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1월 29일 서지현 검사의 폭로로 시작된 미투 운동은 그해 3월 5일 김지은씨의 미투 증언으로 이어졌다. 김지은씨는 당시 충남도지사인 안희정씨의 수행비서였다. 이들의 증언 이후 각계각층에서 수많은 성폭력 증언이 이어졌고 전세계로 확산되었다. 미투 운동의 증언자들은 사적 관계 또는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되돌아오는 또 다른 피해의 두려움에도 불구하고 개인의 고통을 넘어 타인의 고통과 연대하고자 했다.
이후 우리 사회는 성폭력 피해자의 고통을 증언하고 기록하면서 그것이 개인의 고통만이 아니라 집단적 기억이자 구조적 불평등에서 비롯된 피해임을 알게 되었다. 성차별과 성폭력은 마치 바닷가 바위에 다닥다닥 붙어있는 조개처럼 촘촘하게 박혀있음이 드러난 것이다.
성차별과 성폭력의 문제에서 주목해야 할 것은 권력이다. 개인적인 관계에서도 권력 관계는 형성된다. 현실권력자들이야 두말할 필요가 없다. 정당의 공천기준은 당선 가능성이다. 당선 가능성이 높은 후보에 대해서는 성인지 감수성을 평가하지 않는 것 같다. 당선 가능성은 낮지만 성인지감수성을 갖고 있는 후보와 성인지 감수성은 없지만 지지도 높은 후보가 경쟁한다고 하자. 그 어떤 당도 당선 가능성 높은 후보를 버리고 성인지 감수성있는 후보를 선택하지는 않는다. 이것이 우리 사회의 민낯이다. 그럼에도 대안은 없다. 선거에서는 무조건 이겨야 한다는 논리가 자동으로 작동하기 때문이다. 공정한 과정, 평등한 기회, 성인지 감수성을 갖춘 후보 선택은 잠시 미뤄두는 것이다. 불평등한 사회구조는 당선된 뒤에 열심히 일해서 바꾸면 된다는 것이다.
그런데 다시 생각해보자. 도대체 미투운동이 여성들에게 무엇이었기에 그렇게까지 사회적 의제를 만들어낼 수 있었을까. 미투 운동 이후 무엇이 달라졌는가? 미투 운동은 끝났는가? 단언하건데, 아니다. 미투 운동은 현재진행형이다. 왜?
권력형 성폭력은 그 자리에 누가 가더라도 그런 행동을 할 수 있게 하는 불평등 구조 속에서 재생산된다. '공작'이니 '사적 관계'니 하는 언설은 끼리끼리 정치의 특성이다. 우리 사회 핵심 인사들의 성폭력이 끊임없이 일어나는 이유가 거기에 있다. 성폭력에는 진보도 보수도 없다. 왜 진보에게만 가혹하냐 라고 불평하는 진보진영 인사들을 보는 심정은 참으로 답답하다. 그들은 성평등 인식에 대한 제고와 성찰의 필요성을 얘기하지 않는다. 진보진영을 정치적으로 와해시키려는 공작이라고 말한다. 가짜 미투와 진짜 미투를 가려야한다며 법적 소송을 벌이기도 한다. 이런 사람들이 하는 정치가 진보정치인가? 그것은 진보정치가 아니다. 끼리끼리하는 정치, 패거리 정치이다.
미투 운동은 남성이 과대표 되어있는 우리 사회에서 나타나는 필연적인 결과였다, 그래서 불평등한 사회 구조 개혁과 권력 독점의 문제를 대중 담론의 중심으로 끌어냈다. 권력을 어떻게 나눌 것인가 하는 문제는 이제 우리 사회의 중심 담론이 되었다.
2024년 총선은 그 어느 때보다 어려운 시기에 치러지는 선거이다. 여성가족부 폐지! 이 일곱 글자는 마치 기다렸다는 듯 여성과 남성을 가르고 여성 혐오 정서를 확산시켰다. 정권을 쟁취한 이후에는 여성 삭제 정책이 이어지고 있다. 여성 정책 예산이 예고도 없이 싹둑 잘려나가고 폐지되고 통합되고 있다. 모든 것이 갑작스럽게 이루어지고 있다. 혼란의 연속이다. 때마침 선거가 다가오고 있다. 새로운 권력 탄생의 신호탄이 오른 것이다. 예비후보 등록이 시작되었고 선거 전쟁이 시작되었다. 이 과정에서 우리가 놓치지 않아야 할 것이 있다. 각 정당의 후보 공천이다. 그 과정은 공정하고 투명해야 한다. 가장 염려되는 것은 성인지 감수성 없는 후보자를 공천하는 것이다. 그보다 더 최악의 상황은 이미 수십 년 전에 일어났던 사건이라고, 큰일을 할 능력있는 사람인데 사적 관계에서 있었던 그 일이 발목을 잡으면 안 된다는 온정적 논리이다. 끼리끼리 정치라서 가능한 이 논리가 다시 작동된다면 우리 사회는 더 큰 혼란과 불평등 속에서 헤매게 될 것이다.
권력형 성범죄를 대하는 우리 사회의 원칙은 철저한 피해자 주의와 무관용이다. 검증이 시작되면 그 원칙은 변질되어 버린다. 범죄 경력조회에서 나오는 성범죄를 중심으로 판단하는 것을 넘어서 범죄 여부가 확정되지 않은 성범죄는 공천과정에서 중요하게 다루지 않는다. 성범죄 전력이 있어도 그것은 공천에서 중요한 판단기준이 되지 않는 것이다. 성범죄자가 아니라도 공천심사 과정은 매우 중요하다. 그 과정은 투명해야 하고 그 결과는 누구나 인정할 수 있어야 한다. 특히, 성범죄 전력자의 경우, 이미 처벌을 받은 사건이건, 갓 신고된 사건이건 그 어떤 상황이라도 엄격하게 심사하고 우리 사회가 합의한 원칙을 적용해야 한다. 한국 남자 없는 세상을 소망하는 여성들이 더 늘어나는 것을 원치 않는다. 2024년 총선에서는 공정한 공천으로 성평등 사회에 대한 의지를 보여주기 바란다. 임수정(광주전남여성단체연합 상임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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