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칼럼] 어른을 기다렸던 우리에게

@김꽃비 독립기획자 입력 2025.05.27. 15:13
김꽃비 독립기획자
김꽃비 독립기획자

어른이 된다는 것은 무엇일까? 지난해 12.3 계엄부터 대통령 탄핵 심판 선고까지 장장 5개월에 거친 여정 속에 민심은 분열하고 경제적 상황은 더욱 악화되면서 국민들의 마음은 그야말로 타들어갔다. 추운 겨울의 수많은 날들을 거리에서 보냈던 국민들은 4월 4일 헌법재판소에서 만장일치로 내려진 대통령 탄핵 선고에 안도했다. 선거운동이 시작되며 시끌벅적한 하루들이 계속되고 있지만, 이전과 비교하면 혼란 가득했던 대한민국 일상에 오랜만에 안정감이 돌아오고 있다.

지난 헌법재판소 판결의 순간으로 잠시 돌아가 본다. 누구나 이해하기 쉽도록 일상의 언어들로 쓰인 판결문은 명문이라는 평가를 받으며 화제가 되었고, '피고인 대통령 윤석열을 파면한다'며 마지막까지 판결문을 또박또박 낭독한 문형배 재판관에 대한 관심도 높아졌다. 특히 문형배 재판관의 과거 발언들이 소개되며 재조명된 사람이 있었는데 바로 경남 진주에서 한약방을 운영하며 전 재산을 사회에 환원한 독지가 김장하 선생이었다.

가난했던 어린 시절 김장하 선생의 도움으로 공부를 마친 이야기와 함께 '자신은 이 사회에 있는 것을 너에게 주었을 뿐이니, 혹시 갚아야 한다고 생각하면 이 사회에 갚으라'는 선생의 말을 평생 가슴에 새기며 살아왔음을 밝히며 눈물을 흘리던 문 재판관의 모습은 당시 큰 화제가 되었다. 동시에 김장하라는 인물에 대한 사람들의 궁금함도 점점 더 커졌다.

그러던 중 광주 독립영화관에서 바로 이 화제의 인물에 대해 다룬 다큐멘터리 '어른, 김장하'(2023, 감독 김현지)가 특별 재개봉을 하면서 그에 대해 알아볼 수 있는 기회가 생겼다. 작품 속에서 김장하 선생을 취재했던 경남도민일보 김주완 기자와 (사)일제강제동원시민모임의 이국언 이사장이 GV에 함께해 더욱 풍성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남성당한약방이라는 이름으로 진주에서 한약방을 운영하던 김장하 선생은 명신고등학교를 설립해 수많은 학생들을 후원했고, 형평운동기념사업회를 만들어 인권운동에도 폭넓게 참여했다. 지역 언론, 문화, 예술, 여성, 환경운동 등 그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수많은 이들을 조건 없이 지원했다.

'어른, 김장하'에서 재미있었던 점은 한사코 본인의 업적을 알리는 인터뷰를 거절해 온 김장하 선생을 어떻게든 취재하기 위해 김주완 기자가 낸 기발한 아이디어였다. 수년간 인터뷰를 시도했지만 번번이 퇴짜를 맞았고, 다른 질문에는 거침없이 대답을 하다가도 본인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면 입을 꾹 다물어버리는 김장하 선생이었기에 기자는 선생을 기억하는 주변 사람들의 이야기를 통해 그의 일생을 다루기로 한다. 김주완 기자는 2015년부터 약 7년에 걸쳐서 150명이 넘는 사람들을 인터뷰했다.

그는 기자로서 오랜 세월 수많은 사람들을 인터뷰해 왔지만 이렇게 호의적인 인터뷰이를 많이 만난 것은 처음이라 즐거운 경험이었다고 밝혔다. 김장하 선생에 대해 물으면 하나같이 '좋은 일을 많이 한 그런 사람은 우리가 알려야 한다'며 앞장섰다. 선생의 도움을 받았던 장학생들에게도 혹여나 가볍게 한 말이 부담으로 돌아갈까 일절 훈계하는 일이 없었다고 한다.

김주완 기자는 GV에서 선생의 이런 모습을 '선행이 권력이 되는 모습'을 경계한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고 말했다. 선행을 실천하는 사람들은 존경받아 마땅하지만, 어느새 좋은 마음으로 했던 좋은 일도 권력이 되어 작용하는 모습들을 우리는 주변에서 자주 마주한다. 나 역시 작은 실천에 큰 인정을 받는 것에 익숙해지진 않았는지 돌아보게 되었다. 자신의 이익과 명성을 쫓으며 시대의 리더를 자처하는 이들이 많은 시대, 김장하 선생의 낡은 재킷과 단출한 살림, 평생을 걸어 다닌 진주 시내의 길들이 '인정받음'에 목마른 현대인들을 새삼 부끄럽게 만든다.

특별 재개봉과 GV를 준비한 광주독립영화관의 한재섭 관장이 행사를 마무리하며 '한 사람의 이야기로 진주라는 지역이 이렇게 멋져 보일 수 있을까'라고 하신 말씀이 기억에 남는다. 정말 그랬다. 김장하라는 인물도 존경스러웠지만, 그런 인물을 키워내고 지켜낸 진주라는 지역이 새삼 궁금하고 가보고 싶어졌다. 또 우리 지역에서도 그런 어른을 어서 만나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어른은 없고 꼰대만 가득한 시대, 당신은 어떤 사람이 될 것인가?"라는 질문에 따뜻한 위로를 건네는 김장하 선생의 이야기가 앞으로도 소중하게 지켜질 수 있길 진심으로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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