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칼럼] 피해자보다 가해자에게 관대한 나라

@임태균 일러스트레이터 입력 2026.07.15. 08:00
임태균 일러스트레이터
임태균 일러스트레이터

경기장은 정당한 승부를 겨루는 신성한 교육의 장이다. 그러나 지난 6월 전국고교야구선수권대회에서는 승부의 가치를 송두리째 짓밟는 반교육적이고 반인륜적인 참사가 벌어졌다. 배재고 야구부 선수들이 상대 팀인 광주일고를 향해 “스타벅스 가야지”, “탱크데이” 등 5·18 민주화운동을 조롱하는 일베식 혐오 구호를 집단으로 외친 것이다.

당시 배재고는 6대 2로 앞서며 콜드게임 승리까지 거론되던 상황이었다. 열세에 몰린 조급함이나 우발적인 실언이 결코 아니었다. 광주에서 올라온 또래 선수들의 멘탈을 흔들고 인격을 모욕하기 위해, 우리 현대사의 비극을 놀이의 탈을 씌워 휘두른 치밀한 언어폭력이었다.

대한야구소프트볼협회는 사안의 중대성을 인식해 ‘6개월 출전 정지’ 중징계를 내렸다. 하지만 징계 직후 우리 사회의 풍경은 참담하다. 일부 정치권과 학부모들은 “야유 좀 한 것 가지고 선수 생명을 끊으려 하느냐”며 가해자를 옹호했고, 피해 학교 공식 SNS에 몰려가 악플을 퍼붓는 2차 가해까지 서슴지 않았다. 어째서 대한민국은 늘 피해자보다 가해자에게 관대한가.

최근 배재고 학생과 학부모 80여 명이 광주를 찾아 고개를 숙이고 국립5·18민주묘지를 참배했다. 이에 5·18 유관 단체와 광주일고는 오월의 포용 정신을 내세우며 선처를 호소했다. 표면적으로는 갈등이 봉합된 듯 보이지만 그 이면에는 기만적인 진실이 숨어 있다. 눈물의 사과가 잊히기도 전인 지난 8일과 10일, 배재고 측은 징계를 줄여달라며 재심을 청구한 데 이어 법원에 ‘징계 효력정지 가처분’까지 신청했다. 당장 8월 대회에 출전하기 위해 징계를 무력화하겠다는 뜻이다.

광주에서는 눈물로 참회하더니 서울에 올라와서는 법의 뒤에 숨어 처벌을 피하려는 이중성은 뼈아픈 진실을 일깨운다. 결국 그들의 사과는 자신이 짊어져야 할 ‘6개월 징계’를 피하고, 가처분 신청 시 판사에게 제출할 이른바 ‘감경용 스펙’을 쌓기 위한 얄팍한 흥정 카드였음을 스스로 증명했다.

이들이 조롱한 것은 특정 야구팀이 아니라, 피 흘려 민주주의를 지켜낸 시민들과 그 숭고한 역사다. 잘못을 뉘우치고 사과하는 행위는 인간의 기본 도리일 뿐, 파괴적 행동에 대한 제도적 책임을 덜어내는 면죄부가 될 수는 없다. 사과했으니 징계를 멈춰달라는 뻔뻔한 요구는 5·18 단체가 내민 위대한 포용의 손길마저 철저히 기만하는 행위다.

일각에서는 구호를 외치지 않은 고3 학생들까지 출전 정지를 당하면 입시에 치명적이라며 ‘고3 피해론’을 주장한다. 비겁한 궤변이다. 야구는 철저한 팀 스포츠다. 더그아웃에서 일베 구호가 집단으로 울려 퍼질 때, 고3 선수와 주장은 후배들을 제지하지 않고 방관했다. 승리의 영광을 함께 나누듯, 팀의 이름으로 저지른 언어폭력의 책임도 함께 짊어지는 것이 원칙이다.

무엇보다 ‘대학 입시’가 도덕과 역사적 책임 위에 군림할 수는 없다. 고3 학생들이 입는 피해가 진정 안타깝다면, 분노가 향해야 할 곳은 징계를 내린 협회가 아니라 일베 구호가 난무하도록 선수단을 방치한 ‘배재고 감독과 학교 측’이다. 무고한 고3에게 피해를 끼쳐 놓고, 학생들의 입시를 볼모로 징계 철회를 요구하는 것은 파렴치한 책임 전가다.

“아직 어려서 역사적 의미를 몰랐을 것”이라는 변명 역시 무책임한 합리화다. 오늘날 청소년들은 어떤 표현이 타인의 역사적 상처를 찌르는 흉기가 되는지 명확히 안다. 타인의 고통을 조롱해도 처벌받지 않는다는 생태계를 파악한 아이들을 관용으로 덮어주는 것은 이들을 괴물로 성장하도록 방치하는 공범 행위다.

무너진 도덕을 바로 세우기 위해 우리는 온정주의와 결별한 단호한 사회적 선 긋기에 나서야 한다. 타인의 상처를 유희거리로 삼으면 경력에 치명적 불이익이 따른다는 예외 없는 ‘레드카드’가 필요하다. 어른들의 관용이 아이들의 책임 면제표가 돼선 안 된다.

야구장에 서지 못하는 6개월의 뼈아픈 시간을 변명 없이 묵묵히 견뎌내는 것, 그것이야말로 진심으로 용서를 구하고 역사의 무게를 배우는 유일한 길이다. 혐오 문화에 단호한 철퇴를 내리고 스스로의 행동에 책임을 지는 시민 의식을 가르치는 것. 그것이 단기적인 야구 경기의 승패보다 천배 더 가치 있는 우리 사회의 진짜 승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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