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광주다움 통합돌봄이 전하는 위로와 응원

@김은희 오색빛협동조합 대표 입력 2024.09.08. 18:37
김은희 오색빛협동조합 대표

새벽 3시. 어김없이 남구 용대로 거리에 오색빛 불을 밝힌다. 신나는 음악을 틀고 오늘 하루도 힘차게 시작한다. 방문 일정을 체크하고, 저염식과 유동식, 대상자의 특이체질과 건강 상태를 확인하며 맞춤형 '식사'를 준비한다. 이 음식을 드시고 나날이 건강해지는 돌봄시민들을 생각하면 이른 새벽에도 지치지 않는다.

문화예술기획자이자 사회적기업 오색빛협동조합의 대표인 필자는 수익금의 일부를 사회에 환원할 방법을 찾고자 고심해 왔다. 그렇게 2012년부터 직접 만든 음식을 외로운 이웃과 나누는 일을 시작하게 되었다. 봉사를 거듭하며 더 많은 독거 어르신들에게 음식을 나누고 싶다는 큰 꿈도 갖게 되었다. 어떤 방법이 있을까 고심하던 중, '광주다움 통합돌봄'이 전국 최초로 시작되며 함께할 서비스 기관을 찾는다는 소식을 접하게 되었다. 주위에서도 "오색빛이라면 이 일을 잘 해낼 수 있을 것"이라며 응원을 아끼지 않았다.

그렇게 '오색빛협동조합'은 광주다움 통합돌봄 '식사지원' 수행기관이 되어 돌봄이 필요한 많은 이웃을 만나고 있다. 그 이웃들 중에서도 늘 마음 한 켠에 남아 있는 사례가 있어 함께 나누고 싶다.아침 9시, 처음 방문한 가정의 현관문이 열려있었다. "안녕하세요" 하고 들어선 문 안에는 깨진 화분과 누워 있는 어르신이 보인다. 옆집 말씀으로는, 오래전부터 알콜에 의존하고 계신다고 한다. 눈도 뜨지 않는 채 대꾸조차 하지 않는 어르신이었지만 식사를 전달해 드리고 집을 나섰다. 그 뒤로도 어르신은 늘 무기력한 모습이었지만, 그래도 점점 드시는 식사량이 늘어가 마음이 놓였다. 시간이 흘러 어느 가을날 어르신이 깨어 있는 것을 보고 이야기를 건넸다. 바닥에는 남겨진 채 파리가 꼬인 음식이 있었다. "뭘 좀 잘 드셔야 해요. 제가 내일 죽하고 사골을 끓어올게요." 하고 약속을 드렸다. 다음날, 정성껏 끓인 죽과 사골국을 가지고 문을 두드렸다. 여러 차례 어르신을 불러봤지만,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방에 들어선 필자는 손톱과 발톱이 새까맣게 변한 상태로 돌아가신 어르신의 모습을 마주하게 되었다.

119와 동행정복지센터에 급히 연락한 후, 어쩔 수 없이 식사를 기다리는 다음 집으로 향하는 길에 '조금 더 잘할 수 없었을까'하는 후회 섞인 생각을 하며 슬픔에 빠졌다. 잠시 후, 망자의 가족이 전화해 어떻게 돌아가셨는지를 묻는다. 음식을 잘 드시겠다고 약속하시며, 이웃집 오빠처럼 웃어주신 모습이 마지막이었다고 말씀드렸다. 망자인 여동생이 대답했다. 정말 정 많고 좋은 오빠였다고, 오빠가 가시는 길 외롭지 않게 마지막까지 식사를 챙겨주고, 마지막까지 이야기를 나눠 주어 감사하다고 말씀하셨다. 우리의 노력이 헛되지 않았음을 알려주셔서 필자 또한 슬픈 마음을 이겨낼 수 있었고 고마웠다.

질병, 사고, 노쇠와 장애는 누구에게나 예고 없이 다가온다. 돌봄은 이제 더 이상 개인이나 가족의 문제가 아닌 '사회적 책무'로 정의해야 한다. 이를 위해 광주는 2023년 4월부터 돌봄이 필요한 시민이면 누구나 당당히 권리로서 돌봄을 받을 수 있도록 '광주다움 통합돌봄'을 시행하고 있다. 광주다움 통합돌봄 포문을 여는 사업설명회에서 강기정 시장의 인사말이 기억난다. "처음 가는 길은 두렵고 어렵지만, 그 길을 여는 사람이 바로 여러분입니다." 이웃을 돌본다는 기대감도 있었지만, 앞으로 해야 할 일에 대한 부담감, 불안함, 두려움 같은 여러 감정이 교차 됐다. 전국 어디서도 없는 정책이기에 새로운 복지정책이 잘 자리를 잡을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도 들었다.

하지만 1년 여의 시간 동안 서비스 기관으로 참여하며, 이제는 확신할 수 있다. 고령화, 사회적 고립, 1인 가구 확산 등 사회 문제에 발 빠르게 대처할 수 있는 가장 좋은 정책, 오늘의 대한민국 복지를 혁신할 수 있는 새로운 모델이 '광주다움 통합돌봄'이라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다.

광주다움 통합돌봄이 전국으로 확산되어 전 국민 누구나 안심하고 돌봄을 받으며 건강하게 살아 나가기를, 누구도 외롭지 않게 생을 마감할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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