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정율성 논란 성숙한 접근 필요하다

@배훈천 광주시민회의 대표 입력 2024.07.18. 17:48
배훈천 광주시민회의 대표

정율성 논란이 다시 떠올랐다. 국민의힘 당 대표 선거에 나선 나경원 후보가 지난 8일 정율성 역사공원 현장을 찾으면서다. 나 후보는 이 자리에서 정율성 공원에 대해 "경악", "치욕", "분노"와 같은 날 선 단어를 쏟아냈다.

정율성에 대한 평가는 다를 수 있다. 정율성 기념사업에 대한 비판 또한 얼마든지 가능하다. 그러나 그 방식이 호남을 차별하고 지역민에게 모멸감을 주는 방식이어서는 곤란하다. 나 후보는 당권 후보로서 호남의 지지를 호소하기 위해 광주에 왔다. 보통 선거 출마자들은 지역민을 위해 새로운 뭔가를 하겠다는 정책을 제시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러나 나 후보는 90% 이상 완공된 역사공원에 가서 이를 중단하라고 주장했다. 다 지어진 공원사업을 중단하는 것이 광주시민의 편익과 무슨 상관이 있는가? 광주시민은 안중에 없고 본인 지지층만을 의식한 행동이다. 한마디로 광주와 정율성 공원을 정략적으로 이용한 것이다.

정율성 논란이 처음 등장한 것도 매우 정략적이었다. 지난해 8월 당시 국가보훈부 장관은 '누구를 위해 48억 원을 바친단 말입니까?'란 글을 SNS에 올렸다. 30여년 동안 여야의 특별한 이견 없이 진행돼 온 사업을 현직 장관이 행정 절차를 무시하고 SNS에 선동 조로 문제를 제기한다는 것 자체가 이례적이었다. 기념사업의 폐지는 명목에 불과할 뿐 본심은 호남을 정치적으로 고립시킬 소재로 이용하겠다는 의도를 노골적으로 드러낸 대목이다.

한 가지 안타까운 사실은 호남에서 막 태동하던 비민주당 계열의 합리적인 보수세력이 정율성 논란으로 분열하면서 강경보수세력이 주도하게 됐다는 점이다. 이들은 정율성 문제에서 정부 여당 내 강경보수세력의 호남고립 전략에 동조했다.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해 광복절 경축사에서 "민주, 인권, 진보로 위장한 공산 전체주의를 추종하는 반국가세력"을 언급하면서 이념 편향적인 국정 운영 전략을 표방했다. 그러나 홍범도 흉상 철거 문제에서 여론에 밀리고 서울 강서구청장 선거에서 크게 패배하면서 이념 공세를 국정 운영 기조로 삼으려던 정부의 시도는 중단됐다. 그러나 호남의 보수세력은 여전히 보훈단체와 손잡고 정율성 문제에 집착하면서 이념적 편향성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정율성 기념사업에 관한 한 광주는 80년 5월의 고립을 떠올려야 했고 보수의 여론몰이에 완벽하게 진압당한 형국이다. 강기정 시장 홀로 외로이 대응할 뿐 민주당의 동조 아래 정율성 음악축제와 전시관 사업이 전면 백지화됐다. 화순군도 정율성의 출신 초등학교에 설치된 기념물을 모두 철거했다. 화순 고향 집 전시관도 폐쇄했다. 다음 달 준공 예정인 정율성 역사공원도 일반인 공개 여부와 명칭까지 재검토되고 있다.

광주 출신이지만 중국과 북한의 군가를 작곡하고 한국전쟁에 적국의 군인으로 참전한 정율성을 기념하는 것이 타당하지 않다고 비판할 수 있다. 이런 냉전적 시각 또한 존중받을 필요가 있다. 그러나 현대 우리 사회의 보편적인 규범은 항일 독립운동과 문화 예술 분야에서 업적이 있는 위인들을 배척하기보다 화해와 포용의 정신으로 받아들이는 쪽으로 발전해 왔다. 국가 정체성에서 다양성보다 순수성을 강조하거나, 북한은 주적이라는 측면만을 강조하면, 경남 밀양의 김원봉 기념사업과 경남 통영의 윤이상 기념사업은 더 심각하게 문제가 돼야 맞다. 그러나 김원봉 기념사업과 윤이상 기념사업은 무리 없이 진행 중이다. 반면에 정율성 기념사업은 전면 중단되고 있다. 이는 호남에 대한 차별이다.

정율성 기념사업은 국익과도 관련이 있다. 최근 북한과 러시아의 군사동맹이 부활했다. 이에 우리나라는 중국과의 협력을 강화하여 이를 견제해야 할 필요성이 높아졌다.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정율성 선생은 존중받을만한 저명한 음악가"이며, "정율성 선생과 관련한 문화 교류 활동은 중한 우호에 긍정적인 역할을 해 왔다"라고 말했다. 정율성 기념사업이 중국과의 외교에 긍정적인 역할을 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정율성 기념사업은 새로운 사업을 편성하진 않더라도 기왕에 진행해오던 사업을 여론몰이에 굴복해 쉽게 포기해버려서는 안 된다. 이는 자원의 낭비이며 국력의 훼손이다. 지역사회의 현명한 판단을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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