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5년의 끝자락에 서서 우리 사회의 풍경을 반추해 본다. 어느덧 인공지능(AI)은 일상의 깊숙한 곳까지 침투해 들어왔고, 효율성이라는 이름 아래 수많은 공정의 속도가 비약적으로 빨라졌다. 기술의 진보는 장밋빛 미래를 약속하는 듯 보이지만, 그 화려한 혁신의 그림자 아래에서 길을 잃은 이들이 있다.
바로 이 시대의 청년들이다. 정확히 말하면, 기술이 사람을 돕는 '도구'가 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사람이 기술을 위한 '소모품'으로 전락해 버린 구조적 모순 속에 놓인 이들이다.
지금 우리 사회가 AI를 대하는 태도를 보면 일종의 거대한 착각에 빠져 있는 듯하다. AI가 인간의 일을 대신해 줄 것이라는 기대가 그것이다. 그러나 현장에서 마주하는 진실은 조금 더 복잡하다.
AI는 결코 인간을 대체하는 마법의 지팡이가 아니며, 결국 사람이 다루고 제어해야 하는 하나의 '도구'일 뿐이다. 아무리 성능 좋은 붓이 주어져도 화가의 숙련된 손길과 예술적 안목이 없다면 명작은 탄생할 수 없다. 마찬가지로 AI 역시 그것을 부리고 제어하며, 그 결과물을 비판적으로 수용할 수 있는 '경험'이 뒷받침돼야만 제 가치를 발휘한다.
문제는 우리 사회가 이 당연한 진리를 망각한 채, 청년들에게서 그 경험을 쌓을 시간과 기회조차 허락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신입에게 경력을 요구하는 모순된 관점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신입을 뽑지만 경력이 있었으면 좋겠다'라는 이 형용모순의 요구는 이미 오래전부터 청년들의 숨통을 조여 왔다. 이제 막 사회로 진입하려는 청년들에게 '경험'이라는 입장권을 요구하는 가혹한 현실 속에서, 청년들은 신입 사원이 되기 위해 다시 인턴직을 전전하며 무한한 '경험의 굴레'를 돌아야만 한다.
이러한 현상은 우리나라가 사람의 가치를 얼마나 소홀히 여기는지를 여실히 드러낸다. 사람을 '키워야 할 존재'로 보는 것이 아니라, 이미 완성돼 당장 이윤을 창출할 수 있는 '부품'으로만 바라보기 때문이다.
기업과 사회는 청년의 성장에 투자하는 비용을 아까워하며, 그들이 서툴고 시행착오를 겪으며 배워나가는 시간을 '손실'로 규정한다. AI의 등장은 이러한 비인간적인 효율 중심주의에 날개를 달아주었다. 기초적인 업무는 AI에게 맡기면 된다는 안일한 생각은, 청년들이 업무의 맥락을 익히고 현장의 감각을 체득하던 소중한 '수습의 시간'을 통째로 삭제해 버렸다.
사무실의 풍경을 떠올려 보자. 경력직 상사가 업무 지시를 내리면, 신입 사원은 당혹스러운 표정으로 "이걸 어떻게 시작해야 하나요?"라고 되묻는 일이 빈번하다. 이를 두고 기성세대나 사회는 청년들의 역량 부족이나 수동적인 태도를 탓하곤 한다. 하지만 이는 청년 개인의 문제가 아니다.
어떤 도구를 어떻게 활용해 문제를 해결할지는 오로지 구체적인 현장에서 부딪히며 배워야 할 인간의 영역이다. 맥락을 모르는 상태에서 쥐여준 AI는 오히려 독이 될 뿐이다. 신입의 되물음은 "가르쳐주지 않으면서 왜 할 수 있기를 기대하느냐"라는 구조를 향한 본능적인 항변에 가깝다.
AI라는 최첨단 도구가 도처에 널려 있어도, 그것을 제대로 다룰 줄 아는 '사람'은 하늘에서 뚝 떨어지지 않는다. 첫 번째 계단을 딛지 못한 청년은 다음 칸으로 올라설 수 없으며, 사다리의 허리가 끊어진 사회는 지속 가능할 수 없다. 기술이 고도화될수록 우리는 아이러니하게도 '사람의 숙련'에 더 많은 가치를 두어야 한다. 하지만 지금의 대한민국은 거꾸로 가고 있다. 신입에게조차 완벽을 요구하며, 성장의 과정을 생략하려 든다. 이는 결국 사회 전체의 인적 자본을 갉아먹는 자해 행위나 다름없다.
광주는 'AI 중심 도시'를 표방하며 화려한 비전을 쏟아내고 있다. 하지만 그 비전 속에 우리 지역의 청년들이 설 자리는 얼마나 마련돼 있는가. 기술의 집적만큼이나 절실한 것은, 그 기술을 다룰 청년들이 실패하고 배울 수 있는 '시간의 집적'이다. 기업은 사람을 뽑아 쓰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사람을 길러내는 공적 책임감을 가져야 하며, 정부는 청년들의 첫 경험이 '착취'가 아닌 '투자'가 될 수 있는 사회적 안전망을 구축해야 한다.
2025년을 마무리하며 우리 사회의 민낯을 직시해야 한다. 우리는 진정으로 기술의 진보를 누리고 있는가, 아니면 기술을 핑계로 사람을 소외시키고 있는가. 경험은 결코 대체될 수 없는 가치이며, 청년들의 서툰 질문은 우리 사회가 함께 답하며 성장해야 할 소중한 이정표다. 2026년에는 사라진 첫 번째 계단이 다시 놓이기를 간절히 바란다. 사람이 도구보다 귀하게 여겨지는 상식, 그 당연한 진리가 회복될 때 비로소 진정한 기술의 진보도 의미를 가질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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