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44년 해방을 맞은 프랑스에서는 나치 부역자 처벌을 두고 치열한 논쟁이 벌어졌다. 소설가 모리아크는 관용을 주장했지만, 알베르 카뮈는 단호히 반박했다. “어제의 불행을 만들었고 앞으로도 계속 그렇게 할 소수의 사람들이 있다. 우리가 바라는 것은 명백한 범죄에 대한 즉각적인 처벌이다.” 프랑스는 1,500여 명을 처형하며 기강을 바로 세운 반면, 1948년 대한민국의 반민특위는 와해됐고 제대로 된 친일 청산은 단 한 명도 이루어지지 않았다.
“반역을 즉각 차단하지 않으면 불행의 역사는 반복된다”는 카뮈의 경고는 2026년 대한민국을 정확히 관통한다. 최근 예능 프로그램에서 ‘4대째 의사 가문’이라며 자랑스레 털어놓은 배우 하영의 논란이 그 뼈아픈 증거다.
그녀의 증조부 안상호는 이토 히로부미 추도회 준비위원, 대정친목회 평의원 등을 지낸 명백한 친일파다. 특히 1918년 ‘매일신보’ 인터뷰에서 “조선 사람과 상종하는 일이 없어 불편함이 없다”고 공언한 사실은, 그의 행보가 억압에 의한 타협이 아니라 기득권을 좇은 ‘자발적 반민족 행위’였음을 확증한다.
그럼에도 박유하 교수는 이를 비판하는 대중을 향해 ‘순결 강박’이라 매도하며 생존을 위한 창씨개명과 결부 지어 훈계했다. 그러나 대중이 분노하는 것은 무결점의 도덕성을 강요하기 때문이 아니다. 그녀가 내세운 ‘의사 가문’의 실체가 그 반박 증거다. 조부가 활동했던 소록도는 한센병 환자들에게 강제 노역, 단종 및 낙태 수술 등 인권 유린이 자행되던 비극의 장소였다. 누군가의 피눈물 위에 쌓아 올린 잔혹한 기득권을 공영 방송에서 ‘가문의 영광’으로 포장하는 오만함을 비판하는 것을 두고, 감히 ‘순결 강박’이라 깎아내릴 수 있는가.
심지어 이 명백한 반민족 행위자는 최근 한 지자체의 허술한 검증을 틈타 ‘지역의 독립운동가’로 둔갑할 뻔했다. 역사적 기록마저 기만해 의로운 가문으로 신분 세탁을 시도한 참담한 촌극이다.
물론 누구도 자신의 조상을 선택할 수 없기에 연좌제는 지양돼야 마땅하다. 우리가 어떤 부모에게서 태어날지 결정할 수는 없으나, 선대의 과오를 알게 된 뒤 어떤 행동을 하느냐가 훨씬 더 중요하다. 진실을 마주하고 진심으로 반성한다면 대중은 기꺼이 포용할 것이다. 그러나 뼈저린 성찰은커녕 신분마저 세탁하려 드는 오만함을 방관한다면, 제대로 된 단죄 없는 관용은 여전히 너무 큰 사치일 뿐이다.
과거 1949년 친일 경찰의 무력에 의해 반민특위가 와해됐을 때, 역사의 단죄를 피한 친일 세력은 반공과 이념을 방패 삼아 기득권을 지키며 현대사의 고비마다 헌정 질서를 유린하고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세력으로 독버섯처럼 자라났다. 단죄하지 못한 역사는 단지 오만한 개인을 낳는 것에 그치지 않고, 국가의 뿌리와 공동체의 존립마저 흔든다는 사실을 우리는 뼈아프게 목격해 왔다.
그렇기에 친일 청산은 가해자들의 선의나 자발적 반성에만 맡겨둘 수 없는, 국가가 끝까지 책임져야 할 의무다. 다행히 이번 광복절, 대통령은 친일 부당재산을 끝까지 추적해 청산하겠다는 강력한 의지를 천명했고 16년 만에 ‘친일재산조사위원회’가 다시 문을 열었다. 반민족 행위로 축적한 부를 바탕으로 가문의 영광을 운운하는 기만은, 오직 국가 주도의 철저한 재산 환수를 통해서만 그 뿌리를 뽑을 수 있다.
단죄 없는 사회에 미래는 없다. 실질적이고 철저한 청산만이 헌정 질서를 흔드는 역사적 퇴행을 막고, 구천을 떠도는 독립투사들의 피눈물을 닦아주며 이 땅에 진정한 정의를 바로 세우는 유일한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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