있는 유영봉안소의 영정에 기재된 5·18 희생자들의 기본정보 내용이 사실과 많이 다르다. 전일빌딩245 전시실의 내용도 사실과 다른 것이 무려 70여 가지가 넘는다. 옛 전남도청도 이런 과오가 되풀이되고 있는 것이다.

윤석열이 확인해 준 불행했던 역사의 과거청산과 기념사업의 중요성, 그리고 며칠 전 복원공사장의 화재를 계기로 이 사업을 담당하고 있는 추진단의 콘텐츠 담당자들의 전면적 교체와 광주광역시의 적극적인 역할을 촉구한다. 여러 차례의 언론보도와 시민설명회의 문제 지적에도 반응이 없는 옛전남도청복원추진단의 콘텐츠 담당자들을 교체하지 않고서는 달라지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하루빨리 광주시와 5.18 단체, 그리고 시민사회가 지혜를 모아 광주의 대표적인 5·18의 교육장이 되어야 할 이 기념사업을 위해 지혜와 힘을 모아야 할 때이다. 도시 정체성을 대표하게 될 옛 전남도청 기념사업에 대한 광주시의 뒷짐행정은 어떤 말로도 변명할 수 없는 무책임의 극치라는 비판에 직면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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