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 직후 SNS에서 소소한 화제가 된 영상이 있다. 해·완·진 지역구에서 있었던 민주당의 박지원 후보와 국민의힘의 모 후보 간의 토론 영상이다. 취객을 연상시키는 상대측 후보(79세)의 횡설수설 인신공격과 이를 여유롭게 받아치는 ‘정치 9단’ 박지원(81세)의 대비되는 모습은 네티즌들의 실소를 자아냈다. 90%가 넘는 박지원 후보의 전국 최고 득표율이 이해가 된다는 반응도 나왔다.
하나의 작은 해프닝이라고 할 수 있겠지만, 이를 바라보는 필자는 씁쓸한 심정을 감출 수 없었다. 호남 정치의 현실이 집약된 장면이라고 느껴졌다. 무슨 말인가? 한마디로 보수당에게 호남은 철저하게 버려진 땅이라는 것이다.??
선거가 끝나면 호남의 민주당 몰표는 언제나 비난과 지탄의 대상이 된다. 여기에는 보수와 진보가 없다. 2002년 당시 호남의 노무현 몰표를 두고 대표적 진보 지식인인 진중권 교수는 ‘전라인민공화국’이라고 조롱했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최측근이었던 유시민 전 장관은 ‘지역주의 암환자 호남의 노무현 몰핀 투여’라고 모욕한 바 있다. 좌우를 불문한 ‘지역주의의 원흉’을 겨냥한 비난 공세에서 부산경남이 3등, 대구경북이 2등이라면 호남은 압도적인 1등 표적인 셈이다.?
하지만 생각해보라. 왜 호남은 민주당에게 몰표를 줄 수밖에 없는가? 이유는 간단하고 명백하다. 보수당이 호남의 지지를 얻을 의사가 전혀 없기 때문이다. 그들은 해완진의 국힘 후보와 같은 자격 미달의 인사만을 호남에 출마시킨다. 여전히 광주항쟁을 모독하면서 호남 유권자의 상처를 헤집고 피해감정을 자극한다. 영남(부산경남) 공략을 위해 대형 공약을 제시하고 영남 출신의 대선 후보를 연속해서 내는 민주당과 달리, 국가적 자원이 투입되는 경제 공약을 제시하거나 호남 인사를 중용하기는커녕 오히려 호남을 겨냥한 정치적이고 이념적인 공세를 가하는 데 여전히 몰두한다(정율성 공원 논란과 잼버리 참사를 생각해보라).
사실 92년 총선에서 당시 민자당의 호남권 득표율은 30%에 달했다. 하지만 호남 고립의 3당합당 체제 위에서 수립된 김영삼 정권은 이후의 인사와 예산에서 호남을 철저하게 배제했고, 그 결과 21세기 들어 보수당의 호남권 득표율은 10%대로 추락했다. 즉 오늘날 호남의 민주당 독식은 군사정권의 호남차별과 광주학살을 넘어서 90년대 이후 보수당이 30년째 견지해오고 있는 반호남주의 기조에서 비롯된 현상인 것이다.?
광주학살을 자행한 신군부의 법통을 계승하면서 여전히 자신들을 적대하는 정당을 어떻게 호남 유권자가 지지하겠는가? 즉 호남에게 선택지는 민주당밖에 없으며, 따라서 호남의 민주당 독점은 철저하게 외부로부터 강요된 결과물인 것이다. 민주당이 호남 지역 발전에 무관심하고 주기적으로 호남 중진들을 당에서 몰아내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이번 수도권 공천 파동에서 낙마한 정치인 중 대다수가 호남 출신이었다). 민주당에게 호남은 강요된 몰표를 알아서 ‘상납’하는 만만한 ‘호구’요 목줄 잡힌 ‘인질’이므로 홀대하고 능멸해도 되는 것이다.?
그런데 신기한 것은, 평소에는 민주당측의 입장과 시각에서 보수세력을 성토하던 호남의 오피니언 리더들이, 선거가 끝나면 ‘민주당의 호남 독점’을 한탄하면서 그 비난의 화살을 호남에 돌리는 자기비판에 함몰되는 경향을 보인다는 것이다. 물론 민주당 독점의 지역 정치 현실에 대한 분노와 좌절은 자연스러운 것이다. 하지만 원인 진단이 잘못된 비판은 잘못된 결론으로 나아갈 수밖에 없다. 보수당의 호남 배제와 차별이라는 사태의 근원에 대한 인식이 결여된 민주당 독점에 대한 비판은, 실제로 민주당 독점을 완화시키지도 못하면서 호남에 대한 대외적 여론을 악화시키는 결과만을 초래한다.?
호남의 민주당 독점은 당신들이 비난하는 보수정권과 정당의 반호남주의에서 비롯된 현상이다. 그런데 왜 엉뚱하게 호남 스스로에게 책임을 돌리는가? 왜 모든 사안에서는 선명한 흑백논리로 보수세력을 성토하면서, 유독 호남의 민주당 독점을 논할 때는 그들의 명백한 책임을 망각하고 자기비판과 혐오에 함몰되는가? 그 이유가 뭔가? 필자는 참 궁금하다. 윤중대(필명) 자유기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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