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4월 20일, BGF리테일에 공동교섭을 촉구하기 위해 열린 집회 현장에서 민주노총 산하 공공운수노조 화물연대 소속 조합원들이 물류 화물차에 치이는 사고가 발생했다. 이 사고로 조합원 한 명이 숨지고 두 명이 중경상을 입었다.
사고 영상이 SNS을 떠돌며 댓글에서 여론전이 뜨거웠다.
‘건폭에 이은 화폭’ ‘운전자가 불쌍하다’ ‘차 앞으로 뛰어들었는데 왜 억울하냐’
댓글은 노동조합을 죽여 마땅한 이들로 부르고 있었다.
사건의 경과는 이렇다. 파업 중 회사의 송장오더를 받은 비노조원이 물류를 받고 출차 중이었고 노조원들은 파업의 효과를 위해 그 앞을 막아섰다. 언뜻 보기엔 노조원과 비노조원의 갈등 상황처럼 보이겠지만, 근본적인 원인은 BGF리테일의 교섭 불참에서 시작됐다.
BGF리테일은 우리가 흔히 볼 수 있는 CU 편의점을 운영하는 종합 유통기업이다. 올해 1월부터 CU 물류 화물 기사들은 올해에만 7차례 교섭을 요구했다. 교섭의 내용은 주 70시간이라는 살인적인 노동, 분류 작업이라는 이름의 ‘공짜 노동’을 멈춰달라는 것이였다. BGF리테일의 대답은 ‘무응답’이었다. 사측은 중앙노동위원회의 판단이 없다는 핑계로 사용자성을 부정했고, 돌아온 것은 노조원들에 대한 2억 원의 손배소와 배송 물량 축소라는 보복이었다.
기업은 이들을 사장님 이라 부르며 책임을 회피하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내 차를 가지고 CU 물건만 실어나르며 본사의 지시를 한 치의 오차 없이 수행해야 하기 때문이다. 원청은 자회사와 협력사라는 두터운 벽 뒤에 숨어 “우리는 계약 당사자가 아니다” 라는 말만 반복한다.
트럭 앞을 막아세우는 이들은 폭력적이었다. 그 현장은 폭력적인 현장이 맞다.
그러나 앞서 한국 사회는 임금에 대한 이해는 있어도. 노동에 대한 이해는 없다.
파업이라는 것은 생산을 멈춰 회사에 최대치로 경제적 피해를 입히는 단체행동이다. 그리고 파업은 보통 대화가 결렬될 때 꺼내는 최후의 카드다.
물류·운송 사업장에서 파업이 벌어지면 늘 상 노조원과 비노조원의 갈등이 생긴다. 그리고 파업 기간에 출하되는 물량의 건강 수수료를 2~3배 더 올려주는 방식으로 회사는 이들을 이간질한다. 이번 사고의 가해기사는 회사로부터 송장 오더를 받은 또 다른 화물 노동자다. 원청인 BGF리테일의 임원들이 시원한 사무실에서 수익을 계산하고 있을 때, 현장에서는 가난한 이들이 서로에게 칼을 겨누고 있다.
노조가 폭력적이었는가? 라고 묻는다면 맞다. 그들은 폭력적이었다. 그러나 평화롭게 저항하는 집단은 없다. 광주의 오월이 그랬고, 87년 6월이 그랬다. 모든 저항과 투쟁은 폭력을 동반한다. 그래야 절대권력 앞에서 힘이 비등해지기 때문이다. 더해 노조의 폭력성은 쟁점사안이 아니다.
중요한 것은 헌법이 보장하는 교섭을 회사가 7차례나 거부해왔다는 것이다. 사측이 짜 놓은 촘촘한 도급 구조 안에서, 생존권을 외치던 이는 시신이 됐고 핸들을 잡았던 이는 살인 혐의자가 됐다.
2·3 내란 이후 극우 세력들의 집회 현장에는 오래전 구호가 다시 등장했다. “빨갱이는 죽여도 돼.” 이 문장은 단순히 과거의 문장이 아니다.
‘파업하니까 죽어도 싸’라는 지금의 댓글들과 그 본질이 닿아 있다. 특정 집단을 ‘죽여도 되는 존재’로 상정하는 순간, 우리 사회의 인권과 민주주의는 실종된다. 자본은 이 혐오의 정서를 교묘히 이용한다. 노동자를 ‘사회악’으로 규정해 고립시키고, 그들이 왜 트럭 앞을 막아설 수밖에 없었는지에 대한 구조적 질문은 혐오의 언어 뒤로 감춘다.
구조적 살인의 진범이 누구인가. 7번의 교섭 요구를 묵살하며 노동자들을 극한의 대립으로 몰아넣은 원청인가, 아니면 생존을 위해 바퀴 앞에 선 노동자인가.
그 어떤 사람도 죽여 마땅한 사람들은 없다. 모든건 구조의 문제다. 우리가 지금 당장 없애야 하는건 그들의 권리를 짓밟고 서있는 이 기이한 노동구조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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