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칼럼] 강요된 용서

@김다정 광주청년유니온 위원장 입력 2026.08.05. 13:55
김다정 광주청년유니온 위원장
김다정 광주청년유니온 위원장

지난 6월 고교야구 시리즈에서 배재고 학생들이 ‘스타벅스 가야지’라는 응원으로 사회적 공분을 샀다. 사건 이후 배재고 학생들과 학부모들은 광주제일고를 찾아 사과 후 5·18 묘역을 참배했다. 당초 대한야구소프트볼협회의 ‘6개월 출전정지’ 처분은 1개월로 줄어들었다. 대한체육회 스포츠공정위는 더그아웃에서의 부적절한 응원 구호는 경기 방해 행위 등 징계 사유에는 해당하지만, 배재고 학생들이 광주를 찾아 용서를 구하고 피해 당사자인 광주제일고등학교(광주일고)가 용서하고 선처를 호소한 점을 참작해 1개월로 감경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감경 사유가 의아했다. 그러니까, 이게 광주일고 학생·관계자들만 용서하면 되는 일이었던가?

5·18 3단체(5·18민주유공자유족회, 5·18민주화운동부상자회, 5·18민주화운동공로자회)는 사건 직후 5·18 기념재단과 함께 성명을 발표했다.

배재고에 선처를 바란다는 내용이었다.

오월의 직접 당사자들과 이번 사건의 직접 당사자들이 용서하면 될 문제, 그렇다면 이게 왜 사회적으로 문제가 되는가. 그냥 자기들끼리 만나서 용서하고 화해하면 되는 것 아닌가?

문제는 특정 지역의 문제나 특정 학교의 문제로 한정해서 피해자를 극소화하고 용서의 주체를 개별화하는 것에 있다. 조롱당한 것은 민주주의 역사 그 자체인데 누가 피해자란 말인가? 그 광장에 있었던 시민들, 야구장에서 그 모멸을 견뎠던 광주일고 학생들만 피해자인가?

김대중 전남광주교육감은 “교육적으로 해결하려고 노력해 왔다”며 학생독립운동기념일인 11월 3일 광주에서 다시 야구 경기를 갖길 제안했다. 정치적으로 얼마나 보기 좋은 그림인가. 그러나 묻고 싶었다. 대체 교육적인 게 무엇이냐고. 책임을 가르치는 것도 교육이다. 용서와 책임은 별개의 사안임에도 이 사안을 자신들의 정치적 무대로 삼는 서울, 전남광주 교육감들과 정치인들을 보고 있자니 기가 찼다.

전두환은 죽었고 하나회의 핵심들 대부분은 사망했거나 명을 다해가고 있다. 그러나 그들이 남긴 잔재들은 50년이 지나도 그대로다. 오히려 더 진화한다.

책임만큼이나 중요한 것은 이런 행위가 반복되지 않도록 구조와 시스템을 만드는 것이다. 그 어떤 가이드라인도, 대책도 마련하겠다고만 이야기했지 나온 것은 없다. 배재고에 이재오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이사장이 방문해 2시간 교육을 한 것이 이 사건을 해결하는 전부였다. 이것이 교육적인 해결인가? 언제부터 교육감이 너그러운 정치인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더 중요한 자리가 됐는지 교육감 직선제에 대한 회의마저 들었다.

오월은 직접 당사자들만의 역사가 아니며 광주만의 것도 아니다. 그 광장을 지켰던 이들만의 역사도 아니다. 이건 우리 모두의 역사이자 우리 민족의 역사다. 그렇기에 놀이로 폄훼되고 조롱받는 것은 우리 모두에 대한 조롱이자 우리 사회가 합의해 온 약속들을 조롱하는 것과 같은 무게다. 그렇게 엄중히 다루어졌어야 했다.

전두환을 사면해 준 김대중이 생각났다. 누군가는 이 모습을 ‘한국 민주주의가 한 단계 더 나아가는 순간’이라고 평하지만 필자는 생각이 다르다. 오월이 정치화되는 순간, 오월이 ‘김대중 사건’이 돼버린 순간이라고 생각한다. 자신을 죽이려 한 정치적 원수를 용서해 준 김대중, 그 순간 광주는 시민항쟁이 아닌 개인적이고 협소하며 매우 지역주의적인 역사가 된다. 어쩌면 그때부터 광주는 용서해야만 하는 존재가 됐다. 책임을 다하지 않은 이에게 건넨 용서는 이렇듯 또 다른 국가폭력의 형태로 되돌아온다.

노태우와 전두환에 대한 국민적 감정이 왜 다를까. ‘학살자’라는 역사적 수식어는 바꿀 수 없지만 적어도 추징금을 완납하고 간접적으로라도 용서를 구한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은 다르다. 책임을 다한 자는 용서받을 자격이 있는 사람이 된다. 그럴 때 비로소 용서가 의미 있어지는 것이다.

배재고는 1개월 출전정지라는 징계를 받았다. 그것으로 책임을 다했는가는 부차적인 문제다. 중요한 것은 이 사건을 대하는 교육감, 학교, 그리고 우리 사회의 태도다. 엄벌주의를 주장하는 것이 아니다. 필자는 촉법소년 연령 하한에도 신중한 토론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다만 그저 놀이문화일 뿐이라고 국가폭력의 재생산을 방치하는 것은 매우 문제적이다. 지금이라도 이러한 표현들에 대해 현장에서 제지할 수 있나 대책이 있어야 한다. 그리고 이러한 대책은 사회적 대화를 통해 결정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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