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의 죽음을 전하는 SNS 콘텐츠를 처음 보았을 때 나도 모르게 '제발…. 아니지?'라고 외쳤다. 흔히들 말하는 '어그로' 끄는 가짜 게시물이길 진심으로 바라면서. 벌써 몇 번째인지 헤아리기 힘들 정도로 우리 곁을 떠난 수많은 스타들의 얼굴들이 겹쳐진다. 그중에는 나이가 나보다 어린 젊은이들이 참 많았다. 인생의 가장 찬란한 시기에 스스로 목숨을 끊은 청춘들에게 죄스러운 마음이 자꾸만 밀려온다. 25살의 김새론도 이제 그중 한 명이 되었다.
구정물이 튄 옷을 입었지만 덥수룩한 머리칼 사이로 빙그레 웃던 모습이 사랑스러웠던 소미, 눈물이 그렁그렁 맺힌 깊은 두 눈 뒤로 서늘한 감정을 숨기고 있었던 도희. 특유의 신비롭고 섬세한 이미지로 아역시절부터 인상 깊은 배역들을 맡으며 천재 배우라는 찬사를 받은 그는 매 작품마다 큰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그러나 한편으로 '정변의 아이콘'이라는 말로 치켜세워진 자신에게 행해지는 신랄한 품평회를 견뎌야 했고 모든 기준에서 한 치의 오차도 만들지 않기 위해 지독히도 애쓰며 살았을 것이다.
아역배우 시절을 마치고 성인 연기자가 되었을 무렵부터 그를 향한 사이버 불링(Cyber Bullying)과 과도한 사생활 침해들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것 같다. 현실판 '트루먼쇼' 관객들은 영화처럼 다정하지 못했다. 성장기를 작품으로 지켜봤다는 이유로 어느새 김새론의 모든 삶은 우리의 알 권리로 둔갑하여 진열되고 있었다. 그러던 중 안타깝게도 그는 대단히 잘못된 실수를 저질렀다. 음주 운전이었다. 촉망받던 이미지는 한순간에 추락했고 실망과 질타의 목소리가 이어졌다. 사과와 자숙의 시간에도 여론은 나아지지 않았으며 어느새 꾸짖음은 악의적이고 지독한 집단 괴롭힘이 되어 있었다. 한 번의 실수도 용납하지 않는 '완벽한 심판자' 대중들에게 김새론은 언제든 당당하게 돌을 던져도 되는 절대악이 된 듯 했다.
"00 이도 이제 나락 갔네…."
한국 사회에서 언제부턴가 자연스럽게 쓰이고 있는 문장이다. 오랜 기간 성공을 향한 과도한 압박과 치열한 경쟁, 성과 중심의 사회 구조가 심화된 대한민국은 이제 누군가의 추락이 가십거리를 넘어 기회가 되는 잔인한 사회적 분위기가 만들어지고 있다. 잘나가던 사람들이 과거 혹은 현재의 실수로 갑작스럽게 추락하게 된 소식에 어김없이 저런 표현들이 따라다닌다. 그리고 그 '나락'을 평가하는 기준은 너무나도 성급하게 확정되고 선정적으로 보도된다. 이 잔인한 롤러코스터 과정을 단단하고 의연하게 이겨낼 수 있는 사람들이 과연 몇이나 될까.
타인의 불행을 보며 쾌감을 느끼는 것을 뜻하는 '샤덴프로이데(Schadenfreude)'는 인간의 본능적인 심리 중 하나라고 한다. 샤덴프로이데에 포함된 타인을 향한 질투, 선망, 열등감 같은 복합적인 감정들이 결코 부정적이기만 한 것은 아니다. 오히려 오늘날 인간이 이룬 수많은 경이로운 업적들의 원동력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다만 자신의 영역에서 과감한 성취를 전개하고 있는 이들이 잠시 추락했을 때 다시는 날아오를 수 없도록 '나락'으로 떠미는 사회 분위기는 두렵다. 무자비하게 결벽한 정의의 철퇴는 그 누구에도 관용을 베풀지 않고 인생은 성공과 실패, 비상(飛上)과 추락뿐이다. 삶은 짧고도 길다. 한 번의 실수가 지옥으로 직행하는 사망선고로 작동하는 사회에서 우린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스스로에게 질문해 보자. '나는 단 한 번의 실수도 하지 않았는가? 그리고 앞으로도 안 할 자신이 있는가?'
인간이 살아가는데 가장 중요한 것 중 하나가 희망이다. 희망이 소거된 세상에서 누가 삶에 대한 의지를 얻을 수 있을까. 실수와 오차를 단 하나도 만들지 않는 완벽한 심판자는 이 세상에 없을 것이다. 보다 건강한 사회를 위해 우리는 이 잔인한 나락 심판을 돌아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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