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개천에서 용 난다’는 말이 옛말이 된 지 오래다. 지금 시대를 한 단어로 표현한다면 ‘격차의 시대’라 말하고 싶다.
2024년 서울대학교 재학생 10명 중 7명은 부모의 월 소득이 1천만 원 이상의 고소득자라는 통계가 나왔다. 국가장학금 수혜율을 통해 확인된 지표다. 국가장학금은 경제적 여건이 어려운 청년들에게 국가가 등록금을 지원하는 제도다. 소득 수준을 1~10구간으로 나누는데 장학금 지급 기준이 되는 8분위와 9분위의 경계값은 월 소득인정액 1천146만 원 이하였다.
같은해 2학기 기준 서울 4년제 대학 29곳의 국가장학금 수혜율은 35.34%로 전국 평균(46.06%)보다 낮았다. 바꿔 말하면 ‘인서울 대학생’ 약 64%는 가계 소득이 월 1천만 원을 훌쩍 넘는 소득 피라미드 상위에 있다는 것이다. 명문대로 좁히면 격차는 더 심해 서울대의 수혜율은 19.11%로 전국 최저였다.
인서울 대학의 장학금 수혜 비율은 수능 입학 점수와 거의 일치한다. 입학 점수가 높을수록 수혜 비율은 낮다. 지난해부터는 9구간까지 지원 대상이 확대됐지만, 학교별 격차 추세에는 변함이 없다.
공부엔 왕도가 없다지만, 이제 공부에는 부모의 ‘자산도’가 있다. 과거의 학벌주의가 ‘학벌 양극화’로 진화한 것이다. 부모의 경제력이 학벌을 결정하고, 그 학벌이 다시 사회경제적 지위를 대물림하는 통로가 됐다. 지역균형 인재로 진학해도 대학 내에는 이미 계층 문화가 고착돼 있다. 특목고·자사고 출신들이 이너그룹을 형성하고 일반고 출신들은 배제당하기 일쑤다. 취업 동아리, 성적 족보, 대외 활동, 인턴 기회 등 대학생이 누려야 할 유무형의 자산조차 박탈당한다. 동시에 ‘지방 출신’이라는 편견과 정체성에 기반을 둔 농담들이 꼬리표처럼 따라다닌다.
서울대생들이 과 점퍼에 출신 고교를 적으며 급을 나눌 때, 비수도권 청년들은 ‘지잡대’라는 모욕을 장착하고 경쟁에 뛰어든다. 과거 지역 엘리트 코스로 명망 높던 지방대였으나 이제는 인서울 대학과 회복 불가능한 간극이 벌어졌다.
사회경제적 격차도 심각하다. 2024년 기준 광주·전남 학자금 대출 체납률은 20%로 전국 최고 수준이다. 전남의 체납자 증가율은 11.3%로 전국 평균의 두 배에 달한다. 고용률은 최저인데 부채 비율은 최고다. 부채 상환 능력은 자산 소득에 비례하는데, 취업 준비가 길어지니 상환 기간도 늘어질 수밖에 없다. 이런 와중에 광주교대, 동신대 등 지역 일부 대학은 등록금을 인상했다.청년들은 낭만 대신 빚과 스펙 쌓기에 허덕인다. 벽 하나를 부수면 또 다른 벽이 나오는 일상이다.
학벌 양극화는 고스란히 노동시장 이중구조로 이어진다. 상위권 대학 출신이 대기업·공기업 등 ‘1차 노동시장’을 선점하는 반면, 나머지는 처우가 낮은 하위 노동시장에서 시작하며 이들 사이의 이직 벽은 매우 높다.
첫 직장을 중소기업에서 시작하면 대기업 이직이 어렵다는 ‘계층 이동 사다리 붕괴’ 통계는 이미 10년 전에 나왔다. 이제 한국은 경쟁 사회가 아니라 ‘경쟁할 자격’부터 취득해야 하는 사회다. 출발선이 다르니 경쟁조차 성립하지 않는다.
청년 정책의 핵심은 고용과 교육이다. 격차가 처음 발생하는 시점이 바로 이때이기 때문이다. 이 시기의 불평등을 줄이지 못하면 생을 마감할 때까지 그 굴레에 시달린다. 지방선거를 앞두고 교육감 후보들이 내놓는 AI 교육이나 입시 강화 공약은 교육의 본질을 외면한 처사다. 가정의 배경이 결과에 영향을 미치는 양극화 구조에서 이러한 공약은 고민 없는 대책일 뿐이다.
고용과 교육 정책은 함께 가야 한다. 지방대를 졸업해도 적당하게 살아갈 수 있는 사회, 특정 명문대에만 자원이 집중되는 구조를 깨는 교육 공공성 회복이 시급하다. 지방대의 질을 상향 평준화하고 졸업 후 지역의 괜찮은 일자리로 이어지는 구조를 만드는 것, 이것이 비로소 청년 정책의 완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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