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칼럼] 데뷔하는 노동자들, 일을 다시 정의해야 할 때

@김다정 광주청년유니온 위원장 입력 2025.12.09. 17:58
김다정 광주청년유니온 위원장
김다정 광주청년유니온 위원장

'000 디자이너 오늘자로 A 헤어살롱에 데뷔했습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최근 한 미용실의 인스타그램 계정에서 올라온 게시글 내용이다. 연예인도 아니고 데뷔라니, 요새는 다 이렇게 쓰는 걸까? 궁금해진 마음에 유명 미용실 프랜차이즈의 SNS 계정을 들어가 보았다. 대부분 새로운 디자이너의 고용을 '데뷔'라고 표현하고 있었다. 묘한 기시감이 들었다. 어떤 배달노동자가 "우아한형제들은 우리를 파트너라고 부른다"라고 했던 말이 떠올랐다.

명명은 큰 힘을 지닌다. 어떤 단어로 '호명'하느냐에 따라, 어떤 의미를 담을것인가에 따라 본질이 정해진다. 노동자가 파트너로 호명되고 고용이 데뷔로 바뀌는 순간, 자연스레 그들의 노동은 증발된다. 파트너라면서 노사가 실질적으로 동등한가? 당연히 그렇지 않다. 데뷔라는 말도 마찬가지다. 노동자에게 어떤 종류의 '탈노동' 뱃지를 달아줌으로써 '너는 저 노동자들과 다르다'라고 말한다. 과거에는 구사대 폭력이 노동자들을 와해시켰다면 이제는 노노 갈등이 그 역할을 하고 있다. 탈노동 뱃지를 선사받은 노동자들은 너도나도 뱃지를 자랑한다. 노동은 인간을 삶의 주인이자 사회의 주인으로 만드는 행위임에도 탈노동 뱃지는 노동자들을 탈주체·몰주체로 만든다.

비임금 노동자 800만 시대, 이제는 고용관계가 별 의미가 없는 시대가 도래했다. 모두가 사장님이 됐지만 사장처럼 다 누리지는 못한다. 일의 대가 또한 그렇다. 아무도 시키지 않았음에도 근면성실을 가장한 자기 착취를 하지 않으면 지금의 노동자들은 시장 안에서 살아남을 수 없다. 이것을 과연 자의적 선택이라고 볼 수 있는가. 온 사회가 기업가 정신을 말하지만 정작 권리 주체에 대해서는 이야기하지 않는다. 내 일터에 대한 주인의식에 대해서는 함구한다. 사장처럼 모든 걸 책임지기만을 바라는 것이다.

지금 노동이 처한 가장 큰 문제는 무엇인가. 바로 외로움과 고립이다. 현대의 노동은 외롭고 배제당한다. 일을 하지만 노동자들은 여전히 시장 밖으로 밀려난다. 시장의 규모가 커질수록 그렇다. 한창 산재 사고의 원인으로 '위험의 외주화'를 이야기했듯, 이제는 일하는 사람 그 자체를 외주화한다. 불안정·비정형 노동의 가장 큰 문제는 시민들을 결사하지 못하게 한다는 것이다. 고용이 불안정한 것은 둘째 치고, 시민들을 개인화한다. 이는 비단 일터에서뿐만이 아니다. 이제 일상에서도 시민들은 홀로 있다. 그리고 자본은 고립된 개인을 더 많이 만들어내기 위한 맞춤형 상품들을 끊임없이 출시한다.

시장이 변하고 그에 따른 고용 형태도 변화한다. 다 같이 일하고 다 같이 퇴근하던 시대에서 이제는 모든 것을 혼자 하는 시대로 바뀌었다. 그러나 제도는 여전히 변화를 감당하지 못하고 있다. 광주청년유니온이 만나온 프리랜서·비임금 노동자들은 고용이 불안정하고 열악한 환경에서 일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들 모두 일에 대한 자부심이 매우 높고, 본인들의 일터 문제에 가장 적극적으로 대응하고 고민한다. 어쩌면 당연하다. 일의 주인은 나, 스스로이기 때문이다.

종속돼야만 노동이 아니다. 독립된 노동도 노동이다. 독립을 택했다고 해서 기본권이 침해받아서는 안 된다. 그러나 여전히 제도는 종속된 노동만을 노동이라고 규정하고 보호한다. 비정형 노동은 우리 일상과 밀접하게 닿아 있다. 우리는 공연을 보고, 배달을 받고, 디자인을 사용한다. 하지만 제도는 여전히 이들을 노동자로 인정하지 않는다. 근로계약이 아닌 도급계약을 쓴다는 이유만으로 그들의 일은 존재하지 않는 노동이 된다.

일은 제도의 틀로 정의되는 것이 아니라 행위로 정의된다. 빠르게 변화하는 세상 속에서 낡은 법의 경계를 밀어내고 새로운 일의 지도를 그려 나가야 할 때다. 시민들이 스스로의 일을 말할 수 있도록, 우리 사회는 일을 다시 정의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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