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하수 역학을 통한 작은 혁신, 하수(下水)는 알고 있다

@안양준 전남도 보건환경연구원장 입력 2024.03.13. 17:34

하수(下水)에는 인간 생활상에 대한 수많은 정보가 담겨 있다. 일상 생활에서 쓰는 다양한 물질부터 대소변까지, 인간 활동과 관련된 거의 모든 물질들이 물(水)을 매개로 해 하수로 배출된다. 따라서 하수의 부유물 속에는 코로나19 환자가 배출한 바이러스나 각종 세균, 사람이 먹는 의약품 성분 등도 포함돼 있을 것이다.

이를 기초로 '하수기반 역학(WEB)'이 도입됐는데, 하수처리장으로 유입되기 전의 하수를 분석해 하수 유량과 인구수를 고려하면 인구대비 양을 추정할 수 있으며, 더 나아가 이를 배출한 집단의 건강상태와 생활패턴의 전반을 평가할 수 있다는 개념이다.

하수 역학은 한국에서는 생소한 개념이지만 해외에서는 20년 가까이 마약범죄를 막는 모니터링에 활용되고 있다. 미국에서는 2001년 처음 도입됐고, 유럽연합(EU)은 2010년 하수분석네트워크를 설립해 지역별로 마약류 사용을 모니터링하고 있다.

감염병 분야에서 하수기반 역학을 주목하게 된 계기는 2020년 초 유럽에서였다. 코로나의 유럽 상륙 시기를 최초 확진자가 발견된 2020년 1월 하순에서 최초 사망자가 발생한 2월 하순 사이로 추정했지만, 이탈리아 국립고등보건연구소(ISS)가 2019년도 12월 하수 샘플에서 코로나를 유발하는 사스코로나바이러스-2 RNA를 확인하면서 부터다.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CDC)도 2022년 코로나 확산 양상과 변이 등을 추적하기 위해 생활하수를 감시하는 시스템을 도입했다. 코로나에 감염된 사람은 배설물을 통해 바이러스를 배출하기 때문에 하수를 분석하면 특정 지역사회에 얼마나 광범위하게 바이러스가 퍼져 있는지 또는 어떤 변이가 유행하고 있는지 등을 추정할 수 있다고 말했다.

우리나라에서는 2013년 부산대 화공생명환경공학부 교수팀이 부산의 하수처리장 하수를 분석한 결과 '여름철 해수욕장 폐수에서 필로폰 검출량이 2.4배 높아졌다'는 연구결과를 발표한 것을 계기로 식품의약품안전처가 2020년 마약류 사용행태 모니터링 목적으로 하수기반 역학을 도입, 지난 3년 간(2020~2022)의 모니터링 결과를 발표했다.

필로폰(메트암페타민)은 3년 연속 조사대상 34개 하수처리장 모두에서 가장 많은 사용 추정량을 보였으며, 항만과 대도시 지역에서 필로폰이 상대적으로 높게 검출되는 경향을 보이고 엑스터시(MDMA) 사용 추정량은 매년 늘어나는 경향을 보였다는 내용이다.

질병관리청 또한 2022년부터 하수기반 역학을 이용한 코로나, 노로바이러스, 인플루엔자바이러스 등 감염성 병원체 감시 시범사업을 시작했으며, 시범사업을 통해 실측을 진행한 결과 하수 감시 결과와 지역사회 환자발생 경향 사이의 일치성을 확인하고 2023년 지자체의 협조를 얻어 전국적인 하수기반 감염병 감시망을 구축하고 있다.

하수 역학을 통한 방역은 국가재산인 하수관을 활용하기 때문에 개인정보를 침해하지 않고 감염병 등을 추적할 수 있으며, 일반 진단검사에서 파악되지 않는 무증상·경증 확진자 까지 지역사회 내 전반적인 감염상황을 볼 수 있다는 장점이 있기 때문에 하수가 지역사회 공중보건 상태를 파악하는 중요한 열쇠가 될 수 있다.

감염병 확진자가 발생하고 확산되기 전에 감염병 유행을 예측하고 신종 변이의 출현을 알리는 조기경보 시스템 구축을 위해서는 하수기반 데이터 추적 시스템이 가동돼야 하며, 불법 마약류뿐만 아니라 병원에서 합법적으로 처방되는 향정신성 의약품(남용)까지 마약류 사용실태 및 변화추이를 파악하는데 하수기반 역학이 플랫폼 역할을 해야 한다.

이에 발맞춰 전남도 보건환경연구원에서도 2023년 전남지역 5개 시 8개 하수처리장 하수를 대상으로 코로나, 인플루엔자, 노로바이러스 등 감염병 병원체 감시를 시작했으며, 올 해는 일 처리용량 500t 이상, 하수 처리인구 3만명 이상인 하수처리장 2개소를 추가한 총 10개의 하수처리장 하수를 대상으로 기존 병원체 외에 항생제내성균(CRE) 등 감시 분야를 확대 추진하고 있다.

더불어 올 해 전국 지자체 중 최초로 지역 마약류 사용 실태 파악을 위한 마약류 모니터링 사업 계획을 수립·추진 중에 있으며, 마약류 분석정보 공유 등을 위해 부산대학교와 업무협약을 체결한 바 있다.

이러한 일련의 과정을 진행하기 위해서는 하수를 분석하는 기술력과 첨단분석장비 확보가 선행돼야 하기 때문에, 전남지역 하수를 분석하는 바로미터는 보건환경연구원이 될 것이다. 지역민과 지역사회의 불법약물 사용과 건강상태까지 다양한 정보를 하수는 알고 있다. 감염병 예방과 마약류 안전관리 기반 마련을 위한 작은 혁신, 지역 내 하수기반 역학과 모니터링이 필요한 이유이다. 안양준? 전남도 보건환경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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